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사회교리 아카데미] 인류를 향한 공격

김성수 신부
입력일 2015-11-24 수정일 2015-11-24 발행일 2015-11-29 제 2971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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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평화를 주소서
100여 명 사상자 낸 파리 테러
전 세계 테러 공포에 휩싸여
범인 소탕만이 해결책 아냐
진심어린 기도가 필요한 때
일러스트 조영남
현지시각으로 지난 11월 13일 금요일 밤, 프랑스 파리에서는 민간인을 향한 무차별 테러가 벌어졌습니다. 프랑스 정부와 미국 정부는 즉시 테러와의 전쟁을 위한 협조 원칙을 공고히 했고, 미국 대통령은 이 테러행위를 “인류를 향한 공격”으로 규정했습니다. 어떤 이유로도 이런 폭력을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 앞에서 신앙인으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미국과 프랑스에 대한 테러 집단의 공격으로 규정하고 ‘이슬람국가(IS)’라든가 ‘알카에다’라든가 하는 테러집단을 모두 소탕하자고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 경우에 프랑스가, 더구나 프랑스의 죄 없는 민간인이 피해자의 위치에 있는 것은 자명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손쉽게 그들만 제거한다고 해서 평화가 찾아오는지는 의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양시양비론의 입장을 취하기도 합니다. 미국이 이라크에서 벌인 전쟁에서 죽은 수많은 민간인과 프랑스도 참가한 시리아 공습으로 인해 사망한 민간인들의 삶은 “인류에 대한 공격”이 아닌지 묻습니다. 그러면서 이 일은 패권국이 경찰국가를 자처하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만 세상을 경영하려는 욕심이 낳은 결과라고 합니다. 또 지중해에서 수많은 난민이 죽어갈 때 그들을 외면한 국가들의 결정은 “인류에 대한 공격”이라고 규정해서는 안 되는지에 대한 물음도 제기합니다. 그래서 도달하는 결론은 둘 다 틀렸다는 것입니다. 한쪽을 일방적인 피해자로 규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무언가 더 고민을 한 것 같지만 그 다음의 구체적인 행동이 없습니다. 그저 한쪽만 가해자나 피해자로 몰아가지 말라는 논리만이 있습니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간 사람들은 음모론을 펼칩니다. 미국에서 9.11테러가 일어났을 때도 그런 주장들이 있었습니다. 패권국가가 자신들의 권력과 부를 유지하기 위해서 분쟁을 뒤에서 조장하고 있다는 설입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의 주장들은 대부분 말 그대로 주장에 가깝습니다. 이들 역시 어떤 음모론을 펼치고, 퍼즐 조각을 짜맞추는 듯한 게임을 즐기면서 시시비비를 논할 뿐입니다.

하지만 이런 담론들이 오고가는 중에 희생자들을 진심으로 위로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시선으로 희생자들을 바라보고, 그 마음으로 눈물을 흘립니다. 동시에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 가해자들을 위해서도 진심으로 아파합니다. 이런 사람들만이 진심으로 희생자를 위로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가해자들이 죽음의 길을 버리고 생명의 길로 돌아오도록 그들을 용서로, 하느님의 자비로 초대할 수 있습니다. 이 시대의 구조적인 모순을 참으로 인식하고 사랑으로 행동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부터 대림시기를 시작하면서 2000년 전에 오신 예수님만이 아니라, 마지막 날에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립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참 평화를 주러 오십니다. 나는 평화가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그분께서 주시는 참 평화가 이 세상에 펼쳐지기 위해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

“평화는 단순히 전쟁의 부재가 아니며, 적대 세력 간의 균형 유지로 격하될 수도 없다.(「사목헌장」 78항) 그보다 평화는 인간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하며,(요한 바오로 2세 「백주년」 51항) 정의와 사랑에 기초한 질서 확립을 요구한다.”(「간추린 사회교리」 494항)

김성수 신부 (tothund@seoul.catholi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