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산은 경부선 왜관역에서 남쪽으로 이십리가량 되는 곳인데 뒤로 산을 등지고 압흐로 락동강을 림하야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다.
거금 四十一년전에 김베드루(熙斗)씨가 들어온 것이 처음 텬주교의 전래이며 본래는 신나무골이 그디방 일대의 전교근거디가 되야잇엇다 한다. 三十三년전에 도라가신 대구 바오로 김 신부께서 교통편리한 점으로 락산동에 성당을 신축하고 하 신부께서 부임하사 전교하심에 동민들이 서국인이 드러온 까닭에 동내가 망하겟다하야 소동하며 일시는 반대가 맹렬하엿다 한다. 그후 옥 신부, 소 신부, 려 신부, 남 신부 또다시 려 신부의 차례로 지금에 니르럿난데 소속공소가 십오이오 교우가 九백七십四명이라 한다. 재래의 성당은 조신집이오 협착함으로 공비 이만여원을 듸려서 대정 八년에 긔공하야 十三년 가을에 준공하고 제제작년 교황대사 오실 때에 축성식과 성대한 환영식이 잇섯다한다. 소속단톄로는 유디청년의 회합으로 락산공교청년회(교회발뎐을 목뎍)를 조직하야 회장 리종문 군으로써 회무를 처리진행하며 미구에 남방텬주공교청년회(대구)의 지회가 되야 서로 련락하리라 하며 주일마다 도리연구회를 열어 남녀일반교우들의 래청자가 만아서 질문해답에 의견이 교환되야 매우 자미잇게 나아간다 한다. 찬양대난 소녀들노 조직되야 동정 김요안나씨의 지도로 경문을 강습하고 미사때와 성톄강복 때에 찬양을 드린다 한다.
이천년 전에 예수 친히 유데아 광야에서 『내 뒤를 따르라 영복의 곳으로 가리라』고 부르지즈신 복음소래가 우주를 가로흘너갈 때 풀이 욱어진 슬슬한 산곡 락동강이 기우새 갈곳 몰나해매고 숩속의 부헝새 슯히 울던 적막한 이곳까지도 울니여와서 진교의 도리를 배와 영생의 길로 나아가는 뎨자가 일가월증하는도다.
동내우 높흔 등대에 자리잡은 성당은 뒤로 당산은 푸르럿고 유유한 락동강 두덕에 꼿필때 텬사가 놉흔 언덕에서 하늘나라로 손가락질하는듯 진세의 죄악을 멸하고 사랑의 길을 밟게 인도하며 삼시로 종각에서 울니는 종소래는 떨니~ 강건느고 산넘어 안식의 닮을 헛터주고다.
생에(삶에) 골몰한 그들도 한주일동안 논갈고 깁매기에 비지땀을 흘니다가 주일이 되면 중우가래미금 툭툭털고 깨끗한 맘으로 희미한 안개속에서 성당으로~이날 하로를 텬주께 밧처곤 한 령을 기르기 위하야 깃븜의 미소가 얼골에 빗나며 멀고먼 사방에셔 모여들어 환희의 노래 성당을 울니운다. 본당 공소 잇는 왜관은 교통이 편리하고 곡물의 집산이 성하야 이디방 중요한 곳이오 교우들의 열심이 지극하야 전교에 힘쓰난고로 교우가 날로 부러가며 또한 속히 성당을 세우고저 운동중이라 한다.
사진설명 : 사진은 락산성당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