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聖堂巡禮(성당순례) (10) 馬山本堂(마산본당)

강정우
입력일 2025-11-26 10:00:36 수정일 2025-11-26 10:00:36 발행일 1928-11-01 제 20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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녯날부터 洋國사람 춤흘닌 곳 어데메냐 금수강산 남쪽끄테 馬山港이 여긔로다

洋洋한 波濤소래 舞鶴山 가을 달빗

때맛참 가을이다. 한만흔 가을날에 한깁흔 마산항을 차저 또다시 한만흔 완월동(玩月洞)에 석조뎐(石造殿)을 순례한다.

 

정조(情調)가 무러녹은 남쪽나라의 깁흔 가을! 그중에도 마산의 가을이야 그야말로 아람답다.

 

소실한 바람은 양양한 바다에 울고 두렷한 찬달(寒月)은 무학산(舞鶴山)에 잠겻더라. 가을 아가씨가 푸른 장막 속에 숨어안자 한폭 두폭의 붉은 수(繡)를 섬섬이 노흘적에 저 달이 저믈도록 버래소래 슯헛는데 서리찬 새벽하날 기럭이 울고간다. 부평신세 어부들의 애끗는 노래가락 적막한 바다밤을 기어히 울니고 만다.

 

玩月里에 玩月하고 石造殿에 參拜가자

그림 가튼 마산의 가을 빗! 그림 안에 그림 가튼 완월리의 가을 달빗! 가을달이 자랑이냐 이 속에 석조뎐이 업다면은 무엇이 그리 자랑이랴? 조물주의 위대한 조화력을 여긔와서 절하리라. 압흐로 만경창파를 어루만지며 三만부민(府民)을 끼여안고 엽흐로 백절폭포를 솔밧헤 끼고 청학백학이 우줄우줄 춤추든 무학산(舞鶴) 등에 업고 파란 이 중첩한 三十년을 묵묵히 지나오며 오날날 남다른 색채(色彩)로 반도남단(半島南端)을 직희고 안즉이 석조뎐은 오고가든 선교사들의 방울방울 흘려노흔 피와 땀의 탑이로다. 정성과 신념(信念)으로 꿈여노흔 뎐당(殿堂)이며 미신의 항구(港口)를 진리의 포구(浦口)로 만들 요색(要塞)이다.

 

春雨秋風 三十年에 生離死別 몃번이냐

一九○○년에 비로소 엄 신부 부임되여 진주(晋州)와 아울너 관리하게 된 그 이듬해에 성당 긔디를 매수하고 튼튼한 긔초를 박은 뒤에 불행히 엄 신부 전임되고 현 남방 부감목인 문 신부 신임되다. 그때 마산의 교우수가 겨우 十三四인에 지나지 안헛든 미약한 교회엿섯다. 그러나 백절불굴한 용력의 주인공인 문 신부는 七九○四년에 조선식 와가(瓦家)의 성당을 건축하고 시대에 순응하야 청년 자뎨를 교양하는 성지학교(聖旨)까지 설립하엿더라. 우흐로 나리시는 힘이 민활한 목자의 정성을 도와 복음의 라팔소래 널니널니 고함치니 진교로 나오는 자 날을 니어 맛핫스나 행이냐 불행이냐- 一九一一년에 조선텬주교회가 남북으로 난호여 대구교구가 신설될 때 문 신부는 남방교구의 당가신부로 영전(榮轉)되다. 정으로 마젓다가 눈물로 보낸 뒤에 간 신부 니어 부임되다.

 

殉國의 붉은 피만 永遠히 새로워라

목자의 성무와 국민의 의무를 다하든 간 신부는 三년이란 날과 달을 하로가티 땀흘니며 보낸 뒤에 一九一四년 구주대전란이 세계를 뒤헌들 때 평소에 애국심이 깁든 그의 엇개에도 조국의 흥망이 저울질하는 총과 칼이 매이게 되엿다. 멀니 동반도를 바라보며 순국(殉國)의 붉은 피만 조국산천에 남겻스니 마산의 교우들은 나수지 못할 상처의 긔억만 가삼에 안고 새로 후임된 목 신부를 눈물과 우슴으로 맛게 되엿더라.

 

本堂公所 八個所 千餘百信徒者

신임된 목 신부는 텬성이 온후하야 사랑으로 사람을 대하고 열성으로 일을 접하니 오날날 마산본당에 三百여명의 교우를 혜아림이 그리 우연함이 아니겟다. 소속공소가 八개소인데 교우수가 千百여명이며 긔관은 교회 자치를 목뎍한 동지회(同志)와 교회 발뎐을 위주한 인애회(仁愛), 소년회, 부인성모성심회가 잇다.

 

성당은 순전히 돌로 지엿는데 七千여원의 큰돈으로 금년 四월부터 공사를 시작하야 九月에 준공락성하고 九月二十六日에 림시충성식을 거행하엿더라.

 

이 성뎐은 녯날 살로몬 현황이 선왕때부터 금은보옥을 만히 모화 예루사름 성뎐을 지엿슴 가티 본당 목 신부가 十년을 정성으로 돌을 다듬고 로력으로 풀을 붓처 한층 두층 싸흔 영원불후(不朽)의 공탑이다. 수천명 교우들은 열광의 환희로써 새 성뎐에 참배하니 조선의 자랑이며 마산의 영광이며 텬주의 깃븜이다. - 끗 -

 

一記者

 

(사진설명 : 신축 락성된 마산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