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奉仕(봉사)와 自治(자치)

강정우
입력일 2025-11-26 10:02:05 수정일 2025-11-26 10:02:05 발행일 1928-10-01 제 19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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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생활에는 봉사뎍(奉仕的)이 겸한 것이다. 의식뎍(意識的)이거나 무의식뎍(無意識的)이거나 반다시 봉사뎍이다. 벌이 꼿으로 인하야 생활하는 동시에 꼿은 벌로 인하야 종자(種子)를 맷게됨 가티 우리의 매일 소위(所爲)도 리긔뎍(利己的)으로만 돌아갈 것 아니요 남에게까지 리익을 베플게 된다. 보라 농부가 씨를 부릴 때에 자긔 일신만 위하야 족한 씨를 심으고 김매고 거두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런즉 남이 지은 그것은 곳 봉사(奉仕)에 공헌(貢獻)할 바 되는 것이다. 우주(宇宙)의 법측에 그러하다. 이 법은 서로 사랑하라 하신 예수의 지으신 법이다. 이 법에서 운동하는 우리는 더욱 신덕의 진광(眞光)을 바든 우리는 의식뎍(意識的)으로 봉사(奉仕)의 인이 되여야 한다. 매일 소업에 그러하여야 하겟지마는 우리 황해도 七千 교민은 더욱 봉사의 인이 되여야 할 필뎍(必勢的)이다

 

이는 타도 교민을 제하고 우리에게 특히 주신 직책(職責)이다. 본시 자치(自治)가 황도에 제한(制限)은 업지마는 황해도 홀로 자치의 제한을 바닷다. 그 아니 특뎐(特典)이며 행영(幸榮)이냐. 이 행영을 일코 아니 일홈은 전혀 자치를 말로뿐 아니라 실디(實地)로 하고 못함에 달렷나니 그아니 로심초사(勞心焦思)할 문뎨인가?

 

텬주의 은혜 보담도 엇지면 불란서 외방전교회의 은혜를 더 먼저 생각할 만치 되여온 우리 조선 텬주교회이다. 이에 또다시 자치(自治)의 복음을 우리의 귀에 울리어준 지도 발서 반년이나 되엿다. 자치의 본의(本意)를 아는가? 모르는가?

 

웨 이에 대한 봉사의 정신을 또 성의를 손과 발로 표현(表現)치 아니하는가? 우리 조선에 자치야 되든마든 구령이나 하여스면 그뿐이라 할 수 업게 된 우리 황해도 교우이다. 이는 봉사의 정신이 업는 이의 입이다.

 

그뿐이면 모르겟지마는 이는 오늘날 교회 자치를 요구하시는 텬주의 성지(聖旨)를 등지는 죄로운 말이다. 내가 구령할 긔관(機關)을 내가 짓고 남이 또한 구령을 닙도록 하려함이 곳 말하고저 하는 봉사의 본의(奉仕本義)이다. 외방전교회(外邦傳敎會)에서 웨 우리에게 자치를 식히는가? 미운 자식이 만하 분가(自治)를 식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장차 아름답게 교회살림하는 것을 한번 보고저 하는 소망에서 일층 더 사랑하는 마음에서 지도(指導)하는 것이다. 자치는 결코 우리의 은공자(恩功者)인 외방전교회를 구축(驅逐)함이 목뎍도 아니요 한번 그러한 의미하에서 미소한 행동이나마 할 수 업는 것이다. 오히려 오직 외방전교회에게 바든 만흔 은혜를 감축히 생각하며 또한 잘 감사하려한즉 그 회의 본 목뎍을 성취조장(成功助長)함에서 더한 것이 다시 업슬 것이라 우리가 자치됨이 그 회의 본 목뎍이다. 우리의 긔능(器能)에 응하여 단 황해도 뿐만 아니라 전조선이라도 어서 밧비 자치를 식혀주려 함이 곳 외방전교회의 정신뎍 목뎍이다. 결코 그네들은 우리 조선땅만 전교할 곳으로 알고 잇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굉의하(宏意下)에서 교회박해(迫害)가 침식함으로부터 오날까지 헌신(獻身)하여온 결과 비로소 자치의 복음을 울리엇다. 이는 곳 四五十년간 속성의 성적발표(成績發表)이다. 이 복음이 전조선에 울리엇다. 더욱 우리 황해도에 울리엿다. 이 복음이 울림은 우리의 영광보담도 먼저 외방전교회의 광영이다. 그다음으로 우리 황해도의 특별한 은혜의 영광이다. 오날부터 우리의 매일 소업은 아 자치를 위함에 잇어야 하며 우리 정신에는 이 자치의 생각을 노치 말아야 하겟도다. 자치라 하니 그 일을 누가 할 일인가? 각 사람의 일이 아니면 또다시 뭇노니 그 누구의 할 일인가? 황해도 내 산골작이마다 들구석마다 다 차자 그가 교우이면 남여로유를 물론하고 실례곱지만 다시 다시 또 다시 뭇노니 그 누가 할 일인가? 자치에는 금전이 문뎨도 업슬 수 업지마는 그보담 먼저 정신의 자치가 급선무이다.

 

세속사에 무듸지 아니한 정신으로 자치의 더 클 수 없는 문뎨를 잘 리해하여 줄진저 심산고령에 홀노 은연히 아람답게 피어잇는 적은 꼿 하나홀 보라. 사람의 칭찬을 드르려고 피어잇는 것으로는 볼 수 업다. 다만 텬주의 뜻대로 우주(宇宙)의 미(美)를 도읍는 그의 본직을 일우고 잇슬뿐이다. 자치를 위하는 봉사의 사업도 남의 칭찬이 아닌 만큼 텬주의 성지를 위하야 할 우리의 본직이다. 남이 꽹가리 소리나 박수 소리에 흥이나서 할 일이 아니요 오직 우리 출세뎍(出世的) 본부로써 알아야 할 일이다. 이 잔이 쓰거나 달거나 반다시 마서야 할 잔이다. 그럼으로써 보면 구령지사에까지 관계가 업지 아니한 문뎨이다. 자치를 아니함은 곳 텬주의 뜻을 거사림이 됨으로써 그러타. 세인은 남이 수고하고 애쓸 때에는 조곰도 원조(援助)할 정신은 업고 독부득으로 사업(事業)을 정지(停止)하면 비평(批判)이나 욕을 하는 것은 자긔의 임무로 안다.

 

이만치 떠든 황해도 자치는 발서 박수소리가 끗나고 마는 듯 하다. 이는 그 누구의 죄이랴. 이 자치가 너무나 지완(遲緩)되거나 가지에 정지가 되는 상태에 니르러서는 아니될 일이다. 그에 대한 치욕(恥辱)을 그 누구가 바들가? 자치는 오직 사람을 표준치 아니코 오직 텬주를 표준할지며 남의 칭찬을 위함이 아니요 텬주의 정신을 위할지나 의로운 톄면은 좀 보아야 할 진저 오늘과 가티 또래 일을 보낼 수 업는 우리이다. 봉사의 정신으로 실천(實踐)하자. 사회자치를 위하야서도 피를 앗기지 안커든 하믈며 종교자치를 위함이랴. 신덕이 잇는가 업는가?텬주의 영광을 위하고 남의 구령을 위하는 봉사의 정신 아레에서 그날 그날의 의식을 구하기에 쓰고 남은 꾀와 힘을 다하여 자치에 봉사할 임무를 진 황해도 내 교우제씨여 한번뿐 아니라 때때로 또다시 깁히 생각하여 주어 긔어히 참자치의 교민이 되여지이다.

 

黃海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