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주교회의 정평위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정책 반대 성명’ 해설

서상덕 기자
입력일 2015-11-25 수정일 2015-11-25 발행일 2015-11-29 제 2971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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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성의 원리’ 전통 근거로 ‘민주주의 발전’ 목소리 담아
국정화 통한 교과서 독점은
자율적 학문 발전 저해하고
민주주의 원칙 훼손하는 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에 대한 한국교회의 반대 의사 표명은 가톨릭 정신과 가톨릭 사회교리에 따른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 안팎에서 이뤄지고 있는 숱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번 입장 표명은 그간 한국교회가 함께 일궈온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 성찰과 그리스도적인 인식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그리스도인들이 사회문제에 접근하는데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별히 민주적 절차와 방법에 따라 선출된 정부와 지도자라고 하더라고 인간 존엄성, 공동선과 보조성의 원리라는 교회의 가르침에서 벗어날 때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훼손하는 것임을 분명히 함으로써 사회문제를 대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교회가 대사회 문제와 관련해 강조하고 있는 가르침인 ‘보조성’의 원리는 이번 성명에서도 주된 논거가 됐다.

‘보조성’은 그리스도교의 오랜 전통에 속하는 원리 가운데 하나다. 탈출기에서 백성들의 영도자 모세가 받은 충고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이 일은 자네에게 너무나 힘겨워 자네 혼자서는 할 수가 없네.… 천인대장, 백인대장, 오십인대장, 십인대장으로 백성 위에 세우게… 그들과 짐을 나누어 져서, 자네 짐을 덜게나.”(탈출 18,18-22).

성 토마스 아퀴나스도 “만일 모두가 같은 음성으로 노래하면 음의 심포니와 하모니가 소멸되고 말듯이” 지나친 통일화와 통제는, 다양한 지체들로 이루어진 공동체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고 밝혀 보조성의 맥락을 보여주고 있다.

한 마디로 현대 사회에서 ‘보조성’은 민주주의의 올바른 발전을 위해서 국가권력의 범위와 한계를 설정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인간의 참다운 발전과 사회가 인간의 모든 차원을 존중하고 신장시키는 사회로 발전”(요한 바오로 2세 「사회적 관심」 제1항)하려면 정치 공동체가 시민 사회에 봉사해야 하지, 그 반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같은 정신에 따라 볼 때 진리 추구를 위해서 독립된 지위를 유지해야 할 학문 영역과, 개인으로서 자유롭게 사고할 권리를 지닌 시민 사회를 향해서 국가는 보조하는 방식으로만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 교회의 입장이다.

현시점에서 정부가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추진을 통해 교과서를 독점하겠다는 것은 가톨릭교회가 제시하는 보조성의 원리, 나아가 민주주의의 원칙을 훼손하는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성명은 학문에 대한 교회의 입장도 담고 있다. “자율성은 학문 발전의 전제이며, 학문의 발전은 사회 발전의 토대”라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 서술 역시 역사학이란 학문의 정당한 자율성(「사목헌장」 59항 참조)을 기반으로 학문적 진실을 추구하고자 하는 학자들의 양심에 의해서 독립적으로 기술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해내고 있다. 이 같은 논리는 한국사 교과서 문제를 열린 사고를 바탕으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수 있도록 역사학계와 역사학자들에게 맡겨두는 게 아니라 정부의 통제 아래 두고자 하는 게 얼마나 모순적인 일인지 보여준다.

나아가 국정 교과서를 반대하는 국민들을 향해 ‘종북’ 또는 ‘좌파’라는 이념적인 공격을 서슴지 않는 정부와 여당에 오히려 국론 및 국민의 분열을 초래하는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서상덕 기자 (sa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