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태국 국경 미얀마 난민촌을 가다

태국 오혜민 기자
입력일 2015-11-24 수정일 2015-11-24 발행일 2015-11-29 제 2971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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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저곳 떠돌던 난민촌 아이들… 글을 배우며 희망 품었다
수도자들,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들 돌보며 교육
비록 얻어 입힌 교복이지만 존중과 사랑 느끼게 해
바람에는 국경이 없다. 미얀마에서 오는 바람인지, 태국에서 부는 바람인지 실바람과 함께 춤추는 미얀마 난민 아이들이 가리키는 손끝에 하느님이 있다. 희망이 있다. 어딘가에서 얻어온 뜯어진 교복이지만 우리는 사랑받고 있다고, 열심히 춤을 추는 몸짓은 ‘나 여기 있어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문다. 복사뼈까지 오는 긴 교복치마를 걷어 올리며 아이들이 춤을 춘다. 11월 9~13일, 교황청 전교기구 한국지부(지부장 변승식 신부)와 도착한 태국 국경에서 만난 미얀마 난민 어린이들이다.

# 첫째 날

방콕 공항에 도착해 6시간을 달려 도착한 칸챠나부리. 그곳에서 아침을 맞았다. TV 뉴스에는 ‘미얀마 공산주의 종식 가까워’라는 제목의 뉴스가 방송되고 있었다.

희망을 담은 뉴스를 듣고 인근 라차부리교구 펑티공소를 찾았다. 태국과 미얀마 국경선에서 5㎞가량 떨어진 이 마을에는 현재 미리내 성모성심수녀회 오옥님, 김아랑, 송문석 수녀 3명이 파견돼 있다.

이곳에 사는 난민들은 대부분 케리안족이다. 미얀마 소수 부족 중 하나로 국가로부터 추방당해 난민촌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다. 첩첩산중에 2000명 이상의 난민들이 살면서 동물사료로 쓰이는 옥수수를 따고 죽순을 삶아 돈을 번다.

빗물을 웅덩이에 받아 식수로 사용하다보니 질병이 창궐한다. 화장실 개념도 없어 아무데나 파서 오물을 묻는다. 한 달에 두 번 이곳을 찾아 정기미사를 봉헌하는 펑티본당 주임 사콘 반차이 신부와 수녀들이 2~3군데 화장실을 지어줬지만 태부족이다. 수녀들이 펑티공소를 방문할 때도 물을 마시지 않고 들어가는 이유다.

펑티공소 아이들이 전통의상으로 갈아입고 우리들을 맞았다. 만병통치약으로 생각하는 타피오카를 질겅대며 손님을 맞는 어른들도 모처럼 신이 났다. 사콘 신부가 말했다.

“종교 구분 없이 아픈 사람들이 있으면 25㎞ 정도 떨어진 병원에 싣고 갑니다. 모든 이가 하느님의 백성이니까요. 가정 방문을 통해서는 이들이 무엇이 어려운지를 듣습니다. 의식주와 건강이 가장 문제에요.”

사콘 신부는 얼마 전 어린이집을 만들었다. 생계유지를 위해 집을 비운 부모를 대신해 아이들을 맡아줄 쉼터다. 말이 어린이집이지, 건물은 그저 나뭇잎을 얽어 만든 작은 공간이다. 교리교사 2명이 아이들을 돌보는데 태국어로 된 가톨릭 시청각자료를 보여주고 식사를 내어준다. 아이들은 누워서 그저 시간을 보낸다.

사콘 신부는 “난민 문제는 전 세계의 문제”라며 “그리스도 사랑을 기반으로 한 가톨릭 공동체가 오직 사랑으로 작은 관심이라도 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아이가 사콘 신부를 찾았다. 평소 복사를 서며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암낫(11・요한 보스코)이다. 아버지 포내(37)와 어머니 미두아이(35), 동생 깐차폰(5)과 함께 열심히 성당을 찾는다. 암낫의 꿈은 사제가 되는 것이다.

종이를 엮어 교리시간에 묵주를 만든 것을 보여줬다. 네 명의 가족이 묵주를 들고 카메라 앞에 섰다. 예쁜 성가정의 모습에 종일 일해도 200바트(한화 6000원)를 벌기 힘든 부모의 걱정이 서려있다.

# 메솟으로

미얀마 난민들을 위해 사목중인 박수경 수녀(성도미니코선교수녀회)를 만났다. 방콕 돈므앙공항에서 미얀마와 인접해있는 국경지대 메솟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함께 몸을 실었다. 메솟에 사는 난민들은 30만명으로 추정된다. 박 수녀가 ‘난민’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빈민과 난민은 매우 달라요. 빈민은 가난퇴치가 주된 목적이지만, 난민은 가난퇴치와 함께 인권문제가 있어요. 돌아갈 곳이 없는 ‘나라 없는 이들’입니다. ‘나’라는 인간의 존재가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없는 존재라고 한번 생각해보세요.”

소속감도, 돌아갈 곳도, 책임질 이도 없는 난민들은 어느 곳에 가서도 인권을 존중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이들 문제는 더욱 크다. 난민촌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국적은 태국도, 미얀마도 아니다.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인 것이다. 남자아이들은 장기매매와 마약밀매로 빠져들기 쉽고, 여자아이들은 성매매의 희생양이 되기도 한다. 아이들이 사라져도 부모는 찾지 못한다. 박 수녀가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난민에 대해 잘 몰라요. 의식주 문제뿐 아니라 고통과 상처가 가득한 사람들이에요. 가장 큰 문제는 이들 대부분이 ‘문맹’이라는 사실입니다. 까막눈인 이들을 누가 돌보겠습니까.”

수녀는 ‘우리가 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 가운데 부모 없는 아이들을 책임졌다. 메솟에는 성도미니코선교수녀회가 설립한 ‘성요셉 어머니의 집’(Ban mae Joesfa)이라고 불리는 고아원이 있다.

‘비행기가 메솟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퍼졌다. 비행기 창문을 들어 올리자 창밖으로 험준한 산이 내다보인다. 열대 우림지역 속에서 사는 난민들, 평생 비행기처럼 떠서 살아가는 난민들. 이곳에 마음의 상처가 가득한 난민들이 산다. 이곳에 사람이 산다.

# 둘째 날

태국 낙혼사완교구 관할인 메솟에는 NGO들이 학교를 만들어 미얀마 난민아동을 돌본다. 그 가운데는 가톨릭계 학교도 있다. 산타와마이트리(Santhawamaitree) 학교를 먼저 들렀다.

가톨릭, 개신교, 무슬림, 불교 등 다양한 아이들 300명이 한데 얽혀 공부한다. 하지만 사랑과 자비, 자선 등 그리스도교적 가치를 바탕으로 한 가톨릭적 교육이 낯설지 않다. 범종교가 지향하는 가치는 같은 뿌리를 갖기 때문이다.

산타와마이트리 학교를 떠나 ‘성요셉 어머니의 집’ 고아원으로 향하는 길, 미얀마 국경을 바라봤다. 강 건너 바로 보이는 곳이 미얀마다. 물살은 거세지만 조금만 헤엄치면 닿을 수 있을 것 같다. 국경에 사는 아이들은 할 일 없이 그저 마을을 배회하고 있었다. 생계를 위해 어른들이 떠난 자리, 그곳을 아이들이 메운다.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이다. 성도미니코선교수녀회 수녀들이 동네를 배회하는 모든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갈 수 없어 안타깝게 바라봤다.

박 수녀가 말했던 성요셉 어머니의 집 고아원에 도착했다. ‘희망’을 뜻하는 노란색으로 단장한 이 고아원에는 현재 성도미니코선교수녀회 수녀 3명이 산다. 오래 전 박 수녀를 포함한 수녀들은 끄리엥삭 추기경(현 방콕대교구장)의 초대로 메솟에 왔다. 메솟 난민촌을 방문해 우연히 버려진 아이들을 발견했다. 오갈 곳 없는 아이들을 보며 고아들의 문제가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한 수녀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고아원을 설립, 운영하기로 하고 2010년 축복식을 봉헌했다.

마침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왔다. 밝은 노래와 율동으로 우리들을 반긴다. ‘하느님은 빛’이라는 노래다. ‘He is the light, you are the light’(하느님은 빛, 당신도 빛)라고 말하며 검지로 우리들의 가슴을 가리켰다.

이곳 4~16세 38명의 아이들은 나이도, 이름도 정확히 모른 채 살아간다. 그저 산 속 어딘가에서 부모를 잃고 살아가던 아이들이다. 수녀들은 고아원에 온 날을 아이들의 생일로 정해줬다. 박 수녀가 말했다.

“처음 이곳에 오면 아이들이 울면서 잠도 안 자더라고요. ‘엄마’를 부르면서 머리를 잡아 뜯는 아이들도 많았어요. 나라와 부모를 동시에 잃은, 상처가 많은 아이들이에요. 지금은 너무 예쁘게 잘 자라고 있지요.”

세라포(9)와 에포러(14)가 “수녀님과 친구들이 있어 행복하다”면서 “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해줬다. 아이들이 다시 한 번 ‘하느님은 빛’이라는 노래에 맞춰 춤을 춘다. ‘우리에게 빛’이라고 말해주는 난민 아이들의 눈이 환하게 빛났다.

# 사뭇사콘으로

메솟을 떠나 다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2008년 메솟에서 사목하던 박 수녀는 오랜만에 고아원 아이들을 보며 추억에 젖었다. 현재 그는 또 다른 미얀마 난민들이 있는 사뭇사콘으로 거처를 옮겼다.

“끄리엥삭 추기경님이 저희를 태국에 초대하실 때, 미얀마 난민 아이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교육’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수십 만의 문맹 아이들의 눈을 뜨게 해주고 우범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줄이자고요.”

수녀는 아이들을 만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교복을 입은 우리 아이들은 소속감이 있어요. 태국 학교에서 얻어다 입힌 거지만 깨끗이 빨아 입혀요. 모든 아이들은 존중과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지요. 그저 불쌍한 애들로 볼 것이 아니라 희망을 보여줘야 합니다.”

다가올 ‘자비의 특별희년’에 대해서도 말했다. “하느님의 자비가 한 곳에 국한된 것은 아니랍니다. 하느님의 자비로 그 피조물인 사람은 모두 존엄하게 태어났어요. 난민이 동물 취급을 받아도 되는 사람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말라리아에 걸려도, 국경을 건너오며 물에 빠져도 아무도 돌아보질 않아요.”

# 셋째 날

어촌마을인 사뭇사콘에 들렀다. 교황청 전교기구 한국지부가 2014년 지원한 성 요아킴 난민센터(센터장 로사 까시방 수녀)의 천막을 보기 위해서다. 오래 전 박 수녀는 교황청 전교기구 한국지부에 도움을 청했다. 땡볕 아래 조회에 참여하는 난민센터 아이들을 위해서다.

사뭇사콘에는 난민 100만 명 정도가 모여 살고 있다. 미얀마에서 밀항해오는 젊은이들이 많은데, 이들은 오다가 죽기도 하고 경찰에 잡혀가기도 한다. 새벽에 바닷가에 가면 종종 아무도 돌보지 않은 시체를 볼 수도 있다.

태국 정부에서 2011년 아파트 50동을 지어 15동은 태국 빈민에게, 35동은 미얀마 난민에게 임대해줬지만, 아직도 대부분 난민들은 아파트 근처에서 천막을 치고 산다.

아파트 인근에 위치한 센터는 부모들을 대신해 아이들을 돌본다. 처음에는 교실도 없이 공터에서 하루 종일 지냈다. 아이들을 모으는 것도 쉽지 않았다. 수녀들이 가정 방문을 통해 부모들에게 아이들을 보내줄 것을 설득했다.

현재는 500명이 넘는 아이들이 모여 성 요아킴 센터(성도미니코 선교수녀회)에서 120명, 인근 성녀 안나 센터(태국 방콕대교구)에서 200명, 인근 마리스 센터(마리스타 소속 외국인 선교사)에서 180명의 학생들을 돌보고 있다.

많은 것이 변했지만 아직도 부모들은 아이들을 공장에 보내고 싶어 한다. 한 푼이라도 벌어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피시소스와 어묵 등을 만드는 공장으로 보내진다. 하루에 150바트(한화 4500원)를 받고 일하는 아이들은 12시간씩 일하며 조막만한 손으로 쉼 없이 작은 새우를 깐다.

사뭇사콘을 떠나며 교황청 전교기구 한국지부가 지원한 천막 앞에서 사진을 찍기로 했다. 아이들이 천막 밑에서 즐겁게 놀고 있었다. 작은 천막이 가져다주는 기적이다. 천막 덕분에 마을 공동체도 형성됐다. 미용기술이 있는 여성들이 이곳에서 주민들의 머리카락을 잘라주고, 저녁식사 후에는 주민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아이들은 더 이상 땡볕에 서서 조회를 하지 않아도 된다. 작은 도움이 만드는 큰 기적, 이제 우리가 그들의 ‘진짜 천막’이 돼줄 차례다.

교황청 전교기구 한국-태국지부 연대

이번 미얀마 난민촌 탐방은 교황청 전교기구 한국지부장 변승식 신부와 태국지부장 왓차신 신부의 친분으로 이뤄졌다. 교황청 전교기구 정기총회와 아시아회의에서 함께 하며 두 사람의 인연을 나눠온 것이다. 왓차신 신부는 “아시아 국가간 관계와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한국지부 식구들을 초대하는 것은 내 꿈이었다”고 말했다.

태국에는 가톨릭 신자가 매우 적다보니 교구 업무를 도와 교황청 전교기구가 진행하는 일의 비중이 매우 크다. 대축일 행사 등 전례력에 따른 다양한 행사들을 도맡아 하고 있다. 교황청 전교기구의 전교회, 베드로사도회, 어린이전교회, 전교연맹(성직자, 수도자, 신학생, 사도생활단) 등 4개 산하기구 가운데 특히 교황청 어린이 전교회가 가장 활성화돼 있다.

‘어린이를 돕는 어린이’라는 주제 아래 최근에는 ‘1day, 1baht, 1pray’(하루, 1바트, 하나의 기도)운동을 시작했는데 반응이 좋다. 하루 1바트를 모아 저금통에 기부하고 성모송을 바친다.

왓차신 신부는 “받는 사람보다는 주는 사람으로 우리 아이들이 자라나길 바란다”면서 “공동체 모임을 매우 중요하게 여겨 매년 모임을 열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교황청 전교기구는?

교황청 전교기구는 세상 복음화를 위해 헌신하고, 신생교회와 가난한 나라 교회를 돕는 가톨릭의 공식 지원 기구다. 지속적인 교육의 기회를 제공해 선교의식을 일깨우고, 기도와 후원으로 세계교회를 격려한다.

교황청 전교기구 한국지부는 1966년 12월 2일 교황청 인류복음화성에서 당시 수원교구장이었던 윤공희 주교를 교황청 전교연맹 한국지부장으로 임명하면서 시작됐다. 현재는 교황청 전교기구 정기총회와 국제선교대회 참석은 물론, 국내외 선교사업 지원 등에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www.pmsk.net 교황청 전교기구 한국지부

태국과 미얀마 국경에서 살고 있는 미얀마 난민 어린이들. 생계를 위해 부모들이 집을 비운 자리를 아이들이 채운다. 아이들은 모래를 봉지에 담아 가져다주고 돈을 받는데 한 봉지에 1바트(30원) 정도다.
국경에 살고 있는 미얀마 난민 어린이들과 이야기하고 있는 박수경 수녀.
‘성요셉 어머니의 집’ 고아원에서 일행을 반겨주는 미얀마 난민 어린이들.
교황청 전교기구 한국지부가 지원해준 천막 앞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는 사뭇사콘 성 요아킴 난민센터 어린이들.
산타와마이트리 학교를 찾아 난민 어린이들을 만나고 있는 변승식 신부.
서순원 수녀가 펑티공소 난민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고 있다.
박수경 수녀(맨 왼쪽), 교황청 전교기구 한국지부장 변승식 신부(오른쪽에서 세번째)와 사무국장 서순원 수녀(왼쪽에서 세번째), 태국지부장 왓차신 신부(오른쪽에서 네번째), 성요아킴난민센터장 로사 까시방 수녀(맨 오른쪽), 교황청 전교기구 한국지부 직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태국 오혜민 기자 (oh0311@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