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자아의 신화를 찾아서] (9) 형편상 결혼해도 아이 계획 없다는 말에 화내시는 신부님

김정택 신부(예수회·서강대 심리학과 명예교수)rn
입력일 2015-10-06 수정일 2015-10-06 발행일 2015-10-11 제 2964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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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형편상 결혼해도 아이 계획 없다는 말에 화내시는 신부님

저는 주일미사도 꼬박꼬박 참례하고, 본당에서 활동도 나름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청년입니다. 그런데 하루는 신부님께서 제가 결혼은 하고 싶은데 형편상 아이를 가질 생각은 없다고 말하니 화를 내시더군요. 신부님께서 왜 화를 내셨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별로 묻고 싶은 생각도 없고요. 제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답변) 자녀 양육은 결혼을 통한 하느님 축복… 혼배성사 의미 깨닫기를

본당에서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는 청년이, 본당신부님께 ‘결혼은 하고 싶은데 형편상 아이를 가질 생각은 없다’고 말하니 본당신부님이 화가 많이 나셨으리라 짐작이 갑니다. 물론 본당신부님도 무작정 화를 앞세워 대화를 단절해버렸으니, 더 이상 묻고 싶은 생각도 없어졌다는 질문자의 마음도 이해가 되네요. 또한 본당신부님께서 화를 내기에 앞서 질문자와 대화를 시도했으면 좋았으리라는 생각이 많이 드네요. 그렇지만 왜 본당신부님이 화가 나셨는지 한번 생각해 볼까요?

혼인은 하느님 앞에서 ‘두 사람이 한 몸’을 이루어 새로운 작은 교회가 탄생하는 가톨릭의 7성사 중에 하나입니다. 가톨릭의 혼배성사는 하느님의 큰 은총이 함께하는 통로이며 축복의 예식입니다. 즉 “창조주께서 처음부터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나서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하고 이르셨다.(마태 19:4-5) 혼배미사에서 그 절정을 이루는 ‘혼인 예식’에서, 주례자는 정혼자들이 자유로운 마음으로 혼인하려고 하는지, 일생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겠는지를 묻고 나서 다음과 같은 중요한 질문을 합니다. “두 분은 하느님께서 주실 자녀를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그들을 그리스도와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기르겠습니까?” 이 질문은 가톨릭에서의 혼인은 바로 하느님이 맺어주시는 성사이며, 자녀를 낳아 기르는 것은 결혼을 통한 하느님의 축복이며 선물인 동시에, 부부가 함께 지고 가야 할 중요한 의무라는 사실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톨릭신자로서 본당활동도 열심히 하는 젊은이가 결혼은 하고 싶은데 형편상 아이를 가질 생각은 없다고 말하니 어찌 본당신부님이 화가 나지 않겠는지요? 물론 본당신부님께서도 화를 내시기에 앞서 질문자가 얘기한 ‘형편상’이란 것이 어떤 형편을 이야기하는지를 물어보고, 혼배성사에 담긴 뜻을 충분히 설명해 주셨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질문자의 태도에도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있습니다. 먼저 결혼이라는 것이 단순히 남자와 여자가 결혼해서 두 사람의 성적욕구를 법적으로 채우면 그만이라는 잘못된 생각이 들어있는 것 같아요. 또한 자녀는 키울 형편이 되면 키우고 아니면 키우지 않겠다는 이기적인 생각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고요. 이런 이기적인 생각 때문에 결혼을 거부하고 혼자 살겠다는 젊은이들이 점점 더 늘어나는 것 같아서, 갈수록 더 큰 사회적인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심각한 현실입니다. 이런 이기적인 태도는 점점 인간관계를 피상적으로 만들어, 제대로 된 깊이 있는 관계를 맺지 못하는 어려움을 야기시키고 있기도 하지요. 독일의 유명한 영성가인 ‘안셀름 그륀’ 신부님은 현대인이 지닌 질병이 바로 제대로 된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것이라 역설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대인의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영성’(Spirituality)이라 보고 있는 것이지요. 신부님은 ‘영성’을 초월에 대한 감각이며, 의미에 대한 직관이라 주장하시면서, 현대인들이 회복해야 할 ‘관계의 영성’을 네 가지 차원에서 제시합니다. 바로 ‘자신과의 관계’, ‘사물과의 관계’, ‘타인과의 관계’, ‘하느님과의 관계’입니다.

질문자도 ‘관계의 영성’을 통해서 네 가지 차원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점검해보면서, 결혼과 혼배성사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시면 좋겠습니다. 질문자가 지닌 태도로는 성당에서 ‘혼배성사’를 올릴 수가 없는 상황이니, 본당신부님이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화부터 내셨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저도 기도로 힘을 보탤게요!

‘자아의 신화를 찾아서’는 독자 여러분들의 참여로 진행됩니다. 신앙생활뿐만 아니라 삶에서 겪는 어려움을 나누고 싶은 분은 아래 주소로 글을 보내주십시오.

※보내실 곳 133-030 서울특별시 성동구 무학로 16 (홍익동 398-2) ‘자아의 신화를 찾아서’ 담당자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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