예수끠서 승천하시고 종도들이 다 별세하신 후 성교회는 로마를 중심으로 하야 구라파 각국에 확장되여 차차 전세계에 전파되엿다. 그 전파된 경로는 매우 복잡한고로 一一(일일)히 다 말하기 어렵거니와 대개 十七(17)세긔전에는 지금과 같이 전교지방을 도아주는 특별한 긔관이 없엇고 교종 자신이 보좌들노 더부러 만단사무를 총찰하시게 되엿다. 그때는 세계각방으로 가는 전교사들이 대부분 예수회 방지거회 도민고회 같은 그런 수도회에서 렬심잇는 수도자들이엇는대 그들은 전교상에 풍부한 렬심을 가지고 교종의 명령을 밧아 무인지경 같은 외교나라에 드어가서 천신만고를 당하며 一(일)생을 희생하엿나니 그것은 우리가 저 유명한 방지거 사베리오의 전교행적을 보아도 능히 알만한 사실이며 그 당시의 사세대로 그네들이 전교상에 엇더한 소원과 엇더한 불편이 잇섯든 것도 우리가 그네들에게 듯지 못하엿지만은 가히 짐작은 할 수 잇다. 그당시쯤은 지금과 같이 전교사들을 돌보기에 튼튼한 긔관이 없엇스니 각방으로 전교사를 보내기도 극난한 일이오 혹 보낸다 할지라도 소수의 전교사들이 황무한 따에 들어가서 다른 엇더한 고통보담도 제一(일)노 천주의 일가음은 허다한데 협력하는 일꾼이 업섯스니 그 렬심에서 나오는 고통이 비상하엿슬 것이다.
一六二二(1622)년에 현명하신 교종 그레고리오 제十五(15)위께서 그 사정을 절실히 늣기사 로바부에 전교성생을 조직하야 전세게 전교지방을 전무로 도라보게 하섯스니 그때부터 전교사들은 한층 힘을 얻어 전교하게 되엿다. 그러나 아직은 각 전교지방에 큰 근심 한가지가 잇섯스니 그는 다른 근심이 아니라 외교국에 가서 一(일)시 전교는 한다 할지라도 그 따에 교회의 든든한 근긔를 세우기 어려운 일이엇다. 가령 아모 전교사가 엇더나라에 들어가서 요행히 긔회를 얻어 얼마동안 무사히 전교한다 할지라도 뜻밧게 군난이 이러난다든지 혹 무슨 조당이 생겨 그 따에 전교사가 끈허지면 다시 전교사가 들어오기도 어렵고 들어온다 할지라도 전과같이 마음을 놋치 못할 일이며 그때는 교통이 자유롭지 못한 때이엇는고로 혹 엇던 나라에 군난이 이러나서 전교사들이 다 목숨을 밧치고 성교회가 중지되여도 로마에서는 그 사정을 모르고 잇슬 수도 잇스니 그리되면 결국 그 나라는 一(일)시 복음의 씨를 뿌렷스나 그 씨가 끝까지 자라지 못하고 그대로 말나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런지경에 본토인 전교사가 더러 잇섯스면 엇더할까? 아-그것은 참 얼마쯤 안심할 일이다. 본토인은 타국인보담 훨신 전교하기에도 임의로운 편이 만타. 그뿐 아니라 더욱 순난이 이러날지라도 본토인이고 보면 용이하게 피할 수도 잇고 이리 저리 피하다가 다시 엇던 긔회를 타서 교회를 니르킬 수도 잇다. 어느 편으로 보든지 외교지방에 전교하는데는 본토인 전교사를 량성하는 것이 무엇보담 필요한 일이다. 이와같은 생각이 모든 이의 마음에 움돋아낫다.
그러나 그런 일이 성사되기에는 힘잇는 긔관 하나히 잇서야 하겟는대 그런 긔관을 쉽게 조직할 가망이 업는고로 모든 이는 긔회만 기다리고 마음에 품어둘 뿐이엇다.
방지거 사베리오가 동국에 전교하다가 별세하신 후(교종 인노센시오 제十(10)위 때오 불란서 황제 루수 十四(14)세 때니 즉 十七(17)세긔 후반이라)에 유명한 드로드 신부는 안남지방에 전교하던중 자긔가 실지로 경험한 가운데에서 외교지방에 전교하기에는 먼저 그 지방 본토인 전교사를 양성할 것과 그리하기에는 그 일을 도아줄 적당한 긔관이 필요한 것을 모든 이중에도 가장 철저히 깨닷고 엇지하든지 그 일을 시작할 결심을 한 후 一六五三(1653)년에 안남을 떠나 먼저 로마 전교성생에 가서 그 사연을 설화하고 량해를 엇어 동지들을 규합하기 위하야 구주제국을 편력하게 되엿다.
그리하야 순로에 바리경에 당도하니 그때에 마츰 엇던 고요한 곳에서 여러 신부들이 피정을 하고 잇섯는데 그 신부들은 아직 엇던 전교지방에 가기로 결정한 일도 업고 장찻 성교회를 위하야 무슨 유익한 일을 할지 묵상하고 잇는 중이엇다. 드로드 신부 생각에 이야말노 참 조흔 긔회라 하야 그 신부들과 내통한 후 즉시 그 사연을 전교성생에 보고한 결과 전교성생에서 인노센시오 교종의 명령으로 대답하기를 그 여러신부 중에 발루 신부와 드라피 신부를 주장으로 추천하야 일을 시작하라 하엿다.
그러나 그 즉시 경영한 일을 시작못하게 된 것은 서편에서 포도아 나라가 조당한 때문이엇다. 포도아로 말하면 그때까지 정부의 힘으로 국재를 던저가며 각방으로 만흔 전교사들을 보내여 가위 모든 전교지방을 독히 관리함 갓히 되엿섯는고로 바리경에서 그런 일을 발긔하는 것이 필요치 아니한 줄노 녁이고 또 그로인하야 혹 국교손상이나 안될까 하야 매우 불찬성일뿐 아니라 반대의견을 전교성생에 제출하엿다.
드로드 신부는 그 사정을 안 후 목적한 일이 쉽게 되지 못할 줄노 짐작하고 다시 파사지방으로 전교길을 떠낫다. 가지 一六五五(1655)년에는 그 일을 좋아하시던 교종 인노센시오게서 별세하시니 문제는 얼마동안 정지되엿다. 그러나 새로 선정되신 교종 알렉산델 제七(7)위께서도 매우 그런 일을 좋아하시고 극력 권장하시는 고로 그를 다행히 녁여 발두 신부는 一六五七(1657)년에 로마에 가서 교종께 페현한 후 전에 결심하엿던 일을 픔달하고 자긔와 밋 바리경에 잇는 여러신부는 각 전교지방에 가서 본토인 신부 양성에 로력할 원의를 드러내엿다. 그때에 교종께수 대단히 즐거워하시나 전교성생에 잇는 홍의주교 중에도 포도아와 같은 사상으로 그 일을 의심하야 반대하는 동정이 잇섯슴으로 의론이 쉽게 결정되지 못하고 여러달 동안에 문제만 되여 잇섯다.
바리경에 잇는 베드루드라못람벨이라 하는 신부가 그 사정을 매우 민망히 녁여 一六五七(1657)년에 로마에 가서 발루 신부와 협력하야 극단의 우니동을 개시한 결과 전교성생에서도 그 신부들의 항구한 렬성을 보고 마츰내 一六五八(1658)년에 완전히 허락하고 두 신부로 청국과 밋 그 근방 모든 지방을 관할하는 주교로 임명하엿다. 사령을 받은 두 주교는 오래동안에 바라던 일이 성취되여 즉시 깃분거름으로 바리경에 가서 동지들에게 그새동안 된 일을 설화하엿다. (未完(미완))
白 神父(백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