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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희망의 예언자 오스카 로메로

방준식 기자
입력일 2016-02-03 수정일 2016-02-03 발행일 2016-02-07 제 2981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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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압 맞선 정의의 외침
민중 가슴 속에 영원히
희망의 예언자 오스카 로메로 /콧 라이트 지음/김근수 옮김/336쪽/1만5000원/arte

“로메로 대주교는 하느님의 종이었으며, 지금도 계속 순교 중입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

1980년 3월 24일, 군사독재정권의 폭력이 극에 달했던 남미 엘살바도르.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는 한 병원 성당에서 수녀와 환자들 앞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거룩한 미사 현장에서 갑자기 총성과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진다. 4명의 괴한이 침입해 총을 난사한 것이다. 로메로 대주교는 머리에 치명상을 입고 쓰러진다.

며칠 후, 그의 장례미사에 몰려든 추모인파를 향해 군대와 경찰이 무차별 사격을 가해 수십 명이 사망한다. 엘살바도르 독재정권은 그토록 잔인했다.

가난한 이들의 편에서 엘살바도르 군사독재에 항거하다 미사 도중 암살당한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 남미교회에서는 ‘남미교회 역사는 로메로 대주교 피살 전과 후로 나눌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책은 로메로 대주교의 유년기와 사제가 된 과정, 전통적인 성직자로 살았던 25년의 삶을 먼저 다룬다.

로마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후 엘살바도르로 돌아와 산 미겔 교구 비서 사제, 엘살바도르 주교회의 사무총장 등 엘리트 사제로서의 길을 걷는다.

하지만 조국 엘살바도르는 혼란에 시달리고 있다. 1930년대부터 이어진 군부독재로 인해 빈부격차는 날로 심해진다. 지주와 결탁한 군부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억압과 통제를 강화한다. 군사 쿠데타로 1972년 권력을 장악한 몰리나 대통령은 쿠데타에 반대하는 학생들을 무자비한 폭력으로 진압한다.

로메로 대주교는 불의한 명령이 아닌 양심에 따를 것을 군사독재정권에 요구했다. arte 제공
엘살바도르 주교회의는 당시 사무총장 로메로 주교 승인으로 정부의 폭력 진압을 지지한다. 책은 이때까지만 해도 로메로 주교가 보수적인 면모를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1977년 산살바도르 대주교로 취임한 그에게 일대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의 친구이며 농촌에서 가난한 농부들을 위해 함께 일하던 루틸리오 그란데 신부가 군인들의 총에 맞아 살해당한다. 친구의 죽음 이후 그는 회개의 삶을 살아간다. “불의한 명령이 아닌, 양심에 따르라”고 군사독재정권 관계자들에게 일침을 가했으며, 신자들에게는 “역사가 요구하는 생명을 건 모험을 피하지 말자”고 호소했다.

그럴수록 죽음의 위협은 날로 커져갔고 결국 정권에 의해 암살당한다. 민중을 위한 삶이 민중을 위한 죽음으로 이어진 것이다. 지난해 2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로메로 대주교의 죽음을 선교로 선포했고 5월 시복식이 거행됐다.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처럼, 책 속에 담긴 로메로 대주교의 생애는 오늘날 모든 교회가 나가야 할 방향과 진정한 성인의 면모를 제시하고 있다.

“나는 부활하지 않는 영원한 죽음을 믿지 않습니다. 만일 그들이 나를 죽인다 할지라도, 나는 엘살바도르 국민들 안에서 부활할 것입니다.” - 1980년 3월 23일 로메로 대주교의 마지막 주일 강론 중에서.

방준식 기자 (bj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