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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地方消息(지방소식)] 福者記念殿(복자기념전) 祝聖(축성) 美山里敎會(미산리교회)에서

강정우
입력일 2025-11-26 10:00:36 수정일 2025-11-26 10:00:36 발행일 1928-11-01 제 20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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녯일의 追憶은 새로워라 오날의 歡喜는 感慨無量

九月 十八日에 안성군 양성면 미산리교회에서 복자긔념성당 축성식을 경성 원 주교 각하께서 친히 거행하시게 되엿스니 이는 우리 조선 텬주공교 력사상에 한가지 신긔록일뿐만 아니라 거륵한 성디로 영원히 두고 참배할 우리 조선 교우의 뜻잇는 성당이다.

 

전능전지하신 텬주께서 이 九월 十八일로 은밀히 간선하사 복자의 성디를 성당으로써 영원히 긔념하실 줄을 그누가 짐작이나 하엿슬가?

 

과연 아지못케라! 텬주의 전능이며 인류의 압일이며 세상의 변천, 과히 머지아니하나 지나간 백여년의 우리 교회사를 회고할 때에 누구나 물론하고 첫긔럭, 첫 인상인, 저- 서울 한강부근 새남터에서 무지한 포졸과 암매한 관장들에게 무죄히 압박을 바드시며 강무리 흘너가고 남은 백사장에 최후의 순교혈로 붉게 물드리신 우리 김신부일 것이다.

 

김 신부께서 치명하신후 시쳬를 그 백사장에 뭇고 四十일간을 수졸들의 수직으로 인하며 엇지할 수 업다가 그래도 그곳에 그대로 두는 것은 올치 못함으로 그때에 교우들이 몰내 시톄를 지금 긔념성당을 세운 미산리에 이장하엿다가 三十년전에 룡산 신픔학교 성당으로 옴기여 모든 학생으로 하여곰 그애닮은 죽음의 뜻을 나날이 생각게 한다 하며 김 신부를 친아달 가티 사랑하시든 고 주교의 시톄는 지금까지 미산리에 뭇치엿스니 이곳이 미산 교우들의 공동묘디인 동시에 김 신부 묘디와 고 주교 분묘 우에 세운 성당이 곳 복자긔념성당이다.

 

녯亡靈은 깃버 웃을 福者聖堂의 첫미사

때는 十八일 오전 八시엇다. 주교 신부들을 선두로 하고 수백 교우가 느러서서 찬찬한 거름과 경건한 태도로 길게 행렬하여 복자성당을 차저가니 산고수려 거륵한 곳에 성당 좃차 정묘하엿다. 천여원의 경비가 들엇다 하며 四十여호나 되는 미산리 교우형뎨들의 감사를 바들만 하게 되엿다 한다. 먼저 성당을 축성한 후에 주교께서 미사를 지내시니 정숙한 가온대에 울니는 미사방울소리며 산곡을 울리는 청아한 복자축가는 텬상의 녯망령을 얼마나 깃부게 하엿스며 디하이 백골도 얼마나 용약하고 십헛슬 것이엇다.

 

참으로 아참 이슬에 뭇치여 치치하게 우는 가을 버레소리가 야륵하게도 들릴만치 정숙도 하엿고 가산려수가 터저날만치 깃붐의 긔분이 넘치기도 하엿다.

 

약 두시간동안 복자긔념성당에서 미사와 모든 례절을 엄숙경건하게 맛치니 아름답고 정묘한 그 집은 그때로부터 아주 거록한 공당인 우리의 참배소가 되엿다. 모든 교우들이시여 어너 긔회를 리용하시든지 한번 이 성디를 차저오사 도라가신 김 신부를 새롭게 생각하시며 참대하시기를 바라나니다.

 

努力의 最後인 落成祝賀式을

오전 十一시경에 주교신부들이 림석하고 수백 남녀교우들이 회집하여 락성축하식을 개하니 강개가 무량한 축사와 의미심장한 원 주교 각하의 답사와 래빈신부, 밋 교우제씨의 축사도 잇섯스며 주교 강복으로 페회하엿다. 모든 식이 깃분 가운데서 맛친 후에 축하연이 잇서 일동이 함께 떡을 난호앗다. 이러케 이날 하로를 영원이 두고 긔념할 것이 다만 미산리 교우들의게만 한하여서가 아니오 우리 조선 十만 교우는 다가티 잇는 것인 동시에 우리는 힘써 주께 긔구하여 속히 모든 복자가 성인픔에 오르시는 경사의 날을 맛기로 널리 三억三천만 전세계 우리 형뎨들의게 빌며 바라나이다.

 

安城特派 禹宗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