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화제의 뒤안길] 부산 방지거보육원 다섯 아동들

입력일 2020-05-08 16:55:43 수정일 2020-05-08 16:55:43 발행일 1974-02-17 제 903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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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마비 동료의 손발 돼
1년 반 동안 손수레로 동료 등교길 도와
“우리가 불행하기에 남을 돕는 것은 곧 우리를 돕는 길”
지나가는 행인들도 발걸음 멈추고 격려
아침 8시30분만 되면 소아마비에 불구가 된 한 아이가 자가용 차가 아닌 자가용 손수레에 실려 같은 동료들이 앞에서 운전을 하고 뒤에서 밀면서 들어온다. 이 손수레의 주인공들은 모두가 성(聖) 방지거애육원(부산시 서구 감천1동 683)에서 감천(甘川)국민학교에 다니는 6학년 이윤왕 김길웅 박병석 이동민 그리고 5학년 고복수 군 등 다섯 어린이들.

이들은 같은 애육원에서 감천국민학교에 다니는 3학년 2반 김인모(金仁模ㆍ11세) 군을 태우고 4㎞ 이상 떨어진 학교까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꼬박 1년 반 동안『자- 오늘은 동민이가 운전할 차례다. 복수와 윤왕이 병석은 뒤에서 밀어라』『영차! 영차!』이렇게 하루도 빠짐없이 불구의 동료 인모 군의 발이 되고 손이 되어 주는 착한 어린이들이다.

이들이 운전하는 손수레가 지날 때면 지나가는 행인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격려의 눈시울을 적신다. 불구가 된 인모 군은 3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 하반신을 못 쓰게 됐다. 그러나 고향인 거제군 장승포읍 장승포리에 살 때는 거제 어느 국민학교 교장을 지내는 아버지와 인자하신 어머니 슬하에서 8살까지 그런 대로 유복하게 자랐다. 그러나 폐병으로 고생하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 이듬해 어머니마저 암으로 잃었다. 갑자기 누나 소희 양(17ㆍ고향에서 친척 도움으로 학교에 다니고 있음)과 함께 고아가 된 인모 군은 기어서 학교에 다녀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날 이 모습을 가련하게 지켜보던 성베네딕또회 수녀(이름을 밝히지 않으나 거제 해성중고등학교에 근무하는 수녀로 추측됨) 한 분이 지난 5월 성방지거애육원으로 알선해 주면서『인모 군이 비록 불구이긴 하지만 불구원에 보내지 말고 다른 건강한 어린이들과 같이 자라게 해 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했다. 애육원장 조광현 씨(47)는 20년간 불우한 어린이들을 위해 몸을 바쳐온지라 쾌히 승락하고 다른 74명의 애육원생들과 같이 지내게 했던 것이다.

그 후부터 항상 불행한 처지를 비관하듯 우울해 보이던 어린이들도 자기보다 더 불행한 어린이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서로 손수레를 끌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조 원장은 공부도 잘 하고 학급 자치회장이기도 한 길용 군과 모범 어린이들에게만 맡겨 오늘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손수레에 태워 등교하고 학교에선 교실까지 옮겨 주고 수업이 끝나면 항상 인모 군의 곁에서 손발이 되어 주고 있는 것이다.

『나 자신이 불우하기 때문에 불쌍한 사람들을 돕는다는 것은 바로 나를 돕는 일』이라고 한결같이 말하는 애육원생들은 서로 돕고 협동하면서 오늘도 밝은 내일을 위해 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