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뇌성마비 장애자 임병옥씨의 삶

우재철 기자
입력일 2017-06-04 14:00:10 수정일 2017-06-04 14:00:10 발행일 1992-05-17 제 1805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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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서기」준비에 피곤도 잊어
월수 17만원 소중한 “땀의 댓가” 뿌듯
그림공부해 훌륭한 화가되는게 꿈
한달에 17만원, 적은 월급이지만 열심히 일하고 난후 받아낸 노력의 댓가 이기에 기쁜 마음으로 월급봉투를 받아쥔 임병옥(안젤라ㆍ성수동본당ㆍ25세)씨. 세상에 태어난지 1개월만에 뇌성마비로 판명돼 25년간을 부자유 속에서 살아오다가 가톨릭 사회복지회가 운영하는 비둘기 교실에서 기술을 배우고 재활교육을 받음으로써 떳떳한 직업인이 된 그는 자신의 장래를 스스로 준비하며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다.

출퇴근 전쟁을 치르는 이른 시간, 불편한 몸으로 버스를 두번 갈아타는 곤욕을 치루면서도 자신이 노력한 만큼의 댓가를 치뤄주는 직업을 가졌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으며 하루도 어김없이 일터를 찾고있는 임병옥씨.

임씨가 다니고 있는 일터는 서울 종로구 신영동 91번지에 소재한「비둘기 집」이라는 직장. 지체 장애인기술 교육원이지만 임씨는 이곳에서 자신이 평생동안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술을 배웠고 또 그곳에서 배운 기술로 이다음 부모님들이 세상을 떠났을때 혼자서 살아갈 준비를 착실히 하고있다.

아침 7시30분, 성동구 성수동의 집을 나서는 임씨는 직장에 도착해서 오후 6시 퇴근때까지 같은 장애를 입은 동료들과 함께 행주와 앞치마, 방석, 식탁보, 미사보, 작은 주머니 등을 만드는 작업을 열심히 하고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제품들은 비둘기집의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판매되고 그 이익금이 바로 그가 받게되는 월급의 일부가 되기때문에 임씨는 잠시도 쉬지않고 열심히 미싱을 돌리고 있다.

『얼마되지 않는 월급이지만 나의 힘으로 노력해서 번돈이라 값지고 보람이 있다』는 임씨는『저를 돌봐주시고 있는 부모님이 돌아가시게 되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그 돈을 열심히 저축하고 있다』고 밝게 웃으며 말했다.

물론 임씨는 현재 자신이 받는 17만원의 월급이 매우 적은 돈이지만 좀 더 노력해서 숙달되고 또 판매가 잘된다면 더 받을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그때를 생각해 더욱 열심히 노력할 뿐이다.

지난 88년에 비둘기 집에 처음 오게돼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을땐 몸이 말이 듣지않고 손놀림이 제대로 되지않아 많은 시련과 좌절을 겪기도 했었다. 『선을 따라 자유자재로 바느질을 해야 하지만 손과발이 마음대로 되지않고 출퇴근 시간에 버스와 전철을 갈아 타기가 너무 어려워 직장을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많았었다』는 임병옥씨. 그는 그럴때마다 성당에 가서 하루하루를 잘보낼 수 있도록, 또 살아가는데 용기를 잃지 않도록 해 달라는 기도를 항상 잊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 임병옥씨에게 또 다른 슬픔이 생겨 그의 눈시울을 마르지 않게하고 있다. 그것은 임씨를 가장 잘 이해하고 보살펴주었던 언니가 5월 23일에 결혼을 하기 때문이다. 『언니가 시집 간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다시는 볼수 없을 것 같아 섭섭하고 가슴이 저려와서 견디기 어려워요』라며 그동안 언니가 자신에게 베푼 사랑에 감사를 전하기도 했다.

한편 임병옥씨는 이러한 직장생활과 함께 가장 해보고 싶은 일로서 그림을 꼽는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그림에 재능이 많다는 얘기를 자주 들어 왔다는 임씨는 입으로 또는 발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에 비해 자신의 장애정도가 한결 가볍다고 느끼며 언젠가 그림을 공부해 훌륭한 화가가 될 꿈을 안고 있기도 했다.

비록 뇌성마비 2급의 장애를 입은 장애인이지만 지능은 정상인과 같아 중학교까지는 일반학교를 졸업한 임양은 책읽기를 좋아해 요즘도 매일 독서를 통해 마음의 양식을 쌓아가고 있다.

우재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