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날 세 권의 시집은 호흡이 짧고 깊이가 부족해 스스로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새 시집에서는 지난날 미숙했던 시 세계를 탈피하면서도 새로운 언어를 추구하고자 했습니다. 공백기가 조금 길었네요』
김윤희(이레네.65) 시인이 자신의 네 번째 시집 「설국(雪國)」을 출간했다. 1982년 발표한 시집 「오직 눈부심」에 이은 22년만의 신작이다. 시인은 그 동안 꾸준한 시작(詩作) 활동을 펼쳤으나, 곧바로 책으로 묶는 대신 찬찬히 곱씹어 보는 작업을 해왔다.
이제껏 보여준 김시인의 시편에서는 특유의 정직하고 냉담한 어조가 주류를 이뤘다. 그러나 이번 시집의 시편들은 형식적으로 행이 길어지면서 부드러워졌다는 평이다. 작품 곳곳에서는 시인의 절제된 감정과 차분한 마음가짐이 엿보인다.
「왜 나의 사랑이 불경(不敬)한가 / 대궐과 초막이 한 색깔 한 세상 / 초막이 대궐인 척 / 시궁창이 냉이 꽃 들판인 척 / 썩은 들판이 진달래 꽃물 새긴 / 오래된 정원인 척」(「설국」에서)
청마 유치환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한 김시인은 여성시인들로 구성된 동인지 「여류시」 창간에 참여했으며, 문학평론가 구중서씨가 남편인 문인 부부이다.
시인은 「신규 언어 발급을 위하여」란 자서에서 『나는 내 속에서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들끓는 침묵들의 아우성, 침묵들의 충돌, 전쟁과 같은 살벌함과 황막함 그 자체도 시로 가져보려고 노력했다』며 『시인은 지상의 모든 언어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