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반 안 주교 각학께서 본 교구내에 카톨릭운동을 장려코저 하사 그 첫사업으로 천주교회보후원회를 조직하라는 훈시를 발하섯다. 우리는 이 훈시에 대하야 만강의 경의를 표하는 동시에 이를 쌍수로 밧드러 그 실행에 젼력할 의무가 잇다.
그러면 대체 이 카톨릭운동(악시오 카톨릭카)이란 무엇인가를 몬저 알아둘 필요가 잇다. 이는 어원으로 말하면 카톨릭적(공교적)으로 행동하는 활동이란 말인데 『공교성직자의 본직인 성회 사업에 대한 평신자의 조직적참가원조(組織的參加援助)라고 정의하는 것이다. 누구나 다 볼 수 잇는 바와 가티 이 정의 가온데에서 우리는 좌긔 세 가지 요소를 발견하게 되나니 一, 서회사업은 성직자의 본 職務(직무)이, 평신자는 그 사업에 참가원조할 것 三, 그 원조는 조직적이라야 할 것. 곳 이것이다.
一, 과연 이 운동이 이미 지리멸렬한 개체의 운동이 아니오 「조직적 참가원조」를 목표로 한 일종의 특수제도의 단체운동인 이상 반드시 조직적이라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비록 각국 각 민족에 잇서서 그 교세발달의 정도여하에 따라 그 조직의 정연 여부와 형식 여하는 천자만태로 달라질 수 잇슬망정 모든 이로 하여곰 공동의 목적을 향하야 유일한 생활원리 밋헤서 공통의 단체를 구성하야 일치협력하도록 되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그 각종 단체는 전가톨릭교회를 통제하야 그를 공동의 목적 즉 복음의 선전과 그리스도왕국의 확장사업에로 인도하는 최고지도자의 밋헤 귀속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말하면 저 동원의 명령을 바든 군대처름 포병, 보병, 항공대 등 각 특과대를 마튼 장관이 다시 제 우헤 잇는 총지휘자 아래에서 공동의 목표를 향하야 즉 적군의 함멸을 위하야 각기 분과대의 행동을 지휘함과 가태야 할 것이다. 보라 저 광대한 창공을 거긔는 여러색다른 유성이 잇서 제각기 그 부하의 위성을 거나리고 혹은 멀리 혹은 갓가히 다 그 중앙성의 주위를 안고 돌지 안는가? 저들의 중심별이 되여 그들에게 운동과 빗츨 주고 잇는 저 중앙성은 생각할 여지도 업시 태양일 것이다. 이와가티 이 카톨릭운동에서도 반드시 그 동력과 생명과 지휘 등을 그 운동의 중심이 되여야 할 성직반렬에 잇는 자에게 바다야 할 것이다. 웨 그러냐 하면
二, 이는 일즉 예수께서 특별히 완전한 교회를 따로 세우사 당신의 교리를 전하여 일반신도를 다사릴 전권과 함께 그 교회에 관한 일체 사무(敎務(교무), 聖務(성무), 政務(정무))를 오로지 성직반렬에 맛기심에 인하야 그 교회 신성한 사업은 첫재 저 성직자들의 본 직무인 까닭이다.
三, 그러타고 일반 신도에게는 다 각각 저마다 남을 구령길로 인도할 응분의 책임이 전혀 업느냐 하면 결코 그러치 안타. 사실에 잇서서 전시대, 전세의 개척을 대상으로 한 사업인 것만큼 저 성직자들의 활동만으로는 도저히 그 천부의 명예스러운 중임을 다해나갈 수 업는 관계쌍 부득이 평신자의 도음을 힘닙지 아니치 못할 처지에 잇다. 여긔에서 일반신자는 당연히 저들의 사업을 준비 보충하며 연장 계속 해주어야 할 반듯한 의무가 잇는 것이다. 더고나 오늘날 세인에 대한 신앙은 각각으로 위협을 밧고 도덕은 나날이 퇴폐해 가는 이 참경에 잇서서 더욱 그러하다. 하물며 우리 조선성교회 현상에 잇서서랴! 여긔서 나는 특별히 우리 조선성교회에도 평신자의 그 아름다운 조직적 원조 달리 말하면 카톨릭운동 실시의 필요와 함께 그 시급함을 통절히 부르짓는 바이다. 이 입장에서 평신자 원조에 대한 그 의무와 필요를 가저 좀 길게 설명 겸 권고 편달을 여러분에게 드리고저 한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여긔 한 사람이 잇서 그 천부의 임무를 다하랴면 그 사람은 반드시 머리, 몸동이, 수족, 상하 사지가 다 완전히 구비한 사람이라야 하겟다. 가사 수족만 잇고 머리, 몸동이가 업스면, 생명과 활동력이 끈허저 아모 일도 못할 것이오 그왑나대로 머리, 몸동이는 잇슬지라도 수족이 업스면 활동할 긔구가 업서 또한 별 일을 못할 것이다. 그러면 오직 이 세가지가 서로 연결되여 마조 도아주는 그때에 비로소 제 할일을 것침업시 해나갈 수 잇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성교회 사업은 이것이 초자연계에 속한 사업인만큼 인지를 초월한 그리스도의 리상실현인 만큼 평신자만으로는 도저히 실수업시 성취해낼 수 업는 반면에 또한 그 수족되는 그들의 원조가 업시 다만 성직자만으로는 회내에 인간사회적 성질을 띈 허다한 사업에 잇서서 능히 감당할 수 업슬 것이다. 오직 성직자와 평신자가 서로 협력하야 마조 밧드러 주난 거이에서 그리스도게 바든 사명은 유감업시 실현될 것이다. 과연 우리 카톨릭교회는 문답에도 말함 가티 「보천하는 봉교인이 한가지로 한뭇과 가티 한 회를 일우는 것임으로써 본질적으로 엄연한 사회적 종교이다. 그래서 절대 개인주의를 주장하는 저 프로테스당교와 성질상 배치되는 원인도 이 점에 잇는 것이다. 그러면 혹 신자중에 신앙상 개인주의를 고집하야 자긔 혼자만 착한 교우되엿스면 족하다 생각하고 전연 사회적 종교생활의 책임을 망각하는 자가 잇다면 이는 분명히 우리 카톨릭교회의 근본 교의를 저바리는 자라 아니치 못할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나는 그러한 슴거운 독선주의(獨善主義)를 미안하나마 배척코저 한다.
과연 통분한 것은 오늘 우리 조선성교회에 이러한 병신 사상을 가진 교우가 저 극소수의 선각자를 제한외에 거이 태반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닌 애닮흔 현상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결코 조선민족 더욱 우리 조선 교우들의 근본결함이 아님을 자랑겸 증명할 수 잇는 긔점에서 과거의 큰 힘과 장래의 만흔 희망을 가지게 한다. 보라 우리 조선성교사에 그 무쌍히 찬란한 첫 페-지를 어느 성인이 엇든 선교사가 이때에 복음의 씨를 부렷든가. 우리의 등 우리의 손으로 밧드러다 심은지 불과 五十(50)년동안(나는 이동안을 무성직긔)라고 일홈주고 십다. 그나마 업미업서 굶주리는 가엽슨 고아의 어린 빰에 사정염시 후려치는 박해의 검센 주먹이 긋칠줄 모르는 그때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전국에 편만 하게된 그 복음의 꼿과 열매-그 누가 물주고 북도두고 갓과서 그처럼 끔직한 수확을 거두게 하엿슬가?
성직자를 모조리 잡아 삼키고 신유, 긔해, 병인, 삼차군란에 피무든 칼이 채-칼집에 꼽히기도 전에 누가 나서서 그거의 숨기랴는 저 교회를 어루만지며 안하주며 위로하야 보호하며 니르켜 살엿든가? 우리 교회사 아니 우리 반만년 조선사에 비단폭에 금글자로 삭여야 할 저 七十九위 복자 중에 三위를 제한 그 남아지 성웅들이다. 누구이며 엇더한 행적들의 주인공들인가? 이 모다 우리의 조샹들이 아니며 오늘 우리에게 피와 뼈를 넘겨주신 하라버지들의 향긔로운 표양이 아닌가? 오르지 교회의 사업을 목표로 하던 저들의 그 뜨거운 가슴 붉은 정성 압헤는 과연 부모도 처자도 지위도 가산도 배이지 안엇고 림림한 선혈도 앗가운 목숨도 두리고 앗김이 업섯다. 이것이 질로나 량으로 카톨릭운동의 절정에 다다른 표현이 아니고 무엇이랴? 아! 장쾌한 그 표양 글자 그대로의 카톨릭운동의 실현!
그러면 왜 우리는 그들에게서 이 생명과 함께 저 아름다운 졍신을 밧지 못하엿슬가? 그러치도 안타면 엇지하야 오늘날 우리네의 졍신과 활약은 이다지도 움치러젓슬가? 이는 그동안 우리를 지배하여 온 애꾸진 시대와 환경의 작란이 남겨준 저주할 유물이라고 나는 단언하고 십다. 과연 백여년동안 우리는 신자로써 비장하고 처참한 가다곰부 생활을 아니할 수 업섯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상으로 사회적 생활은 고사하고 가족적 생활조차 마음노코 할 수 업는 처지에서 살아왓다. 이것이 때가 오래고 세월이 거듭함에 따라 우리 골수에 고질이 되고 말앗다. 이 엇지 우리의 근본적 결함이며 민족적 오점이랴?
그러면 이제는 그 시대 그 환경의 심술구즌 작란도 다 지낙갓다. 거짓상제의 방립을 거더치며 포건을 분질너 팽겨치고 한길노 나서서 두활개 흔들며 버젓하게 행보할 판이다. 이젠느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의 본색을 드러내지 못하며 우리 조샹들의 선행후언으로 끼처주신 그 용감한 표양을 무엇때문에 실현하지 못하랴?
각성하라 치명자들의 붉은 피의 결정체들아 분긔하라 그동안 가증스러운 시대환경의 작난틈박이에서 긔를 못펴고 신음하든 용사들아. 때는 왓다. 아니 벌서 일철이 느저간다. 열한시 품군이나마 되여보자. 카톨릭운동에 대한 교화황의 외치심은 발서 들닌지 오래다. 전세계 카톨릭신자가 그 소리에 호응함도 벌서 묵은 력사를 짓게 되엿다. 금번 안 주교 각하 훈시에도 그 말삼은 극히 간단하나 그 암시가 심히 크다. 뜻깁흔 백주년 긔념을 당면하고 잇는 오늘에 잇서서 우리는 그 훈시를 가장 큰 선물 가장 조흔 긔념픔으로 알아 감사로히 밧자. 그리고 모히자. 세계적으로 놉히 휘날리는 저 긔식 아래로 카톨릭운동에로! 다 각각 제 지위 제 처지대로 호미와 광이 든 자 그대로 교편을 손에 든 자 그대로 테부루 압헤서 붓대로 벗삼는 자 그대로 끌는 퍼뛰는 맥 모도다 카톨릭운동을 위하야 제공하라. 이 운동은 청년들의 독점물이 아니다. 로인도 조코 소년도 조타. 그리고 남녀평등을 부르짓는 이때에 부인과 처녀들은 들지 말라는 게시판도 업다. 오직 대서특필의 주의란이 잇다면 이것은 단지 성직자와 련락을 취하야 그들의 교도와 지휘를 바드라 할 뿐이다. 이 특별한 조건 하에서 그리스도왕국의 판도를 넓히기 위하야 다시말하면 매일 우리가 외오는 천주경 「네 나라이 임하시며」의 한끗을 실현하기 위하야 맹진할 것이다. 현하 그리스도의 진리와 그 지정신을 널리 보급하여 그 왕국의 판도를 넓히는데 잇서서 저 공교출판물보다 더 나흔 무긔가 다시 업는 줄은 일반이 주지하는 바일 것이다. 하고로? 이는 그리스도의 진리와 정신을 널리 전하며 그를 옹호하는 가장 유효하고 중대한 사명을 가진 까닭이다. 과연 금샹교황의 공교출판물에 대하야 혁혁히 부르지짐도 그 리유가 여긔 잇는 바이오 안 주교 각하께서 금반 카톨릭눙동을 배경으로 한 천주교회보 후원회를 명하시고 스스로 그 회에 참가하심도 그 뜻이 여긔잇슴을 우리는 넉넉히 엿볼 수 잇다.
그러면 우리도 이 카톨릭운동의 첫 시험 첫 거름으로 우리 회보 즉 우리 조선공교출판물계에 잇서서 남붓그럽지 안케 한 모통이를 떠밧치고 잇는 이 회보를 뜻깁게 후원하는 명예스런 중임을 두 억개에 단단히 메고 목적지에 니르도록 힘차게 또는 꾸준이 나아가 보자. 항심이 잇고 성의가 잇는 그곳에 반드시 성공이 잇슴을 생각하면서.
大邱神學校 P. T. 生(대구신학교 P. T.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