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삼)천리강산 이땅에 진리의 빛 천주의 복음의 전한지 一백四十八년(1백48년)이오 조선교구가 설정된 백년이다. 우리는 이날을 긔념하고 축하하며 천주의 진리를 四(사)해에 외치노니 모든 이는 다 같이 즐겨 용약하라.
거금 一백四十八년(1백48년) 전에 리승훈 씨(李承薰)가 중국 북경에 가서 천주의 진리를 배와 령세입교한 후에 조선에 돌아왓으니 이것이 이땅에 천주교가 처음으로 들어온 것이엿다. 리승훈은 유명한 선배 리덕조(李德祚) 권철신(權哲身) 정약전(丁若銓) 정약용(丁若鏞) 등으로 더불어 천주의 복음을 전한지 十(10)년만에 중국인 신부 주문모 씨(周文謨)가 조선에 들어와서 신자들을 지도하엿다. 그러나 그때의 조선은 암흑에 싸여 진리의 빛을 보지 못하고 천주교를 서학(西學) 천주학(天主學)이라 하야 관인들은 덮어놓고 박해를 거듭하여 중국인 신부 주문모 씨는 맛참내 학살을 당하엿다. 그후 三十(30)년동안은 지도자 없이 신자들이 외로히 지낫음에도 불구하고 정도에 돌아오는 자 끊이지 아니하엿다.
거금 백년 전에 비로소 로마 교황청의 재가로써 정식으로 조선교구가 설정되고 파리외방전교회가 이땅에 전교할 책임을 맡앗으니 그때의 신자 수효는 八(8)천명이엿다. 오호라 악마의 작난이 심하여 신자의 자유와 재산은 여지없이 짓밟히고 악마의 칼날에 생명은 아츰이슬같이 살아젓으니 긔해 병오 병인년의 三대 학살시에 순교의 거륵한 피를 흘린 자 무려 수만명이엿다. 그러나 그들의 철석같이 굳은 신앙 불꽃같이 열열한 정신은 조곰도 굴하지 않고 선혈로 이땅을 세례하엿다. 정의는 필승이라 우리의 조상이 목숨을 바쳐 전해준 복음의 씨는 一八八二(1882)년 이후 비로소 신앙자유를 얻어 봄바람을 마지하엿으니 그때의 신자수효는 一만二천(1만2천)명이엿다. 그후 五十五(55)년을 지난 오늘에 十二(10)만의 신자를 얻엇고 교구는 경성 대구 원산 평양 연길의 다섯으로 난호엿으며 모든 시설과 사업이 날로 륭창하여가고 잇다.
이제 우리 조선교구 창설 백주년 긔념날을 당하야 만천하 인사에게 고하노니 우리에게 전하여진 이 그리스도의 정신 카톨릭정신이야말로 사람으로써 반듯이 가질 바 정신이오 행할 바 바른 길이다. 一(일)게긔에 매치인 우리 조선 성회사(聖會史)가 무엇을 가르치며 三(3)억여만 대중의 령이 한등이로 一(일)치되는 세계적 최대 종교 천주교(카톨릭)는 무엇을 깨닫게 하는가. 형제여 오늘의 이 깃븜과 영광이 다만 우리들 천주교인에게만 국한한 깃븜과 영광이 아닌줄 알자. 그리고 참되히 살아가기 위하야 바른 길을 찾아 나아오라.
…… 沿略 ……(연략)
西曆 一七八四년에 中國으로 붙어 李承薰 歸國으로 朝鮮에 天主敎 初入
(서력 1784년에 중국으로 붙어 이승훈 귀국으로 조선에 천주교 초입)
西曆 一八三一년에 羅馬 敎皇廳으로붙어 朝鮮敎區를 設定
(서력 1831년에 나마 교황청으로붙어 조선교구를 설정)
西曆 一八三九年 己亥窘亂
(서력 1839년 기해군난)
西曆 一八四六年 丙午窘亂(朝鮮人 첫 神父 金大建 殉敎)
(서력 1846년 병오군난(조선인 첫 신부 김대건 순교)
西曆 一八六六年 丙寅窘亂(理想 三大 窘亂時에 虐殺者 數 萬名)
(서력 1866년 병인군난(이상 3대 군난시에 학살자 수 다명)
西曆 一八八二年 以後 信仰自由
(서력 1882년 이후 신앙자유)
西曆 一九二五年 羅馬聖聽에서 朝鮮殉敎者 中 七十九位 諡福式
(서력 1925년 나마 성청에서 조선순교자 중 29위 시복식)
西曆 一九三一年 朝鮮敎區 設定 百週年記念(現在 敎友 十二萬)
(서력 1931년 조선교구 설정 백주년기념(현재 교우 10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