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울산시 야음1동 58번지. 세칭 「여천고개」한켠에 자리잡은 「은총의 집」. 어둑어둑해질 무렵 이곳에선 어머니를 부르는 아이들의 목소리로 한바탕 소란이 벌어진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이 저마다 어머니를 찾으며 매달리기 때문이다. 은총의 집 책임자 장태련(레베카ㆍ50ㆍ울산 야음본당)씨는 이 모든 꼬맹이들의 어머니다.
장씨가 이처럼 많은 자식을 두게 된 것은 참 우연한 인연이었다. 94년 3월경, 본당 신자의 손에 끌려 여천동의 한 폐가를 방문했다. 그곳엔 알콜중독으로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와 두 남매가 마치 죽을 날만 기다리는 양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본당에서 한동안 그들을 돌봤으나 장씨의 뇌리에선 아이들의 모습이 떠나지 않았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내가 돌봐야지』하고 마음먹은 그는 여천고개 주변에 방을 얻어 그들을 데려왔다.
『남편과 가족들이 이해해줄까 걱정도 했습니다만 모두가 기쁘게 받아들여줬습니다. 아이들이 다 자라 결정하는데 훨씬 쉬웠지요』.
그러나 이것이 하느님의 뜻이었을까. 그에게 맡겨지는 아이들이 하나 둘씩 시간이 갈수록 늘어났다. 장씨의 소식은 알음알음으로 퍼져 인근의 결손가정 아이들, 버려져 노숙하던 아동들이 그의 슬하에 들어왔다.
『한번은 소문을 듣고 찾아간 곳에 남매가 1평 남짓한 방에서 마치 시체같은 생활을 하고 있더군요. 엄마는 5년 전 가출하고 아버지는 따로 살림을 하면서 노름에 빠져 있었고요. 어떡합니까. 안 데려올 수가 없잖아요』
여력이 없어 포기하려 해도 정말 절박하고 안쓰러워 데려왔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대부분의 경우가 그러했다. 대규모 화학공단이 곁에 있는 야음동 일대는 공해가 심각할 뿐 아니라 소비 향락도시로 변해 부모들의 가출, 춤바람 등으로 가정이 파괴되는 현상이 빈번한 것도 요인이다.
그렇게 받아들인 아이들이 7세부터 중2까지 모두 22명. 장씨는 그동안 5군데에 흩어져 생활하던 아이들을 지난해 3월 지금의 거처로 옮겨 공동생활을 시작했다. 금년 3월엔 근처에 따로 집을 얻어 여자 아이들이 생활하도록 했다.
『아이들을 데려온 다음이 문제였어요. 마음을 열지않고 두려워하더군요. 또 상처받지 않을까 무서웠던 거지요. 너무나 가슴이 아팠습니다』
장씨는 생각했다. 『하느님을 먼저 알게 하자』. 어려움이 있을 때면 함께 손을 잡고 기도를 올렸다. 힘에 부칠 때면 하느님께 의지하며 수도 없이 눈물을 흘렸다.
아이들은 차츰 변해갔다. 아니 본래의 순한 마음을 되찾은 것이다. 학교생활도 열심이었고 서로 돕고 의지하는 방법도 배워나갔다. 그래서 여느 시설의 아이들과는 달리 이곳 아이들은 무척 밝고 스스럼이 없다.
『모두가 내 자식들처럼 사랑스럽습니다. 무엇보다 이들을 통해 하느님을 더욱 깊이 느끼게 되었고, 그분의 섭리와 오묘하신 사랑을 깨닫게 됐으니 아이들이 바로 저의 선생님이지요』
은총의 집을 꾸려가는데는 어려움이 많다. 처음부터 남편의 월급만 믿고 시작했고 지금도 매월 4백여만 원의 운영비 중에 절반 이상이 충당된다. 신자들이 쌀과 반찬거리를 해다주고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이들이 조금씩 도움을 주지만 늘 부족하다.
『하느님의 능력과 은총을 드러내는 도구로 쓰이기에 아이들은 소중한 보배』라며 활짝 웃는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위에선 무슨 특별한 일인 것처럼 말합니다. 저는 가장 기본적인 사랑을 하라는 소명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보잘 것 없는 능력을 주신 것이지요. 다만 아이들을 보내주시고 오늘까지 함께 해주신 하느님의 능력과 그분이 참으로 인자하시고 힘 있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장씨의 큰 딸과 막내 외아들은 현재 수도자와 사제성소의 길을 걷고 있다.
※은총의 집 연락처=(0522)60-51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