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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야 할 북녘 본당] (10)

정리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16-02-03 수정일 2016-02-03 발행일 2016-02-07 제 2981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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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곡산본당

▲소속 교구: 서울대교구

▲설립연도: 1928년

▲옛 주소: 황해도 곡산군 곡산면 장림리

▲현 주소: 황해북도 곡산군 곡산읍 장림리

▲초대 주임: 박정렬 신부(1928~1930)

▲마지막 주임: 제4대 임충신 신부(1942~1950)

곡산본당은 1925년 황해도 수안에 설립된 사창본당의 후신으로 1928년 5월 설립됐다. 초대 주임 박정렬 신부는 부임 직후 성당 건축을 시작해 1929년 10월 봉헌식을 열었다. 제2대 주임 구천우 신부(1931~1941) 재임 시기에 본당 발전의 기틀이 마련됐다. 구 신부는 10년 동안 재임하며 소화유치원 개설, 성당 증축, 명도회와 가톨릭 청년회, 소년회 등 신심단체 조직 등의 활발한 사목을 펼쳤다.

그러나 1942년 일제 강점기 말기에 부임한 제4대 주임 임충신 신부 재임기부터 일제의 탄압이 가중됐고 광복 이후에는 북한 공산정권의 탄압이 계속되며 유치원과 성당을 빼앗기고 말았다. 이후 임 신부가 1·4 후퇴 뒤 본당에 귀임하지 못하면서 본당 역사도 단절됐다.

20. 송림본당

▲소속 교구: 서울대교구

▲설립연도: 1939년

▲옛 주소: 황해도 송림시 산서리

▲현 주소: 황해북도 송림시 월봉동

▲초대 겸 마지막 주임: 유재옥 신부(1939~1950)

서울대교구 소속 침묵의 본당인 송림본당은 1939년 7월 사리원본당 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된 곳으로 송림시 일대의 사목을 담당했다. 초대 주임 유재옥 신부가 본당이 폐쇄될 때까지 11년간 재임하며 본당 역사와 함께했다.

유 신부는 광복 후 송림지역이 공산정권의 지배 아래 놓이자 이계광 부제와 김창린 신학생을 남쪽으로 내려보낸 뒤 혼자 남아 신자들과 본당을 지켰다. 신자수가 점차 감소하는 가운데 북한군에 납치된 유 신부가 순교했고 1950년 10월 제2대 주임으로 김정진 신부가 임명됐지만 6·25전쟁 와중에 본당에 부임하지 못했다.

‘북녘 본당 갖기’ 운동 참여신청 02-753-0815 서울대교구 민화위

정리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