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온상인 가정에서의 건전한 신앙생활과 2대에 걸친 부모의 기도가 한국 교회사상 드문 3형제 신부를 탄생시켰다. 한가정의 형제로 사제로의 부르심에 응답한 주인공은 서울대교구소속 염수정(장위동 주임 70서품), 염수완(해군 해병군종 75년 서품), 염수의(명동보자, 81년 서품) 신부 형제.
이웃전교의 해를 맞아 전교열이 높아져가고 있는 가운데 사제성소 계발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하는 한국교회로서는 이들 삼형제 신부의 탄생이 커다란 희망과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 삼형제가 사제로 불리움을 받게 된 것은 대대로 이어져온 가정의 신앙적인 분위기와 할머니와 어머니로 이어지는 간절한 기도때문. 이들이 출생한 곳은 병인년 순교성지로 알려진 경기도 안성군 삼죽면 미장리. 5대 선조가 백곡에서 치명한 것으로 알려진 염신부의 할아버지 염재완씨는 응기를 굽는 전형적인 천주교인이었다. 그리고 신심이 두터웠던 할머니 박막달레나씨는 30여년간 집안에서 사제성소가 나오기를 기원하고 안성본당은 물론 미리내, 장호원까지 순례하며 첫첨례를 지켰다.
이같은 할머니의 기도는 어머니 백음월 (수산나ㆍ74세) 씨에게로 이어지게 됐다. 염한진 (갈리스도ㆍ74) 씨와의 사이에 6남매 (1녀5남) 를 둔 어머니는「감약」「요리강령」「예수전」등을 읽고 이야기해 주는 등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부모님은 형제들에게 사제가 되라고 강요하신 일이 없고 스스로 사제의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최대한으로 배려해 주셨다』고 회고하는 염수정 신부는『동성중학교 재학시절 항상 젊은이들과 어울려 주셨던 본당 신부의 모습이 사제를 선택하게된 직접적인 동기』라고 밝혔다. 상급학교 진학을 결정해야하는 중 3학년말 성신고등학교 학생모집 광고를 보고 신학교 지망을 선언한 3남 염수정 신부의 결정은 잉태때부터 사제로 봉헌할 것을 기도해온 어머니의 소망을 최초로 채워주는 것이었다.
형과 같이 본당신부의 영향을 받아 사제성소를 갖게 된 4남 염수완 신부는 복사로 활동했던 국민학교 4학년때부터 사제를 지망, 성신중고등학교와 대신학교를 거쳐 75년 사제로 서품됐다.
이들 형제중 막내로 지난날 24 사제서품 된 염수의 신부는 3형제 신부 가운데 가장 늦게 사제의 길에 들어섰다. 사강대학교 물리학교를 졸업하고 군복무중이던 염수의 신부의 사제지망 결정은 염수정 신부 등 가족에게 뜻밖의 놀라움을 안겨줬고 결국 가족회의를 거쳐 심사숙고 끝에 받아들여졌다.
염수의 신부의 진로를 결정하는데 절대적으로 찬성한 분은 역시 어머니였다.
『서강대학교 재학시절 우연히 잡지를 통해 당시 불우한 주민들이 많은 봉천동 지역에서 봉사할 봉사자를 구하는 광고를 보구 1년동안 봉사활동을 하면서 가난한 이들을 통해 사제성소의 길을 생각하게 됐다』고 동기를 말하는 막내 염수의 신부는『그러나 사제의 길은 부르심과 응답이라는 점을 깊이 체험했다』고 강조했다.
『자신이 선택한 길이 진실된 인간의 길인가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있다』는 염수정 신부 등 3형제 신부는 믿음의 온상이며 기초교회 공동체인 가정과 젊은이와 함께 하는 사제의 영향력이 미래 교회에 보다 풍성한 사제성소를 낳게 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