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가 오날이 아니며 래일도 오날이 아닌 것을 알진대 오날이란 것은 유구히 흘러가는 시간의 한 뎜인 것을 알 것이다. 어제 정오와 오날 정오가 다가튼 오후 ○시로대 어제 정오에 잇섯든 세상이 형편과 오날 정오에 잇섯든 세상의 형편이 절대로 다르도다. 하물며 작년 오날과 금년 오날이랴? 녯날에는 우리나라 신자들을 량반이라 하야 창옷을 입고 정자관을 쓰지만은 지금은 양복 양화에 안경 단장을 쓰고 량반이니 상놈이니 하는 소리를 쓰지 안는다. 서울 가는 손님이 녯날과 가티 말을 타고 갈리가 업고 비행긔를 구경 못했다고 사람이 공중에 날아다니지 못한다 할 사람도 업는 것은 다행히 긔차와 비행긔가 눈에 보이는 물건이라 말로써 듯지 아니할 때는 눈에 직접 뵈여주면 단순히 해결되는 까닭이어니와 녯날에 서당 접장 밋헤서 태고라 텬황씨는 하고 매마저 가며 글 배호든 늙은 부로들이 녀자는 언문이나 알고 편지나 한장 쓸 줄만 알면 된다 하야 딸자식을 움켜쥐고 안자서 아모러한 소리도 고지듯지 아니할 때는 문뎨는 전과 가티 단순치 안타. 늙은 싀어미가 자긔네의 싀집사리하든 그때 시절만 생각하고 젊은 아가씨들을 호령하야 본대도 아마 헛수고일가 한다.
한 집안으로 보아도 그러하거니와 한 사회로 보아도 역시 그러하다. 늙은 부모들이 자긔네들의 수계하는 것을 표준하고 젊은이들을 볼 것 가트면 젊은 사람은 텬주를 밋는 것 갓지도 안할 것이며 모도가 거잣 선지자 가티 보일 것이오 젊은 사람들이 자긔네의 생각만 표준하고 늙은 교우들을 볼 것 가트면 거의 맹신이오 미신 갓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누가 올코 누가 그리다고 판단하지 못할 것이오. 다만 한가지 그 해결 방법이 잇스니 곳 시대에 뎡응할 것이오 자긔를 표준하지 말 것이다. 녯날 사회가 그다지 복잡하지 아니할 때는 하로에 세번이라도 성뎐에 조배함이 가하거니와 지금과 가티 생존경쟁이 우심한 이 시대에 잇서서 어나 회사에 근무하는 젊은 사람이 열심수구한다고 하로에 세번식 성뎐에 조배할 수 업스리로되 이 랭담이 아니로다.
늙은 교우들이 이것저것 뭇지안코 신부의 말을 잘 듯는다고 너희들 젊은 사람도 잔소리를 마라 할 수 업는 것은 그 젊은 사람이 도뎌히 늙은 사람이 될 수 업는 까닭이다. 물론 엇더한 반역의 야심을 가지고 대항하고저 하는 사람이 잇스면 이는 결코 허용치 못할 것이로대 현대의 복잡한 사조영향이 심하고 과학뎍 지식이 비교뎍 풍부한 젊은 사람은 자연히 리해하기 어려운 뎜이 만흘 것이며 따라서 남보다 만히 뭇는 것은 오히려 맛당하도다. 여긔에 실례를 들 수 업거니와 우리나라 성교회이 목하의 형편에 잇서서 성직자의 가장 머리를 압흐게 하는 문뎨이로다. 그뿐 아니라 시대가 변천함을 따라 전교하는 방침도 다를 것이오 시대의 인물을 취급함도 달나야 할 것이니 이에 가장 필요한 것은 시대를 먼츰 통찰(洞察)하는 힘이다. 어제날과 오날날이 다른 것을 깨닭는 동시에 얼마나 다르며 엇더케 다른 것을 살피는 힘이 잇서야 할 것이오 또 이 힘으로써 능히 관찰한 뒤에는 자긔의 태도를 그데 뎍당하게 개량하야만 될 것이다. 이러케 하여야만 비로소 락오자(落伍者)를 면할 것이오 다시말하면 시대를 지배하는 자가 될 것이다. 시대를 통찰하는 힘이라 하는 것은 사람마다 선천뎍으로 다른 것이로대 그는 가장 미소한 뎡도에 잇고 뎨일 요긴한 것은 보통 상식을 가질 일과 시대사상의 주조의 변천을 주의하야 연구할 일과 사교(社交)를 힘쓸 일과 사회에 나타나는 모든 현상을 고찰할 일 등이다. (신문잡지는 웨 읽느냐! 생각해 보면 알 것이다) 누구를 물론하고 우헤 말한 이 네가지를 힘써 행하여 할지니 종교가 임으로써 불필요하다는 론리는 도모지 업다. 종교가는 사회의 정신을 양육하고 인도하는 의무를 가진 자인 연고로 오히려 다른 사람보다 더욱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의미로 보아도 전일경성신학교 학뎨 변갱은 원주교 각하의 현철한 처리라 아니할 수 업도다.
므랏 시대를 통찰하야 시대에 뎍응한다 함은 시대를 따르는 것과 크게 다르니 전자는 내가 시대를 관찰하고 내가 시대에 뎍응함이니 곳 시대는 변천할지라도 나는 변할리 업고 오직 내가 엇더케 활동할가 하는 태도만 변할 것이어니와 후자는 벌서 내라는 주톄를 일허버리고 바람이 부는대로 시대가 이러케 변하면 나도 그러케 변하여지고 시대가 저러케 변하면 나도 저러케 변하여 짐이니 곳 내가 밋는 바 완전한 표준과 리상과 진리가 업고 박게서 들려오는 소리만 듯고 배회하는 소위 류행을 따르는 것이다. 류행을 따르는 자는 시대를 지배할 능력도 업고 도로혀 시대의 변동을 밧고 잇스되 내가 부는 바람대로 헙쌀려 다니는 그것도 자각하지 못하는 맹목이 만토다. 이러한 류는 소위 신인(新人)이라고 자층하는 젊은 사람들이니 아직 진리를 파악치 못한 그러나 허영과 호긔심이 가득한 청년들이 비교뎍 죄업는(無邪氣) 교만으로써 시대의 선구자로 자처하야 의미야 알든 모르든 양장미책을 엽헤 시끼든지 혹은 xx팜프레트를 손에다 쥐든지 하고 우리 xxx대중! 과학이 진보된 이 시대에! 운운 부라짓는 자들이다. 우리가 흔히 보거니와 이와가티 류행따르는 청년이 우리 교중에도 적지 아니하니 독자제군이여 공연히 원탄과 저주만 발치말고 고요히 해부의 리인을 들어보자!
녯날 우몽한 시대에는 면병을 예수의 몸이라 하면 두말 업시 그대로 미더왓거니와 지금 청년들은 과학뎍으로 결코 그러케 될리가 업스니 이는 한 비유이거나 그러치 아니하면 거울 속에 사람의 형상이 비최임과 같티 면병 속에 예수의 형상이 비최이는 것이 아닐가 하야 아모리 하든지 과학뎍 타당성을 갓게 하고저 로력하는 것은 우헤 말한 류행을 따로는 청년 남녀의 심리니 좀 더 로골뎍으로 바로 말하면 우리가 밋고 잇는 도리이 모든 해석을 시대를 따라 뎍당하게 박구어야 할지며 시대의 진화를 따라 종교도 진화하야만 될 것이어늘 엇지 우리 교회는 이러케도 보수뎍인가 하고 처음에는 엇더한 의분을 늣기고 다음에는 등한시 하고 다음에는 교회와 절연이다. 우리는 이러한 자들을 불상히 녁이기 한이 업거니와 오늘날까지 이러한 자들을 구하는 긔관이 업섯고 잘 인도하지 못하고 잇는 것은 또한 우리의 책임이로다.
대뎌 련애는 무엇인가 련애는 아모러한 목뎍을 가지지 아니하는 것인가. 또한 엇더한 목뎍이 가뎡생활과 사회생활에 가장 타당한가. 련애는 인생과 엇더한 관계에 잇는가. 이런 것은 생각해 보지도 안코 사회청년들이 자유련애를 만히 하고 리혼을 하는 것이 올타고 주창하니 처음에는 호긔심으로 귀를 기우려 보고 다음에는 잠간 어두운 세계에 방황하고 다음에는 안헤가 차차 보기 실흔 동시에 신신녀성이 눈에 뜨이고 다음에느 가뎡에 분란이 생기고 다음에는 디옥에 누가 가보앗나 하게 된다.
이는 우헤도 말한 바와 가티 시대에 뎍응함이 아니오 류행을 따르는 것이니 류행을 따르는 자긔로서는 시대에 뎍합함이라 할 것이로대 이러한 조고만한 주관을 떠나 큰 눈으로 볼 때에는 이 사람은 참된 자유를 일헛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로다. 시대에 뎍합함과 류행을 따르는 것은 이와가티 개념뎍으로 판연히 구별하여 보앗지만은 사실에 잇서서 일일히 구별하기는 심히 어려운 문뎨이다. 그러나 이 문뎨를 우리 카톨릭정신으로 볼때에는 극히 단순하다 할 수 잇스니 곳 영원불변하는 텬계의 진리를 객관뎍 표준으로 삼아 시대야 엇더케 변하여가든지 총(진리)은 그자리에 두고 총끗(교회, 개인)이 향하는 방향(행동)만 시대에 따라 곳처서 그시대를 정복하는 탄환을 발사할 것이오 - 이는 곳 시대에 뎍응하는 것 - 결코 시대를 따라다니며 총 자신을 옴기지 못할지니 - 이는 곳 류행을 따르는 것 - 따라다님은 벌서 정복을 바든 것이 아닌가. 어데로 보고 탄환을 발사할 것인가. 끄트로 일례를 들어 알기 쉽게 말하여 보자. 부모가 자식을 결혼식힌다 하자. 녯날에는 부모가 뎍당한 배우자를 선택하야 자식에게 혼배성사를 밧게하엿다. 그러나 자식은 아모 말업시 순종하엿다. 그러케 하야도 그때 자식들은 마음에 다 만족하엿다. 바란 지아비와 바란 안헤가 되엿다. 그러나 보라! 지금 자식들은 그러치 못하다. 자긔의 마음에 합당치 안흐면 부모의 명령을 듯지 안한다. 부모가 강뎨로 결혼을 식힐 수 업게 되엿다. 서로의 합지 아니한 부부가 엇지 바란 지바이봐 바란 지어미라 할 수 잇스리오. 그럼으로 지금은 녜전과 가티 자식을 결혼식힐 수 업다. 녜전과 가티 하여서 혼배성사를 헛되이 령케 할 수도 잇슬 수 잇다. 그만큼 시대가 변하엿다. 변하여진 지금 시대에 잇서서 그러면 어더케 하여야만 될가. 자식의 자유를 존중하는 수 밧게 업다. 그러타고 부모가 부모 아닌 것은 아니다. 이것이 곳 시대에 뎍응하는 것이다.
자식은 또한 한번 혼배하면 종신토록 일부일부의 가뎡생활을 하야만 되는 진리를 밋고 뎍당한 배우자를 선택하되 독단뎍으로 하지 말아야 쓴다. 더구나 세상에 흔히 잇는 정남정녀의 소위 자유련애니 결혼이니 하는 탁류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이는 곳 류행을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때에 젊은 자식이 경솔한 의사의 실시뎍 육정으로 배우자를 선택하야 결혼하고저 하거든 부모는 부모의 권리로써 그 자식을 그릇되지 안토록 엄중히 감독하여야 될 것이오 이와 맛찬가지로 이 자식이 자긔의 리상과 감정에 맛는 배우자를 정당하기 선택하엿스되 부모는 세속톄면이라든지 혹은 인습과 풍속을 문히칠가 하야 자식의 자유를 끈흘 량이면 자식은 부모를 순종할 필요가 업스니 부모의 말삼보담 텬주의 말삼이 나혼 때문이로다. 그러니 부모는 텬주의 뜻대로 자식을 가라치며 인도할 것이오 자식도 텬주의 뜻에 합하기 위하야 부모를 섬겨야만 된다 말이다.
이와가티 행하는 부모와 자식들은 영원이 불변하는 진리를 준행하되 시대에 뎍합하게 하엿고 류행을 따르지 아니하엿스니 이는 곳 시대를 지배하는 자라 하겟도다. 세상에 흔히 사람의 외모를 보고 그 사람을 비평하는 자가 잇도다. 엇든 녀자가 단발이나 하고 양장이나 하고 안경이나 스고 화장이나 이상하게 하고 다니면 함부로 그 사람은 버린 사람가티 녁이고 손구락질을 하는 자가 만타. 그러나 이것은 너무나 경솔한 비판이다. 대개 류행을 따른다는 것은 우헤도 여러번 말하엿거니와 자긔의 개성을 일허버리고 시대의 변천에 맹종하는 것을 말함이라 결코 그 사람의 외모에 관게되는 바가 아니로다. 양복을 입고 안경을 쓴 연고로 그 사람이 못된 사람일 것 가트면 그 양복만 벗고 안경만 쓰지 안흐면 착한 사람이 될 것인가! 그럼으로 늙은 사람들이 새로운 청년 남녀들을 무조건하고 너무 가혹하게 다갈시(蛇蝎視)하는 것은 잘못이롣. 그러나 우리도 인격이 놉지 못한 사람이 외모에도 그 무인격함이 나타나는 사실을 모르는 바가 아니로대 지금 여긔에서 말하고저 하는 것은 그러타고 그 사람은 류행을 따르는 자라고 할 직업 리유가 되지 못한다 함이오 가장 요긴한 것은 그 사람이 시대를 지배하고저 하는 정신이 잇는가 업는가 하는 것이라 함이다.
一九二九 · 八 · 一三
李孝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