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연이 경긔도 룡인군 내사면 남곡리 박 말구 신부 본당을 방문하게 되엿다. 이곳은 재작년 가을에 미산리본당으로부터 분활되야 새로된 디방인데 한적한 산곡 농촌으로써 야박한 세속을 떠나 모든 것이 순진하여 소위 도회생활을 하는 나는 말하지 못할 그 무엇에 취하엿다.
본당 五백여명 교우들의 함심된 것과 그 렬성은 이 남곡리를 빼여노코 다른 곳에서는 보지 못할 것이다. 박 신부 부임하여 남의 행랑방에 거처하면서 四十원이란 돈을 가지고 성당 건축에 착수한지 월여만에 四백명을 수용할 성뎐을 지어 텬주께 밧첫고 금년봄에 十여간 되는 신부사랑과 교우 사무실 七간을 지엇스며 천여평 되는 성당기디는 면내에 뎨일가는 명승디가 되여 원근촌민들의 흠모하는 복락디가 되엿다. 산골공소로써 아모것도 업는 가운데 두해동안에 이와가티 모든 설비가 된 것은 남녀로 소교우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큰일이나 적은 일에 로력과 물질을 다가티 부담한 결과이다. 자긔 일은 자긔가 해야된다 하고 로인이나 아해나 매일 두번식 성당에 올 때 반다시 돌 한등이식을 가저왓스며 터를 닥고 집을 지을 때 신부와 가티 목수도 되고 미장이도 되여서 완성하엿다 한다. 피와 땀이 엉키이고 렬정이 뭉치이여된 아름다운 이 성당에 더욱 빗나고 부러운 것은 인근 동리에서 교우들이 불피풍우하고 밤마다 성당에 모여서 만과를 가티 드리고 아침마다 미사를 참례하며 남녀로인회 남녀 청년회 소년소녀회의 여섯 단톄가 한주일동안 날마다 차례차례로 모여서 도리를 연구하며 교중일을 의론하는 것이다.
육신상으로나 령신상으로 나이와 가티 진심갈력하는 곳은 남곡본당 이외에 다른 곳에서는 보지 못할 것이다.
내가 방문한 때는 성모승텬첨례 전날이엿슴으로 말로만 드른 것이 아니라 그내들의 동심합력 하는 것을 목격하엿다.
四방리 웃동리에서 성당으로 오는 四대 통로를 수축하는 것이며 제대와 성당을 꿈이는 것이며 뎡원을 닥으며 록문을 세우고 경축설비를 하는 것과 심지어 풀 한폭이를 뽑고 문지를 터는 것까지라도 단톄단톄 개인 개인이 각각 분담을 하여 하나도 엿보고 잇는 이 업시 뉘기나 렬심이 하는 것을 볼 때 참으로 감복하엿스며 잠시 지나가는 나로써도 한엽헤 우드커니 안자잇기 불안하여 공연이 여긔도 한번 저긔도 한번 끼웃하면서 가장노리를 하엿섯다. 큰 첨례라서 특별이 이러한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크고 적은 일을 불고하고 항상 이와가티 한다고 한다. 잠시 머무른 나의 속단이 아니라 한가지로써 열을 증명하는 참된 사실이다. 돌이라고는 구경도 못하든 이 산우에 수수만개의 돌을 쓰고도 한편에 석산을 모으기 시작한 것 갓기로 무엇에 소용인지를 탐문한즉 지금 성당이 협착함으로 장래에 큰 성뎐을 지을 예비로써 지금부터 어론도 한개 아해도 한개식 성당에 올때 가저와서 모으는 중이라 한다. 남곡본당이 복락디가 아니면 이세상어듸서 또 복락듸를 차즈랴. 반도 각디 교우들이 다 이와가튼 렬성 이와가튼 결심 이와가튼 단합을 한다며 못할 것이 그 무엇이며 조선성교회는 얼마나 발뎐될 것이며 얼마나 행복스러우랴. (八月 十五一 車中엣)
C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