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떳떳한 희망의 삶이 잇슬진데 理想(이상)과 幸福(행복)을 어찌 생각지 아느랴. 사람의 意志(의지) 또는 本能(본능)을 激發(격발)식힐 可能性(가능성)이 有(유)한 것은 理想(이상)임으로 사람이 稟有(품유)한 모든 本能(본능)을 總括組織(총괄조직)하야 一單(일단)의 調和(조화)로 統一(통일)하는 것이 理想(이상)임에 理想(이상)잇는 生活(생활)에는 人格(인격)으로 하야금 一切(일절)의 人類(인류)가 가저야 할 唯一(유일)한 共同目的(공동목적)과 鎔合(용합)을 식혀 本我完成(본아완성)을 成就(성숙)케 하는 動力(중력)이 곳 理想(이상)이다. 理想(이상) 업는 사람의 生活(생활)은 여러 本能(본능)들의 相互間(상호간) 충돌로 現演(현연)하는 混沌狀態(혼돈상태)에 沒陷(몰함)할 것이다. 그러나 理想(이상)은 遺傳(유전)과 環境(환경)의 所産(소산)이라는 說(설)이 잇으니 우리가 이를 是認(시인)치 안흘 수가 업다. 사람의 各槪念(각개념)은 心的事情(심적사정)에 依(의)한 心理學的決定論(심리학적결정론)을 또한 미듬으로써다. 그러나 이것은 環境(환경) 所産(소산)이라는 特殊(특수)한 理想觀(이상관)으로 一種(일종)의 心理學的事實(심리학적사실)에 不過(불과)한 單只槪念(단지개념)임으로써 眞實(진실)의 理想(이상)은 아니다. 사람의 品性(풍성)에 感給(감급)하는 것이 無數(무수)한 槪念(개념)을 가젓기 때문이다. 그럼으로 엇더한 理想(이상)을 意識(의식)하엿다든지 結局(결국) 幸福(행복)을 亨有(향유)할가 하야 擇(택)하엿든 것이 世相(세상) 사람의 理想(이상)이엇다. 幸福(행복)을 求(구)하려 千萬人間(천만인간)이 理想(이상)을 發(발)하야 動(동)하는 것임에 全世界(전세계)에 모든 것은 進展(진전)한다. 하늘과 저를 겨누랴는 것이 모든 人間(인간)의 思想(사상)임에 人生(인생)으로써는 一斑哲學(일반철학)을 度外視(도외시)할 수 업다. 그러므로 吾人(오인)의 生(생)은 人生哲學(인생철학)이 重大問題(중대문제)일 것이다.
生(생)의 活(활)함에 理想(사상)이 잇어야 하겟고 幸福(행복)을 求(구)하여야 하겟다. 常情(상정)이 이러함에 사람이 本能(본능)일 것이다. 鐵(철)이 血熱談(혈열담)을 吐(토)하며 天下(천하)를 적 보아 이세상을 내 손에 너허보겟다는 것이 젊은 이의 理想(이상) 아닐것이 아니며 학대와 굴욕에 짓발핀 XX을 爲(위)하야 몸동이 千(천)토막 萬(만)토막이 되더라도 XXX을 엇게시리 하겟다는 것이 理想(이상) 아닐 바 아니오 億兆萬靈(억조만령)이 永遠(영원)토록 당신의 뜻대로 하시어지이다 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者(자)가 어찌 사람의 理想(이상) 아닐 것이랴! 한 乞人(걸인)이 三日(3일)째나 굶주린 배를 쥐고 밥 한그릇을 어드려는 것이 또한 理想(이상) 아니라고 壯談(장담)하겟는가. 그러나 理想(이상)을 定義(정의)하기에 만흔 學者(학자)들은 머리를 썩히고 그처럼 宿題(숙제)를 하여오든가 哲學(철학) 宗敎學(종교학), 倫理學(윤리학), 心理學者(심리학자) 等等(등등)이 攻究(공구)하여오나 一定(일정)히 一般的(일반적)으로 是認(시인)된 理想(이상)은 업는가보다. 道德家(도덕가), 藝術家(예술가), 哲學家(철학가)들이 善(선)이니 正(정)이니 美(미)이니 眞理(진리)이니 할 것으로 各自(각자) 다를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理想(이상)은 무엇인가? 理想(이상)은 「本我完成(본아완성)을 爲(위)한 魂(혼)의 髮願(발원)일 것이다」 神意(신의)에 基因(기인)된 生活(생활)을 營爲(영위)할 것으로 努力(노력)하여야 될 것이다. 修道院(수도원)에 들어가 禁慾生活(금욕생활)을 自願(자원)하는 修道士(수도사)를 보라. 그들은 참 幸福(행복)을 엇기 爲(위)하야 엇더한 理想(이상)으로 塵世(진세)를 버리고 그러한 生活(생활)을 할꼬? 日常生活(일상생활)에 需要(수요)되는 物質的(물질적) 慾求(욕구)만족을 爲(위)한 代價(대가)로써 화려한 都會地(도회지)에서 훌늉한 生活(생활)을 하여갈 것이다. 그러면 웨 그러한 곳에서 禁慾抑制主義(금욕억제주의)를 行(행)하여 가는가. 그러한 生活(생활)이 幸福(행복)할가? 抑制(억제)가 되면 幸福(행복)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粗薄(조박)한 本能的欲求(본능적욕구)와 충돌의 行爲(행위)의 表現(표현)으로 自律(자율)을 反抗(반항)하며 快樂(쾌락)만을 理想(이상)으로 取(취)하는 放肆自由(방사자유)가튼 그런 것을 幸福(행복)되다 할가. 決(결)코 그러치 안타. 그따위는 邪惡(사악)이다. 幸福(행복) 惑(감)은 快樂(쾌락)이 문제가 人生哲學(인생철학)에 잇서 가장 문제되기는 古代(고대)의 希臘(희랍)이엇다. 이 행복이라는 문제를 人生問題(인생문제)에 對(대)하야 누구든지 즁요하게 생각하엿슴은 勿論(물론)이거니와 希臘思想(희랍사상)의 모든 學說(학설)은 여간이 아니라 하엿든 것이라 하니 이 문제에 對(대)하야 희랍 思想(사상)의 大體(대례)이나마 略述(약술)하여보자.(筆者(필자) 아는 범위)
(Socrates)는 「너 自身(자신)부터 알어라」하는 個人者知(개인자지)의 必要(필요)를 高唱(고창)하야 知(지)는 곳 德(덕)이오 德(덕)은 곳 人生(인생)의 福(복)이라 하엿다. 人은 慣例(관례)를 從(종)할 것이 아니오 自然(자연)을 循(순)할 것이라 함이 當時(당시) 희랍 思想(사상)의 根本的(근본적) 勢力(세력)이엇다. 卽(즉) 自然(자연)을 中心(중심)으로 하야 모든 善(선)을 자연에서 차즈려 하엿고 終極善(종극선)을 自然(자연)에서 追及(추급)하려 하야 行爲(행위)의 感情的(김장작), 情緖的(정서적) 方面(방면)을 重視(중시)하얏고 新道德(신도덕)을 建設(건설)함에는 自然(자연)을 土臺(토대)로 할 것이니 적극的(적) 定見(정견)으로 善(선)의 일반的(적) 표준은 理性(이성)에 依(의)하야 定立(정립)할 것이라 하얏스며 또한 個人(개인)의 終極善(종극선)이 무엇이냐? 하는 追求(추가)가 生(생)겻스며 개인의 종극선은 개인 自己(자기)가 規定追及(규정추급)할 것이라 하엿다. 이것이 一(일)층 더 發展(발전)하야 自然(자연)을 原始的(원시적) 初源(초원)에서 求(구)할 것가? 한 것이 문제되여 돌려 個人(개인)이라고 하는 것이 社會的(사회적) 개인, 孤立的(고립적) 개인, 이 兩者(양자)의 어느 것이라야 할 것인가? 하며 理性(이성) 感情(감정)은 어느것이 目的(목적)될 것이며 手段(수단)될 것인가 하야 문제이엇든 것이다. 그리하야 곳 (A) 個人對 社會(개인적 사회) (B) 直接的(직접적) 만족 對(대) 理想的(이상적) 표준이라는 二(2)개의 對立(대립)한 互直對應(호직대응)케 된 문제이엇다. 그 二對(2대)의 문제에 對(대)하야는 그 中心的(중심적) 主眼點(주안점)을 고찰하건데 「人(인)은 엇더케 生活(생활)하여야 할 것인가?」하는 前提下(전제하)에서 快樂(쾌락)과 幸福(행복)이라는 것이 그 主要件(주요건)이 되야 모든 學(학)파의 人生哲學(인생철학)을 組成(조성)한 것이엇다. 當初(당초) 자연界(계) 死物(사물)에 착안하야 자연연구에만 沒頭(몰구)하든 희랍사상이 波斯(파사)전쟁의 大勝(대승)을 經(경)한 뒤 國民的(국민적) 생활의 忽然(홀연) 활발하여짐을 따라 個人(개인)의 정신的(적) 수양이 존즁하게 되고 必(필)요하게 됨에 從來(종래)의 자연연구가 人事(인사)연구로 轉(전)하게 되엿고 또한 推象的(추상적) 宇宙(우주)의 문제가 實踐的(실천적) 인생의 문제가 되엿든 것일가 한다.) 모든 學(학)파의 사상과 各(각) 學者(학자)의 意見(의견)이 各各(각각) 不同(부동)한 것은 물론이오 紛紜錯綜(분운착종)하나 그 小異(소이)를 버리고 그 大同(대동)을 取(취)하야 各其(각기) 中心(중심)사상을 호상비교하건데는 대개 인생철학으로는 「쏘크라틔쓰」를 開祖(개조)로 하야 三大潮流(3대조류)로 分派(분파)되엇다고 볼 수 잇다. (Cyrenaies) 及(급)는 (Epicureans)의 諸人(제인) 等(등)은 快樂(쾌락)으로써 인생생활에 目的(목적)을 삼는 쾌락주의的(적) 사상이라 할 것이오 (Antishenes)의 창설한 (Stoics)는 一切(일절) 快樂(쾌락)을 反對(반대)하고 內的(내적)생활만 重視(중시)하는 反快樂주의的(쾌락주의적) 사상이라 할 것이오 이밧게 또는 (Arilstoles) 又(우)는 (Cyrenaies) 等(등)은 快樂(쾌락)을 생활上(상) 必要(필요)조건으로 용인하는 동시에 理性(이성)의 極致(극치) 卽(즉) 知慧(지혜)를 행복과 同一視(동일시)하야 人生(인생)의 최고 목적으로 하야 행복論的(론적) 사상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이에 注意(주의)할 것은 快樂(쾌락) 又(우)는 행복에 對(대)한 諸家(제가)의 사상 及(급) 主義(주의)가 各各(각각) 不同(부동)한 것은 말할 것도 업거니와 語義(어의)의 差異(차이)가 多少(다소) 잇스니 例(예)를 들면은(platon) 快樂(쾌락)과 (Epicureans)의 快樂(쾌락)이 同一(동일)한 意味(의미)의 快樂(쾌락)이 아니오 丈儒學(장유학)파의 행복과(아리스토톨)의 행복이 동일한 행복이 아닌 것이니 그 종류와 성질에 표준 等(등)을 各其(각기) 主見(주견)에 따라 相異(상이)하게 定(정)한 것이다.
키레네학파는 吾人(오인)의 意志(의지) 及(급) 行爲(행위)의 목적은 개인 자긔를 爲(위)한 직접的(적) 욕망을 만족케 하는 現在(현재) 감각의 個個(개개) 快樂(쾌락)이외 多數(다수) 쾌락의 總括(총괄)이라고 생각하는 행복이 아니며 社會(사회)는 人造的(인조적) 不自然(부자연)이며 따라서 當貴(당귀)와 文雅(문아), 名譽(명예), 平板(평판) 등은 皮相的(피상적) 쾌락이오 오직 개인의 原始(원시)적 욕망 卽(즉) 饑渴(기갈) 兩性(양성) 등의 자연的(적) 慾望(욕망)을 만족케 하는 것이 自然(자연)이라 하얏스며 쾌락의 擭得(획득)은 인생의 最初(최초)이며 최후인 목적이라 하얏다. 要(요)하면 개인的(적) 直接(직접) 만족의 快樂(쾌락)을 주장하얏고 「에피큐러쓰」학파는 快樂(쾌락)을 곳 행복으로 認(인)하야 人(인)은 本性(본성)이 쾌락을 求(구)하는 것임으로 쾌락은 唯一無上(유일무상)의 善이오 不快(불쾌)는 唯一無下(유일무하)의 惡(악)임으로 人(인)은 全生活(전생활)은 이 不快(불쾌)를 脫離(탈이)하고 快樂(쾌락)을 享有(향유)하는 것이 행복的(적) 생활이라 하엿다. 그러나 個個(개개) 각종의 쾌락을 다 만족케 하려는 도로혀 不快(불쾌)를 完全(완전)히 避(피)할 수 업슴으로 큰 쾌락을 得(득)하기 위하야는 적은 快樂(쾌락)을 버릴지며 큰 不快(불쾌)를 피키 爲(위)하야는 적은 불쾌를 受(수)할 것이니 諸種快樂(제종쾌락)의 價値大小(가치대소)를 智慧(지혜)의 作用(작용)으로써 비교 測定(측정)할 것이라 하얏스며 또 쾌락은 慾望(욕망)의 만족에서 生(생)하는 것이려니와 또한 無(무)욕망의 상태에서 純粹穏全(순수온전)한 쾌락이 生(생)하는 것인즉 心(심)의 平和靜活(평화정활)을 攪亂(교난)하는 過度(과도)의 욕망 又(우)는 不必要(불필요)의 욕망은 그 만족이 쾌락되지 못한다 하엿스니 이점에 (커레네)파의 사상과 헌수함을 알 수 잇다. 그리고 행복的(적) 생활을 친밀한 朋友社會(붕우사회)에서 求(구)하엿다. 要(요)하면 이는 社會的(사회적) 色彩(색채)를 띈 쾌락주의로써 理性(이성)을 用(용)하야 不完全(불완전)하나마 快樂(쾌락)의 표준을 定(정)하랴 하얏다.
「淡泊主義(담박주의)파는 人生一切努力(인생일절노력)의 최고 목적은 행복이라 認(인)하고 理性(이성)과 령혼의 調和(조화)를 得(득)한 생활로써 행복이라 하야 一時的生滅消長(일시적생멸소장)하는 情的(정적) 苦樂(고락)으로 心志(심지)를 動(동)하지 안코 神的(신적) 理性(이성)과 一致(일치)한 淡泊平穏(담박평온)한 永遠的(영원적) 安心(안심)의 상태가 인생 생활의 최고 행복이라 하얏고 또는 人(인)의 本性(본성)은 쾌락에 잇는 것이 아니고 自愛(자애)에 잇는데 이 自愛(자애)는 他愛(타애)와 合一(합일)한 것이라야 자긔는 전세계 전우주와 합一(일)함에서 完全(완전)한 행복을 成(성)하는 것이라 하야 世界(세계) 一家主義(일가주의)를 주장하얏다. 要(요)하면 이는 情的(정적) 쾌락을 배척하고 精神的(정신적) 행복을 大社會的(대사회적)으로 求(구)하려 하엿는 것이엇다.
(丈儒學(장유학)파는 一切(일절) 外物(외물)에서 獨立(독립)하야 內的(내적) 자유와 內的(내적) 행복만을 專求(전구)하고 外物(외물)를 賤視(천시)하는 點(점)에 偏意(편의)하야 實踐的(실천적) 철학을 作(작)하엿나니 一切(일절) 쾌락과 社會(사회)적 생활을 전연 反對(반대)하고 단鍊(단련)으로 得(득)한 六體(6례) 及(급) 령혼의 우월을 唯一(유일) 진정한 善(선)으로 하야 幸福(행복)한 생활을 得(득)함에 足(족)한 得(득)이라 하야 克己(극기)와 獨立(독립)으로 오즉 內的 (내적)행복을 求(구)하엿다. 要(요)하면 이는 極端(극단)의 個人主義(개인주의)이며 極端(극단)으로 快樂(쾌락)을 反對(반대)하엿는 것이다.
「platon」은 쏘크라틔쓰의 首弟子(수제자)로써 가장 師說(사설)을 正面(정면)으로 傳受(전수)하엿다는 이인데 知(지)는 德(덕)이오 德(덕)은 곳 福(복)이라 한 (S) 氏(씨)의 근본 信念(신념)에 基(기)하야 智慧(지혜)로써 모든 행위의 표준 善(선)인 동시에 人生(인생) 행복의 근원이오 終極(종극)이라 하얏다. 야비한 현실的(적) 情欲(정욕)을 제어하고 고상연구한 至善(지선)에 達(달)하는 것은 다못 理性(이성) 곳 지혜에 依(의)하야 可能(가능)할 것이라 하고 또는 이러한 理性(이성)의 完全(완전)한 발달은 社會(사회)에서라야 可能(가능)한 것이라 하야 질서的(적), 調和的(조화적), 最合理的(최합리적)인 理想(이상)국가를 동경하얏스며 이 國家(국가)의 통치자는 智者(지자)라야 한다 하얏다. 智者(지자)는 곳 至善(지선)이라 하엿나니 氏(씨)의 소위 지혜는 單(단)히 知的(지적) 到達(도달)을 指(지)함이 아니오 適度(적도)로 정리된 科學(과학), 기술 또는 예술的(적) 享樂(향락)을 包含(포함)한 것을 意味(의미)하야 一(일)종의 탁고한 調和的(조화적) 쾌락을 용인하엿스나 쾌락은 眞僞(진위) 其他(기타)의 종류가 잇슨즉 그것은 최고 善(선)이 아니다 하야 쾌락主義(주의)의 倫理(윤리)설을 배척하고 오즉 理性(이성)의 최고 極致(극치)에서 神(신)의 영원한 理性(이성)에 歸(귀)하는 령혼 상태의 形成(형성)이 人生(인생) 최고의 善(선), 최고의 행복이라 하야 理性(이성) 卽(즉) 智慧(지혜)를 가장 완전한 표준으로 삼앗다. 要(요)하면 이는 智者(지자)를 中心(중심)으로 한 국가사회的(적) 知力(지력) 생활의 행복을 主張(주장)한 것이엇다.
아리스토톨 氏(씨)는 희랍사상의 정통을 플라톤 氏(씨)에게 受(수)하엿는데 氏(씨)의 倫理的(윤리적) 見地(견지)는 순전히 목적 槪念(개념)에서 출발하야 모든 행동은 목적에 依(의)하야 規定(규정)되는 것임에 직접 목적은 한층더 놉흔 목적에 依하야 規定(규정)되야 究極(구극)의 최고 모기적에 達(달)하는 것인데 이 究極目的(구극목적)은 卽(즉) 幸福(행복)(Eendaimonia)이라는 것이 氏(씨)의 특별히 주장한 행복說(설)(Endaimonism)이엇다.
그런데 우리가 活動(활동)하는 것은 結局(결국) 幸福(행복)을 享有(향유)할가 하야 意志(의지)를 激發(격발)식혀서 무슨 大家(대가)의 뒤를 좃고 무슨 學者(학자)의 說(설)을 服認(복인)하야 意識的(의식적)으로 選擇(선택)한 것을 내 理想(이상)이니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카톨릭 信者(신자)의 理想(이상)과 幸福(행복)은 自己(자기) 存在(존재)를 支配(지배)하는 現實界(현실계)를 超越(초월)하는 永遠不變(영원불변)한 天堂(천당)을 求(구)하는 것이다. 人類社會(인류사회)의 文化程度(문화정도)를 制定(제정)하는 智(지), 情(정), 意(의), 三大(3대) 基本的(기본적) 機能(기능)이 잇서 智的(지적)으로 論理的(윤리적) 科學(과학)(自然科學(자연과학))이 成立(성립)되고 意的(의적)으로 倫理的(윤리적) 科學(과학)(社會的科學(사회적과학))을 發展(발전)식히고 情的(정적)으로는 藝術(예술)이 잇서서 三大文化的(3대문화적) 價値(가치) 표준된 것이야 周知(조화)할 것이다만은 이 三大(3대) 文化的(문화적) 價値(가치) 밧게 人類(인류)의 發展的 運命(발전적운명)을 지베
하는 가장 큰 精神的(정신적) 勸力(권력)이 잇슴을 깨닷고 알으니 以上(이상) 三大(3대)에 것을 統一(통일)하고 超越(초월)하는 것이라야 카톨릭 信者(신자)의 福(복)된 生活(생활)일 것이다. 그럼으로 우리는 정신적 人格(인격)을 일우어(천당 또는 永生界(영생계)에 屬(속)한) 초월적 생활을 하여갈 준비를 해야된다. 自我(자아)의 微少(미소)함과 不完全(불완전)한 것을 깨닷고 完全無欠(완전무흠)한 超人的(초인적) 理想(이상)을 追求(추구)할 것으로 自我(자아)의 發展的(발전적) 運命(운명)을 主(주)에게 委託(위탁)하야 主(주)의 命令(명령)에 依(의)한 規定(규정) 以外(이외)는 내가 이러한 欲望(욕망)의 行爲(행위)를 하고 십허도 당신의 命令(명령) 아닌 것은 하지 못하는 것이다. 見聞(견문)하는 것도 내 스사로가 아니오 主(주)로부터 보이어 주고 들리도록 하는 것이다. 모든 惡事實(악사실)의 源泉(원천)이라 할 수 잇는 現實界(현실계)(現實世界(현실세계)를 絶對否認(절대부인)하는 것 아님)에서도 暴風(폭풍)과 소낙비의 急變(급변)하는 것을 보거나 九萬里長天(구만리장천)이랄가 무수한 별들이 빗츨 다투는 듯 한 깁흔 밤 蒼穹(창궁)을 치어다보거나 茫茫(망망)무제의 성낸 파도의 움출거리는 大海(대해)를 바라다 보거나 巨岩絶壁(거암절벽)의 怪像(괴상)이 코압헤 當(당)할 때에는 神秘(신비)럽고 무서운 感情(감정)을 發(발)하니 이것을 꾀데의 입을 비러 이른바 敬畏感(경외감)(Ehrfurcht)이라 하니 이러한 感情(감정)이야말로 나를 屈服(굴복)식히는 것은 卽(즉) 자를 尙上(상정)으로 引導(인도)하는 것과 가티 생각되야 겸손의 價値(가치)를 깨닷는 同視(동시)에 敬畏(경외)의 참뜻을 볼 수 잇다. 그리하야 到底(도저)히 自我(자아)의 自意的(의식적) 努力(노력)으로는 신성한 곳에 達(달)치 못할 것을 깨닷고 發展的(발전적) 意志(의지)를 덩구 굿세게 하야 實在(실지)의 黙示(묵시)처럼 感動(감동)된다. 다못 카톨릭 信者(신자)인 우리는 堅固(견고)하게 營造(영조)한 都會地(도회지)의 建築物(건축물)에 들안저 잇든지 森林(삼림)이 자욱한 山野(산야)에 들어가든지 모든 活動(활동)이 主(주)의 뜻에 依(의)한 生活(생활)이면 主(주)의 뜻이 實現(실현)되는 것이다. 故(고)로 主(주)-榮光(영광)을 헌양하는 目的(목적)과 理想(이상)으로 一切活動(일절활동)을 天主聖意(천주성의)에 合하게 한 後(후)라야 참된 福(복)을 누리게 된다.
徐廷燮(서정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