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한 고비(?)를 넘기고 나서, 저는 요즈음 말로, 영적 무미건조나 갈증을 느낄 때마다 「준주성범」이나 소화 데레사 자서전, 그리고 당시에 나와 있던 몇 가지 신심서적을 읽으면서 목마름을 그럭저럭 달랬습니다. 성경 강의에서조차 큰 감동을 느끼지는 못했지요. 성경 과목에서 시험 성적은 아주 좋은 편이었지만, 당시의 강의 방식에 큰 한계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성경을 제대로 발견한 것은 한참 후의 일입니다.
이런 사정은 유럽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소화 데레사도 먼저 「준주성범」에 매료되어 그것을 거의 외웠지요. 그래서 아직 법적으로 차지 않은 나이에 수도원에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을 청하기 위해 아버지와 함께 로마에 갔을 때, 교황님 앞에서 「준주성범」을 줄줄 외웠다지요. 그러다가 후에 성경을 발견하고부터는 하느님의 말씀에 온전히 빠져 살았다고 합니다. 그분이 병상에 누워있던 어느 주일, 문병을 온 원장수녀님께 “오늘 미사에 나온 복음이 무엇이었어요?”하고 물었을 때, “뭐였더라? 아! 그거. 작은 아들이 재산을 몽땅 가지고 도망갔다는….” 그 말을 듣고, 데레사는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을 두었는데, 작은 아들이 아버지께…” 하면서 루카복음의 그 대목을 글자 하나 틀리지 않게 다 외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수련장으로서 젊은 수련자들에게 수업을 할 때마다 성경의 말씀이 계속 튀어나왔다지요. 이런 이야기를 생각하면 시에나의 가타리나 성녀가 바오로 사도를 두고 하신 말씀이 연상되지요. “그분은 입만 열면 그리스도가 튀어나온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누구나 입만 열면 그리스도가 튀어나와야만 그 이름에 걸맞은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옷 입듯이 입었다”(갈라 3,27 공동번역)는 말은 그런 의미이겠지요. 바오로 사도는 참으로 모든 그리스도인의 표상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서 당신의 몸을 내어주신 하느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갈라 2,19-20 공동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