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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의 특별 희년, 무엇을 할 것인가] (1) 왜 자비인가?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15-12-02 수정일 2015-12-02 발행일 2015-12-06 제 2972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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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 실천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핵심 사명”
‘가난·자비’, 교황의 핵심 교회관
분쟁·양극화·빈곤 등 시대 상황서
세상 고통에 무관심한 교회 성찰

“교회, 하느님 자비 드러내는 얼굴”
자비 바탕 둔 사목적 쇄신 요청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 선출 2주년을 기념하는 지난 3월 13일,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주님을 위한 24시간’ 참회 예식 강론을 통해 ‘자비의 특별 희년’을 선포했다. 한 달 뒤인 4월 11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 전야에 희년 선포 칙서 「자비의 얼굴」(Misericordiae Vultus)을 반포했다.

이로써, 전 세계 가톨릭교회는 하느님의 자비를 깊이 성찰하고, ‘자비의 얼굴’이신 주님의 뜻을 따라 우리 모두가 스스로 “자비를 베푸시는 아버지의 뚜렷한 표지”가 되어 자비에 대한 “힘차고 효과적인 증언”을 하는 은총의 기간을 지내게 된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매 25년마다 선포되는 정기 희년과 특별한 의미와 이유를 갖는 특별 희년을 기념해왔다. ‘자비의 특별 희년’은 1585년 식스토 5세 교황이 선포한 첫 특별 희년에 이어 65번째 특별 희년이다. 이번 희년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폐막 50주년이 되는 올해 12월 8일 개막, 2016년 11월 20일 그리스도 왕 대축일에 끝난다.

희년 준비를 맡은 교황청 새복음화촉진평의회 의장 살바토레 피시켈라 대주교는 지난 5월 5일 기자회견에서 이번 희년의 주제가 “신앙의 핵심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하며 교회가 모든 사목 생활에서 자비의 징표와 증언이 되어야 한다는 가장 중요한 사명”을 상기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주교는 특히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은 자비의 특별 희년의 본질을 가장 뜻깊게 나타내고 있으며, 프란치스코 교황의 재임 기간 중에 실행될 모든 사목적인 계획을 미리 담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복음의 기쁨」에 담겨 있는 하느님 자비의 의미와 실천의 중요성은 희년 선포 칙서 「자비의 얼굴」에 더 구체화돼 있다.

자비의 희년 선포 배경과 의의

「자비의 얼굴」은 희년 선포의 배경과 의의를 아주 명확하게 설명한다. 이는 한 마디로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시듯이, 하느님 백성이고 당신의 자녀들인 우리 모두가 자비로우신 아버지를 본받아 자비를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희년은 자비를 집중적으로 실천해야 하는 은총의 해이다.

칙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말씀과 행동, 당신의 온 인격으로 하느님의 자비를 드러내”(1항)셨고, 자비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만나러 오시는 궁극적인 최고의 행위”로써 “거룩한 삼위일체 하느님의 신비를 보여”(2항) 준다고 밝혔다.

그래서 우리 가톨릭 신자들 모두는 “주님의 자비에 주의를 기울여 우리 자신이 자비를 베푸시는 아버지의 뚜렷한 표지가” 되고, “이 특별 희년에 더욱 힘차고 효과적인 증언을 하여 교회에 은총의 때가 되기를”(3항) 바란다.

그러면 왜 하필 지금 이 시기에 하느님의 ‘자비’가 이처럼 강조되는가?

정희완 신부(대구가톨릭대 교수)는 지난 11월 5일 열린 ‘자비의 특별 희년과 한국 교회의 사목 방향’을 주제로 열린 세미나에서 심상태 몬시뇰(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소장)의 주제 발표에 대한 논평에서 희년 선포 배경을 네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정 신부는 무엇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인적 신념과 확신을 주목, 가난한 교회와 자비의 교회라는 두 개념을 교황의 핵심 교회관으로 보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4월 17일 로마 주교좌 착좌미사 강론에서부터 “하느님의 자비! 우리의 삶을 위한 참으로 아름다운 신앙의 진리입니다”라고 하여 취임 초부터 자비를 강조했다.

특히 첫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에 따르면, “자비를 베푸는 것은 하느님의 고유한 속성”(37항), “하느님께서 주시는 구원은 당신 자비의 활동”(112항)이고,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와 그 무한한 힘을 경험”(24항)한 교회는 “보답을 바라지 않고 베푸는 자비의 자리가 되어야”(114항) 한다.

성 바오로 대성당 성문. 12월 8일 개막되는 자비의 특별 희년 동안 4개의 로마 교황 대성당 성문이 열린다. 【CNS】

정 신부에 의하면, 희년 선포를 보면서, “전위적 실천가가 이론가보다 먼저 사건의 본질에 접근한다는 것을 실감”하며, 남미 출신의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목의 현장과 사목적 실천 속에서 복음의 핵심과 본질을 먼저 체득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

두 번째로 정 신부는 초월적 존재로서의 하느님, 세상의 고통에 무관심한 교회에 대한 성찰이 하느님 자비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해석을 낳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접근은 특별히 철학의 신이 아닌 성서의 하느님에 대한 복원으로 여겨진다.

세 번째로, 교회사적 맥락에서, 이번 희년 선포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새로운 해석의 연장이고 새로운 복음화를 향한 도전으로 보았다. 희년 개막을 공의회 폐막 50주년 기념일로 잡은 것은 의미심장하다.

네 번째는 주체에서 타자로의, 근대에서 탈근대로의 사상사의 흐름이다. 전체성과 동질성이 강조된 근대적 주체성과 그로 말미암은 폭력성을 탈피해, 타자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대화의 필요성이 요청되는 것이 바로 오늘의 시대라는 것이다. 사실, 국지적 분쟁, 양극화와 빈곤의 확산, 글로벌 시대의 이주와 난민 문제 등은 모두 자비에 바탕을 둔 환대의 윤리를 요청한다.

교회가 하느님의 자비를 드러내는 ‘얼굴’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희년의 근본적인 취지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취지는 단연코 교회의 사목의 쇄신을 요청한다. 그래서 희년은 신자들 개인과 교회 공동체가 ‘새로운 사람, 새로운 교회’로 거듭날 것을 촉구한다.

■ 희년 선포 칙서 「자비의 얼굴」

총 25항으로 구성된 칙서는 올해 4월 11일에 반포됐다. 칙서는 ‘자비’를 신학적으로 충실하게 종합, 희년의 길과 방향 자체의 개요를 보여준다.

칙서에 의하면 무엇보다도 자비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하느님의 얼굴, 나자렛 예수님께서 날마다 구체적으로 하신 일, 교회의 신뢰성에 대한 확실한 표현 방식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는 곧, 모든 그리스도인들 각자가 하느님 자비를 드러내도록 부르심을 받았음을 의미한다.

칙서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희년 선포 배경과 의의(1~5항)

·자비의 의미(6~8항)

·자비는 모든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사명(9~12항)

·자비의 특별 희년 실천 사항(13~19항)

·정의를 넘어서는 자비의 의미와 중요성(20~21항)

·대사의 의미와 중요성(22항)

·타종교와의 만남과 대화(23항)

·전구의 기도(24항)

·자비의 특별 희년 선포(25항)

전주교구는 칙서를 모든 교구민들이 읽고 묵상할 수 있도록 ‘강독 자료’를 만들어 배포했다. 교구는 이 자료를 교구의 모든 모임들, 사목회와 레지오 마리애 회합, 소공동체 모임, 제 단체 모임 등에 활용해 하느님의 자비를 깊이 이해하고 살아가는 은총의 시기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자비의 얼굴’ 칙서 전문은 희년과 관련된 다른 자료들과 함께 주교회의 홈페이지(www.cbck.or.kr)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