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위암으로 사망한 최도기씨, 새 맹인에 광명 안기고 가

입력일 2020-01-31 15:32:38 수정일 2020-01-31 15:32:38 발행일 1976-05-30 제 1010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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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사랑의 극치” 집도의도 감복
투병생활 중 딸 권유로 영세 주의 사랑 실천
죽음을 앞두고 가톨릭에 귀의한 한 신자가『나의 두 눈을 맹인들에게 옮겨 빛을 보게 해 달라』면서 눈을 기증, 마지막 육체의 한 부분까지 불우한 이웃에게 바친 숭고한 사랑의 뜻을 전해 받은 서울 성모병원이 앞 못 보는 두 맹인에게 각막(角膜)을, 또 한 사람에게 공막(흰 자위)을 이식수술하여 세 사람에게 빛을 되찾아 주었다.

이 놀랍고도 흐뭇한 화제의 주인공은 위암으로 시한부 생명을 이어가다 지난 12일 아침 6시 서울 관악구 신림1동 성모의원(원장ㆍ최상선)에서 세상을 떠난 최도기씨(요셉ㆍ48)로 최씨는 죽음을 얼마 앞둔 3월 26일 신자인 큰딸 최진희(27) 여사의 주선으로 영세한 후『내 눈을 불행한 맹인에게 옮겨 육신은 썩어도 내 눈은 생명을 연장시켜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유언에 따라 가족들은 최씨의 두 눈을 성모의원 원장 최상선씨를 통해 성모병원 중앙안(眼)은행에 기증, 병원 측은 13일 저녁 안과 김재호 박사 (43) 집도로 6살 때 실명한 안창남씨(22ㆍ제주도 제주군 중문면 중문리)와 문영근씨(27ㆍ부산시 남구 용호동)에게 각막을 한쪽씩, 문문상씨(60)에게는 흰자위를 이식하는 데 성공, 눈을 뜨게 해 주었다.

두 눈을 기증하고 숨진 최씨는 육군 중령(경리장교)으로 예편, 7년 전 상처한 후 2남 3녀를 데리고 사업을 해오다 실패한 후 친구가 빌려준 단칸방에서 불치의 병과 가난하고 외로운 투병생활을 이어왔다.

최씨의 눈 기증은 67년 성모병원 안은행 설립 이래 두 번째인데 집도의 김재호 박사는『신앙인이 아니면 실천하기 힘든 이웃 사랑의 극치가 아니겠느냐』고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김 박사에 의하면 한국의 맹인 수는 약 12만 명으로 이 중 20% 정도가 각막이식으로 눈을 뜰 수 있으나 눈 기증자가 드물어 성모병원에만도 기증자를 기다리는 30여명의 맹인이 등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외국의 경우 1944년 미국「뉴욕」에 처음 설립된 안은행을 필두로 프랑스 영국 일본 인도 등 여러 나라에도 안은행이 있어 종교계 등 사회 지도급 인사들이 앞장선 헌안운동에 힘입어 인구 10만 명당 2명 꼴로 각막 이식수술을 받는 데 비해 한국은 연 30명 미달로 1백만 명당 1명 이하로 시술되고 있으며 그나마 자발적인 기증이 드물어 80% 이상을 무연고 병사자의 것을 사용하고 있다.

성모병원 중앙안은행에는 등록 1번인 윤향중 신부를 비롯 2백여 명의 헌안자가 등록되어 있고 첫 기증자는 74년 5월 서울 명동 유네스코 지하다방 난동사건으로 사형이 집행된 이원모(당시 21세) 이병이었다.

자신도 헌안 등록자인 김재호 박사는 약 50만 원이 드는 수술비 때문에 아직은 가난한 맹인들이 큰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까와 하면서『헌안자가 많아질수록 가난한 맹인을 위한 무료 수술도 늘게 될 것』이라고 신자들의 헌안운동 참여를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