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항간에 십자성호(十字聖號)를 긋는데 있어 때와 장소를 구별해서 해야 한다는 소리가 들린다. 물론 우스개 소리이고 억지주장처럼 들리지만 한번쯤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는 듯하다.
예를 들면 음식을 들 때 그 값이 천원짜리 미만이면 성호를 긋지 않는 것이 좋단다. 이유는 성호의 값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또 어떤 술좌석이나 신자로서는 곤란한 곳에 갔을 경우 성호를 긋는 것이 모독행위가 되기 때문에 긋지 않는 것이 낫다는 주장도 있는 모양이다.
성호와 관련된 얘기꺼리는 일상생활 주변에서 많이 보고 들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앞에 음식만 놓여 지면 습관적이고 기계적으로 성호를 긋는다. 그때의 성호 긋는 모습은 마치 얼굴에 날아드는 파리를 쫓는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금방이라도 위급한 일이 닥칠 것 같아 음식을 급히 해치우지 않으면 안 될 상황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럴 때 성호의 모양은 이마 쪽에 잠시 손이 올라갔다가 양 어깨 쪽은 생략하고 가슴팍을 한두 번 정도 가볍게 두드리는 형태다.
또 어떤 사람은 손으로는 성호를 그으면서 입은 잡담을 하거나 음식물을 씹고 있는 경우도 볼 수 있다.
다방이나 사무실 혹은 가정에서 커피나 음료수를 들 경우 성로를 긋는 사람과 긋지 않는 사람을 볼 수 있다. 긋지 않는 사람들의 경우는 성호의 값이 떨어진다고 농을 하는 측과 감사함을 속으로 새기면 될 것이지 구태여 밖으로 드러낼 필요가 있느냐고 주장하는 측도 있다. 간혹은 가슴팍에다 작은 성호를 긋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십자성호는 신자의 표지임을 모르는 이는 없다. 성호를 긋는 행위는 또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삼위일체신앙을 고백하는 것으로서 성호경은 가장 짧으면서도 가장 중요한 기도이다.
따라서 스스로 신자임을 드러내기를 부끄럽게 여기거나 신자된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장소에서 성호를 숨기는 행위는 결코 올바른 신앙인의 자세가 못된다.
특히 성호경을 한번 바칠 때 부분대사(部分大赦)를 받게 되고 성수를 찍어 성호경을 바치면 더 많은 은사를 받는 것을 알면 성호는 정성스럽게 그어야할 것이다. 오늘 삼위일체대축일에 성호 긋는 태도를 반성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