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일본 사이타마교구 신자, 보상과 화해의 한국순례

서상덕 기자
입력일 2005-08-28 10:40:00 수정일 2005-08-28 10: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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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타마교구 순례단 신자들이 서대문형무소 내 사형장에서 모의체험을 하고 있다.
“군국주의 잘못들 깊이 보속합니다”

서대문형무소·탑골공원 찾아

「왜 이리 사람들이 많을까?」 광복 60돌을 맞아 독립운동가들의 「고난의 성지」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으로 들어가는 초입은 모처럼 사람들로 붐볐다. 그 가운데 간간이 섞여 들리는 귀에 선 말소리가 지나치는 이들의 발걸음을 붙들었다. 사람들을 불러 세운 이들은 서대문형무소를 찾은 일본 사이타마교구 신자들이었다.

8월 17일 오전 한국인 해설자의 안내로 서대문형무소 견학에 나선 사이타마교구 신자들의 모습은 시종 진지하고 엄숙하기까지 했다.

30도를 웃도는 폭염 속에서 묵묵히 순례에 임한 이들은 해설자의 설명이 이어지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하는가 하면 고문을 당해 처참한 모습의 독립운동가들의 사진과 모형 앞에서는 가슴이 무거운 듯 얼굴에 그늘을 지었다. 형무소 전시관에 마련된 고문실과 사형집행실에서는 60여년 전으로 돌아가 몸소 아픔을 체험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이런 기껍지만은 않은 순례길을 자처한 것은 그들 자신이었다. 사이타마교구가 지난 1995년 종전 50돌을 맞아 신자들로 하여금 일본이 군국주의 시대에 행한 잘못을 배우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펼쳐온 「보상과 화해의 순례」에 자발적으로 시간과 돈을 할애한 것이다.

사이타마교구 총대리인 오카 히로시 신부(마에바시본당 주임)를 단장으로 14일 한국을 찾은 순례단은 광복절 당일 3?1만세운동의 진원지였던 탑골공원을 찾은 것을 시작으로 독립기념관(16일), 남산 안중근기념관(17일), 제암리교회(18일), 절두산순교성지(19일) 등을 돌아보며 자신들의 과거와 현재를 반추하는 기회를 가졌다.

이들은 자신들의 조상이 한민족에게 말과 문자 사용을 금지하고 일본 문화와 일본어, 일본문자를 강제했던 역사에 대한 보속의 의미로 순례의 대부분을 「묵언(默言)」하며 지하철과 버스로 이동하는 등 어려움을 자처해 지켜보는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전해주기도 했다.

오카 신부는 『대부분의 일본 신자들이 과거 일본이 군국주의 시대에 무엇을 했는지 모른 채 신앙생활을 하고 있어 이런 순례를 기획하게 됐다』며 『한국과 일본 교회가 함께 새로운 모습의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 필요한 걸림돌을 없애기 위해서는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 정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상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