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의 창

기억 –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성찰

박효주
입력일 2025-08-20 09:30:08 수정일 2025-08-20 09:30:08 발행일 2025-08-24 제 3455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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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것을 기억하라.”(신명 16,12 참조) 하느님은 고통받던 그 시간을 잊지 말라고 당부하신다. 기억은 단순한 과거의 회상이 아니다. 그것은 정의와 연민을 일깨우는 거룩한 부르심이다. 또한 약한 우리 안에서 이루신 하느님의 놀라우신 일을 관상하도록 초대한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여성들의 아픔은 우리 민족에게 깊은 상흔이다. 이 세월의 결은 우리 민족 안에 굽이굽이 흐르는 ‘한(恨)’의 정서 안에 새겨져 결코 잊힐 수 없다.

한반도 오욕의 역사는 남산 ‘국치길’에서 생생히 되살아난다. 이토 히로부미가 버젓이 거닐던 길목에서 통감관저, 조선총독부, 조선신궁으로 이어지는 공간은 우리 민족이 겪은 치욕과 수난의 현장이다. 1910년 8월 22일 이완용과 데라우치가 한일 강제 병합을 맺은 그 터에 2만여 시민이 모여 ‘기억의 터’를 조성하였다. 우리 민족에게 그곳은 단순한 기념지가 아니라, 고통의 기억이 현재를 관통하며 미래를 밝히는 ‘원체험’의 장소이기도 하다.

기억의 터는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처절한 고통을 증언한다. 그러나 이 기억의 표적은 2023년 9월 5일 새벽, 일본 정부가 아니라 우리 정부에 의해 기습 철거된 후 재설치되었으나 그 의미는 약화되었다. 이는 과거를 지우려는 시도이며, 진실을 애써 외면하고 고통을 부정하며 오욕의 역사를 미화하는 행위로 보인다. 그 역사적 현장에 곤돌라 설치 공사를 한창 진행하여 관광 명소로 탈바꿈해 나가는 현장에서도 탄식하지 않을 수 없다.

한반도의 역사는 아무리 미화하려 해도 식민의 기억을 지울 수 없다. 공감의 부재는 ‘악의 평범성’으로 이어진다. 홀로코스트 생존 유대인 한나 아렌트(1906~1975)가 경고했듯,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와 행동의 무능으로 확장된다. 국민의 아픔을 외면하며 일본과의 파트너십을 운운했던 오욕의 시간은 역사적 책임과 도덕적 감수성을 저버린 무능과 어리석음이었다.

우리는 하느님이 ‘연민의 아버지’이심을 고백한다. 하느님은 고통받는 이들의 소리를 외면하지 않으시며 그들과 함께 아파하시고 존재의 변혁을 일으키시는 분이다. 이 신앙의 맥락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을 기억해야 한다. 수치심과 치욕에 짓눌려 침묵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는 우리들의 숨은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인간답게 살 권리를 빼앗긴 채 어둠 속에서 살아야 했다.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는 기억의 터, 큰 바위에 새겨졌던 문구를 떠올린다. 우리에게는 고통의 역사를 세상에 알리고 정의를 실현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인권은 모든 사람에게 태어날 때부터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한 존엄과 자유의 권리이다. 기억의 터 진입로를 벗어나면 보이는 세계인권선언문 제1조가 명시하듯, 인권은 아무런 조건 없이 모든 이를 포괄한다. 8월에는 ‘고통받는 이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 즉 ‘인권 감수성’을 한껏 길어 올리자. 역사적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회는 정의와 평화를 이룰 수 없다.

기억의 터에 누워 있던 바위들과 관저 터 앞에 우뚝 선 400년 된 은행나무가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누구인가?”, “무엇을 기억하는가?” 이 질문 앞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묻고, 민족과 인류의 정의로운 미래를 위해 지금, 이 시간 무엇을 해야 할지를 결단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원체험의 회복이며 우리를 다시 정의롭게 일어서게 하는 힘이다.

우리 신앙은 단지 과거를 기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기억으로 인해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되찾는 데(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찬미 받으소서」 84항 참조) 의미를 둔다. 인권을 유린당한 이들 안에 아로새겨진 아픔과 세월의 격랑이 우리 안에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를 바라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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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이은주 마리헬렌 수녀(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