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모태신앙입니다. 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대대로 가톨릭 신앙을 이어온 구교 집안 출신이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는 여느 유아세례를 받은 교우들처럼 특별한 계기나 선택의 순간 없이, 말하자면 제 의지와는 무관하게 유아세례를 받았습니다.
어릴 적 제 놀이터는 성당이었고, 중·고등학교 시절의 독서실 역시 성당이었습니다. 성당은 곧 제 집이었고, 저는 그렇게 신앙 안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던 중 중학교에 진학하며 복사단 활동을 하게 되었고, 그 인연으로 친구들과 함께 예비신학생 과정을 시작하면서 막연하게나마 사제의 길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신앙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기에 오히려 신앙 없이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모습일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는 부끄럽게도 사제직을 준비하던 신학생 시절뿐 아니라 사제가 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신앙생활을 너무도 당연하게 해왔던 탓에, 저와는 다른 배경에서 자란 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또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려는 노력 또한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약 3년 전, 대리구에서 청소년 관련 업무를 맡게 되면서부터 비로소 저와 다른 이들, 특히 오늘의 청소년들과 청년들의 신앙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본당에서 더 많은 청소년과 청년들을 만났을 때조차 미처 떠올리지 못했던 질문들이었습니다.
‘지금의 청소년들과 청년들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을까?’, ‘신앙은 그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기쁘게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일까?’
여전히 제게 청소년사목과 청년사목은 어렵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모르는 것 투성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분명하게 느끼는 점이 있다면, 청소년·청년사목의 출발점은 저와는 다른 성장 배경 속에서 살아온 그들을 먼저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입니다.
저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이들도 있겠지만, 전혀 다른 배경 속에서 신앙을 접한 이들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렇기에 제가 어린 시절부터 체득해 온 신앙의 감각이 다른 이들에게도 동일하게 느껴질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경험한 것이 전부가 아니며, 제가 알고 있는 것이 반드시 정답일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들의 처지와 상황을 진심으로 이해하려 할 때에야 비로소 오늘의 청소년들과 청년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교회가 그들에게 무엇을 건네야 할지에 대한 답도 찾아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듣는 행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성급히 단정 짓기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 현장의 목소리를 마음 깊이 새기는 것. 그리하여 그들이 교회의 가르침대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함께 고민하고, 교회의 주체로서 소속감을 가지고 기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동반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지금 교회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글 _ 이규성 요셉 신부(수원교구 제2대리구 청소년2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