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위하여 목숨 내어놓음’ 시복시성 가능한 안건 해당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고 선종한 고(故) 배문한(도미니코) 신부의 시복시성을 염원하는 31주기 추모미사가 8월 3일 부산 강서구 생곡동 배문한 신부 생가에서 봉헌됐다. 배 신부는 1994년 8월 5일 강원도 삼척 인근 바닷가에서 서정동본당 신자들과 휴가를 보내던 중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세 사람을 구조한 뒤, 탈진으로 선종했다.
최인각 신부(바오로·안식년) 주례로 봉헌된 이날 미사에는 한용희 신부(대건안드레아·중견사제연수)와 배 신부의 유가족, 구조된 이들, 당시 현장에 있던 신자들, 부산교구 명지본당 반석회 회원 등 30여 명이 함께했다.
이날 미사는 배 신부의 시복시성 가능성을 확인하는 자리로 더욱 뜻깊었다. 생가에서의 미사를 제안한 최인각 신부는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2017년 7월 11일 발표한 자의교서를 통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내어놓음’(요한 15,13 참조)의 안건으로도 시복시성이 가능하다고 하셨다”면서 “바로 배 신부님이 그 후보자가 될 수 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 자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구조된 이들은 “그동안 ‘신부님을 죽게 만든 죄인’이라는 죄책감을 안고 살아왔다”고 고백했고, 이에 최 신부는 “이제는 신부님의 이름을 세상에 드러나게 할 가장 큰 천사들”며 위로했다.
“그동안 ‘신부님을 돌아가시게 한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다”는 구조된 이들의 고백에, 최 신부는 “그동안 신부님을 돌아가시게 하신 분들로 살았지만, 이제부터는 신부님의 이름을 드러나게 할 가장 큰 천사들”이라고 말했다.
「배문한 신부의 죽음과 성덕에 관한 고찰」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쓴 한용희 신부는 “배 신부님의 삶과 성덕, 명성은 시복시성으로 이어져야 한다”며 “아직 배 신부님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배 신부님의 숭고한 정신과 영성을 알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미사에 참례한 이들은 배 신부가 늘 강조하던 ‘사랑의 혁명가’, ‘십자가의 프로선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구호로 외치며 미사를 마무리했다.
배 신부의 생가에서 미사를 봉헌한 순례단은 배 신부의 생가를 관리해온 명지본당을 찾아 본당주임 전동기(유스티노) 신부와 신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배 신부의 생가는 병인박해 때 순교한 조석빈·조석증 형제의 묘소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배 신부의 선조들은 조씨 문중의 반대로 선산에 묻힐 수 없었던 형제 순교자들을 집 뒤 언덕에 묻고 순교 사실을 후대에 전했다. 명지본당 반석회는 배 신부의 생가와 조씨 형제 순교자 묘소를 관리하고 있다.
배 신부는 1934년 경남 김해군 녹산면 227번지(부산시 강서구 생곡동)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농경제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뒤 가톨릭대학에 입학, 로마 우르바노대학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1970년 5월 로마에서 성 바오로 6세 교황에 의해 사제로 서품됐다. 이후 여주·서정동본당 주임, 광주가톨릭대 교수, 수원가톨릭대 학장 등을 역임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