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321) 수목장 (2)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6-02-02 수정일 2016-02-02 발행일 2016-02-07 제 2981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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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상담을 요청한 자매님 나이가 3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데, 14살 된 아픈 자녀가 있다는 말을 듣자 혼자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분, 결혼을 참 일찍도 했네! 그러면 설마…. 고등학생 때, 아니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에고!’

그래서 나는 자매님에게 말했습니다.

“자매님, 지금 마음이 많이 힘드시지만, 용기 잃지 마시고요! 하느님께서 자매님 가정에 반드시 축복을 주실 거예요. 그리고 앞으로 위급한 때가 오면 저에게도 연락 주시고요. 그리고 자매님, 기도 중에 기억할게요. 그런데 자매님, 혹시 자녀분 세례명이 어떻게 되나요?”

그러자 그 자매님은 슬픈 눈으로 나를 보더니,

“저기…. 세례는 안 받았어요.”

순간 아주 고요한 정적이 흘렀습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자매님 두 분은 나를 미안한 눈으로 쳐다보다가, 그 친구분 서로가 대화를 합니다.

“마리아, 신부님께 상담 신청하면서 우리 애에 대해서 자세히 말씀 안 드렸어?”

“응, 그냥 네가 너무 힘들어하기에 상담 신청만 했지. 자세한 이야기는 안 했어. 그리고 신부님이 바쁘신 것 같아서 다 말씀드리면 그게….”

상황이 급반전 되었습니다. 처음 나에게 상담을 신청한 자매님이 결심을 한 듯,

“신부님, 상담 신청을 하면서 자세히 말씀드리지 않아서 정말 죄송합니다. 이 친구가 말하는 자녀는 지금까지 14년 키우는 강아지예요. 이 친구가 사회 초년생일 때부터 키우던 강아지인데 지금은 이 친구와 떨어질 수 없는 가족이 되었어요. 그런데 그 강아지가 작년에 높은 데서 떨어져 척추 대수술을 받았어요. 그래서 이 친구는 강아지 수술비, 즉 목돈을 마련하느라 다니던 직장도 퇴직했고, 그 퇴직금으로 수술을 시켜 주었어요. 그리고 1년 정도 아르바이트 하면서 강아지 병간호를 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 강아지가 요즘 너무 아프고 힘들어하고, 그리고 그 강아지를 돌보는 이 친구 마음도 너무 지쳐있어서…. 그래서 그 강아지를 어떻게 하나, 그 강아지 죽으면 어떻게 하나, 이 친구가 너무 힘들어할까…. 너무너무 걱정이 되어서 죽어서도 늘 함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화분 수목장을 생각해 냈어요. 죄송해요, 신부님.”

세상에! 키우던 강아지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잘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그 돈으로 수술비로 쓰고, 지금은 그 강아지를 돌보느라 아르바이트를 하고! 아,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구나!

그러자 강아지 엄마로 드러난 분이 말했습니다.

“신부님, 우리 애는 지금까지 저에게 큰 희망이었고 기쁨이었습니다. 제가 예전에 세상 적응을 잘 못할 때, 아니 때로는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던 때, 오로지 우리 애만 내 옆에서 나를 위로해 주고, 기쁨을 주었고, 희망이 되어 주었어요. 내가 외로울 때, 슬플 때 우리 애는 내 옆에서 내 곁에서 언제나 나를 지켜 주었어요. 늘 내 품에 안겨서 나에게 따스한 온기를 나누어주던 아이라…. 결코 이 아이랑 지금은 헤어질 수 없어요. 그 많은 병원비, 하나 아깝지 않았어요. 그 아이가 나에게 준 행복에 비하면…. 지금도 아무것도 아까울 것이 없어요. 그런데 우리 애가 너무 자주 아프니까 이제…. 이제…. 이제는 떠나보내야 하는 것일까 생각이 들면서…. 신부님, 죄송해요, 흑흑흑.”

살면서 내가 강아지 때문에 눈물을 흘리게 될 줄이야! 사람이 사람 때문에 힘들 때 반려동물이 정말이지 큰 힘이 되나 봅니다. 그래서 반려동물을 키우나 봅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소중해야 할 세상인데…. 우리는 그 날, 아무런 결론 없이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