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304) 영험한 성물 (2)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5-10-06 수정일 2015-10-06 발행일 2015-10-11 제 2964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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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부임한 신부님들은 성당 마당의 한쪽 구석에 모셔져 있는 본당 주보성인 성상에 대한 신심을 활성화하고자 성상을 환하게 비추는 등을 설치했습니다. 그러자 저녁이 되면 신자들이 와서 조용히 기도하고 묵상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불빛이 담 너머에 있는 집으로 은근히 번져, 그곳에 사시는 어느 할머니 가족이 잠을 잘 수가 없다는 민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불만을 어느 정도 해소하고자 보좌 신부님은 낮에 등의 방향을 성상 아래로 낮추었는데, 저녁이 되자 기도하러 오신 신자 분들이 불빛의 방향을 다시 성상 얼굴 쪽으로 해 놓았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신자 분들의 열성으로 결국 난관에 봉착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가 또다시 성당에 찾아와, 사제관 대문 앞에 서서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할머니가 다시 찾아온 것입니다. 그 날은 주임 신부님과 보좌 신부님이 함께 외출을 하려는데, 할머니를 만난 것입니다. 그러자 주임 신부님이 먼저,

“할머니, 오셨어요. 할머니, 제가 설명을 해 드릴게요. 저 불빛이 할머니 집으로 안 가도록 하려고 불빛 방향을 담 아래쪽으로 낮추어 놓으면 또 누군가 불빛 방향을 다시 높여 놓아 결국 원위치가 되어 버렸어요. 할머니를 또 이렇게 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저희가 지역 주민들과 사소한 문제로 마찰을 일으키니 할 수 없네요. 저희가 이 등을 치울게요.”

그런데 할머니는 그 말을 듣자 심하게 손사래를 치면서,

“아이고, 그런 말 하지 말아요. 내가 앞으로 성당 다니면 오겠지만 그 이전에는 다시는 안 찾아올게요. 그러니 저 등을 절대로 없애면 안 돼요. 절대로.”

‘엥!’ 갑자기 성당 마당이 말할 수 없는 침묵이 내려앉았습니다. ‘이게 무슨 일이지….’ 할머니의 말을 들은 두 분 신부님은 어안이 벙벙해져 말하기를,

“아니, 할머니, 전에는 저 불빛 때문에 잠을 못 주무신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괜찮아요?”

그러자 그 할머니는 등을 없애면 안 된다고, 계속 펄펄 뛰더니,

“저 불이 얼마나 영험한 불인데. 아이고, 저 불 절대로 끄지 말아요. 우리 손녀딸이 저 불 때문에 이번에 취직이 되었어요, 취직. 이 어려운 시기에 취직이 된 것은 저 불 때문이에요. 내가 가만히 보니, 저 불이 켜지면 사람들이 여기 있는 사람 동상에다 절도 하고, 빌기도 하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아마도 그 덕을 본 것 같아요.”

‘아니, 성상을 비추는 저 불이 영험하다고! 그리고 저 불빛을 보고 사람들이 절도 하고, 빌기도 한다고! 이런….’

그러자 주임 신부님은 또 말하기를,

“할머니는 그렇다 치고, 할머니의 아드님이랑 손녀딸도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할머니 가족들도 다 괜찮다고 해요?”

“암, 괜찮고말고. 내가 우리 아들이랑 손녀딸에게 말했어요. 저 불빛 때문에 사람들이 기도하고 그래서 그 덕을 보고 있다고. 여러 사람들이 동상 앞에서 기도하니, 자연히 그 공덕이 담 넘어 우리 집에 들어온 것이라고. 그러니 불빛에 대해서는 찍 소리 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런 다음 할머니는 집으로 돌아가셨고, 두 분 신부님은 성당 마당에 그냥 한참 동안 서 있었습니다. 그날, 두 분 신부님은 인간적인 방식으로는 풀리지 않을 세상일을 하느님께서 자연스럽게 이루어나가심을 체험했던 너무나 행복한 날이었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