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교회의 숨은 일꾼들] 2. 구라사업에 젊음 바친 고성 성모의원 오순석 원장

입력일 2020-09-15 11:37:42 수정일 2020-09-15 11:37:42 발행일 1971-01-31 제 752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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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나환자와 함께"
매월 관내 나환자 순회 진료
괴로울적마다 되뇌이는 스위니 신부 유언
정신력으로 온갖 역경 극복
험한 시골의 자갈길을 헤치며 고성 성모의원 나환자 순회진료반 엠블란스는 오늘도 달린다. 원장 오순석(엘리사벳ㆍ57) 여사의 흰머리칼은 차창으로 스며드는 차거운 겨울바람에 사정없이 흩날린다. 한번 본원을 떠나면 15일간 연약한 여자의 몸으론 감당키 어려울 정도의 강행군을 해야 된다. 추위와 피로가 전신을 엄습해온다. 그러나 가야 한다. 되돌아 설수는 없다. 다음 마을에도 이 순회진료반을 애타게 기다리는 불쌍한 환자들이 있기에.

오 여사가 처음 구라사업에 손을 댄 것은 1957년 10월 당시 안양 라자로 원장으로 있던 스위니(매리놀회ㆍ66년 별세) 신부를 우연한 기회에 만나 본 후 부터이다.

24세때 남편을 사별한 후 그해 5월에 경성여자 의학전문학교에 입학, 인술을 배운 오 여사는 이때 두 남매의 어머니로서 병원을 개업하고 있었다.

57년 10월 오 여사가 스위니 신부를 처음 만났을때 나환자들에 대한 그의 너무나도 뜨거운 사랑과 희생의 정신에 큰 감명을 받고 곧 자신도 구라사업에 종사할 결심을 했다.

처음에는 스위니 신부를 도와 일해오던 황 마르가리따(65년 위암으로 별세) 배 가라위스(필립핀인 64년 귀국) 두 의사와 함께 일해오다 그해 12월 경남 고성에 설립된 성모의원 원장으로 부임, 주로 경남북일대의 순회진료 사업에 종사해왔다.

현재 오 여사가 맡고 있는 고성 순회진료반은 거제, 통영, 고성, 창원, 김해, 밀양, 창녕군 등 7개군(郡)과 충무, 마산, 진해시 등 3개 시(市) 구석구석을 누비며 재가(在家)환자 색출, 및 나병 계몽사업을 하고 있다.

종전까지는 가톨릭 구라회에서 독자적으로 모든 일을 해왔으나 67년부터 정부의 협조를 얻어 각 시군 보건소에 나병 관리요원 1명씩을 파견, 이들의 협조를 얻고있다.

1개월에 한번씩 떠나는 순회진료에는 15일이나 걸린다. 예정된 날짜와 장소에는 환자들이 모여 진료반을 기다리고 있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일정을 변경할 수는 없다. 한 마을의 진료를 모두 끝내면 숨돌릴새도 없이 또 다시 다음 마을로 향한다. 줄을 이어 기다리던 환자들이 진료반 차소리를 듣고 환성을 울리며 몰려올때

그리고 치료를 받고 가병운 걸음으로 돌아가는 뒷모습을 볼때마다 온 젊음을 바쳐 온 이들에 큰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이렇게 한번 진료를 나가면 약1천5백명의 환자들이 치료를 받는다. 지금까지 오 여사의 손을 거쳐간 환자수는 수만명에 이른다.

순회진료반에서는 환자들의 조기발견 및 조기치료에 역점을 두고있다. 『나병은 초기에 발견만 하면 쉽게 치료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수년간 골방에 숨어 살다가 산송장이 되다시피 하여 진료반을 찾는 경우가 허다합니다』고 하면서 오 여사는 나병에 대한 계몽사업이 시급하다고 역설한다.

순회진료를 마치면 성모의원에서 극빈환자들을 무료로 치료해주고 있다

지금 그 운영자금 일체는 모페트(매리놀회ㆍ백령도주입) 신부가 모국의 은인들로 부터 원조받고 있는 돈으로 충당하고 있다. 오 여사는『우리의 동포를 우리의 힘으로 돌보지 못하고 외국원조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은 좀 생각해 볼 일』이라고 하면서 금년부터 벌이고 있는 구라후원회 회원모집에 적극 협조해줄 것을 호소한다.

험한 진료의 길에서 참기 어려운 고통을 당할때마다 오 여사는『내가 죽거던 내 무덤 옆에 나무를 심어라. 내 죽은 시체가 썩어 기꺼이 거름이 되어 주마』던 스위니 신부의 유언을 되뇌인다. 죽어서 시체까지도 나환자들을 위해 바쳤던 스위니 신부의 이 뜨거운 사랑의 정신은 숱한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었다.

그러나 작년부터 건강을 해쳐 몸이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안타까워 한다.

강인한 정신력으로 모든 어려움을 이겨왔으나 신체적인 노쇠현상은 막을 길이 없는듯. 구랍 10일 나사업에 기여한 공로로 대한 나협회장 감사패까지 받은 오 여사는『앞으로도 내 건강이 허락한은 날까지 우리 불쌍한 환자들을 위해 이 몸을 바칠 각오』라고 힘주어 말한다. <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