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현대의 봉헌생활] (8) 수도회 회헌과 회칙-‘아우구스티노 규칙서’ 통해 살펴본 축성생활 의미

배수판 신부(도미니코 수도회)
입력일 2015-08-25 수정일 2015-08-25 발행일 2015-08-30 제 2959호 12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처음부터 끝까지 축성생활 밑바탕은 ‘사랑’
전 세계 가톨릭교회가 함께 보내고 있는 ‘축성생활의 해’(Year of Concecrated Life)는 2014년 11월 30일 대림 제1주일에 바티칸 교황청에서 거행된 개막미사를 시작으로, 2016년 2월 2일 봉헌생활의 날에 거행될 폐막미사를 끝으로 마치게 됩니다. ‘축성생활의 해’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중 ‘수도생활의 쇄신에 관한 교령’(완전한 사랑 1965, 10월) 반포 50주년을 기념하고자 선포되었습니다.

약 13세기 무렵 교회는 수도공동체가 꾸준히 창설되어 가면서, 각 창설자의 영성에 따라 여러 규칙서가 난무하다 보니, 수도원 밖에서 주로 활동을 하는 수도 공동체는 ‘아우구스티노 규칙서’(약 400년 경)를, 수도원 내부에서 기도와 노동으로 공주(共住)생활을 하던 관상(봉쇄)수도공동체는 ‘베네딕도 규칙서’(약 520년경)를 기반으로 수도생활을 권유하였습니다. 예외적이긴 하나, 프란치스칸들이 지키는 ‘프란치스코 회원들의 규칙서’가 1220년 말경에 만들어졌지만, 봉헌생활이 아무리 그 시대에 맞는 고유한 영성을 갖고 달리 창설하더라도, 두 규칙서 만으로도 지상에서 하늘나라를 지향하는 봉헌생활에 충분한 생활 지침서가 된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입니다.

제가 소속된 도미니코 수도회는 ‘아우구스티노 규칙서’를 기본으로 하되, 도미니코 수도회 회헌과 회칙이 있으며, 그 아래로 각 관구마다 행령 규칙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가장 오래된 ‘아우구스티노 규칙서’를 토대로, 규칙서가 담고 있는 의미와 규칙서로부터 지향하는 축성생활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가톨릭교회 안의 각 수도회가 지향하는 회헌 회칙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유는 축성생활이 두 규칙서에 바탕을 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교회법과 ‘수도생활 쇄신에 관한 교령’의 영향도 받기 때문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노의 규칙서는 뒤늦게 하느님의 놀라움을 체험하고 ‘고백록’에 표현된 하느님께 대한 그의 간절한 사랑이 말해주듯, 사도행전(4,32-35)에 나타난 사도적 생활에 근거를 두고 사랑이 모든 수도생활의 기본 토대임을 알리고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수도규칙서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사랑을 주문하면서, “수도생활은 자유롭고 즐겁고 하느님을 섬기는 생활이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사진은 대구대교구 가톨릭신학원 ‘수도자 지속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한 수도자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규칙서 1,1 “친애하는 형제들이여, 먼저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 다음 이웃을 사랑할 것이니,”

요한의 편지가 생명에 대한 사랑으로 시작하여 사랑으로 끝나듯이, 아우구스티노 규칙서도 사랑이 기본이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사랑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우리 피조물은 혼자서는 할 수 없지만 사랑의 마음을 품은 마음이 합해지면 하느님 나라의 길목은 활기차고 행복한 마음이 될 것입니다. 그의 수도규칙서는 매우 간결하고 분량이 많지 않으며, “수도생활은 자유롭고 즐겁고 하느님을 섬기는 생활이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p178)

자유롭고 즐거운 삶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복음삼덕(청빈, 정결, 순명)을 실천해야 하는 수도자들은 단순한 삶을 지향하지 않으면, 긴 봉헌의 여정에서 많은 갈등과 시련을 겪을 것입니다. 등산을 가끔 하는 사람은 많은 것을 짊어지고 올라갑니다. 혹시나 해서 준비하는 마음에 알뜰하게 챙기지만, 실상, 산을 오르는 데에는 필요한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은 하산할 때 가방에서의 일입니다.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가방의 크기를 보면, 초행길인지 경험이 많은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물질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면 결국은 축성생활에 있어서 내외적으로 갈등이 많이 일어나게 됩니다. 평화를 지키는 병사가 좋은 무기라는 판단에서 이것저것 짊어지려는 생각이 많으면 전투력은 떨어지고, 결국, 자신은 물론, 주변 동료들에게도 피해를 끼치게 됩니다. 수도생활은 혼자서 독선적으로 살아갈 수 없는 사도적 생활에 바탕을 둔 공동체 삶입니다. 복잡한 실타래를 푸는 일은 가볍고 단순한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자유롭고 즐거운 마음을 가져야 풀어야 할 실타래의 매듭이 보일 것입니다.

규칙서 1,2~ “너희가 하나로 모여 있는 첫째 목적은 한 집안에서 화목하게 살며, 하느님 안에서 한마음 한뜻이 되는 것이다.(사도 4,32 참조) 너희는 아무것도 자기 것이라 말하지 말고 모든 것을 너희의 공유로 할 것이다.” (중략) 사실 너희가 사도행전에서 읽는 바와 같이,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중략) 저마다 필요한 만큼 나누어 받곤 하였다.’”

더 받은 사람도 필요한 만큼 가져간 것이고, 덜 받은 사람도 필요한 만큼을 가져간 것입니다. 사람은 저마다 주어진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양이 필요할 때는 많지 않습니다. 봉헌된 사람은 스스로 봉헌한 사람입니다. 강압이나 협박에 의한 서원과 서품은 규칙서는 물론이요, 상위법인 교회법적으로도 무효가 됩니다. 스스로 청빈을 약속(서원)하고 수도공동체의 규칙에 순명할 것을 사인한 봉헌된 사람은 금액의 크고 작음에서 수도생활의 가치를 판단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복음삼덕의 문제이며, 나아가, 하느님과의 온전한 계약을 깨뜨리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발달된 산업화의 영향을 받는 오늘날 많은 수도자들은 가끔 서원의 일탈을 무감각적으로 범하게 되고, 그것은 축성생활에 장애가 되지 않는 쪽으로 내적으로 타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멀리 강도를 만나 쓰러져 있는 사람을 보고도 돌아서서 다른 길로 간 사제는 그로인한 추가로 발생한 비용에 맞게 제대 앞에서 성찰과 뉘우침으로 자신의 가슴을 쳐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선행으로부터 등을 돌리며 일어난 자발적인 순명과 청빈을 거스르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루카 10,29~)

하느님 나라로 가는 그리스도인들은 당연한 것을 쉽게 생각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농사를 짓는 농민들에 풍년이 일어나면, 추수한 농산물의 가격이 폭락하며 원가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특화된 작물이 있거나 흉년이 들면, 식료품 가격이 상승하게 되어 도심지 사람들이 아우성입니다. 정부는 값싼 농수산물을 수입해서 가격을 낮추려 합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농민은 풍년이 들어도 탈이고 흉년이 들어도 걱정입니다. 하느님 보시기에 좋았던 자연을 벗 삼아, 우리의 먹거리를 재배하는 농민들이 없으면, 아무리 재화가 풍부해도 그 재화의 가치는 상실하고 말 것입니다. 식탁 위에 올라오는 작은 밥알 한 톨이라도 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땀을 거쳐 올라온 것을 생각하면, 작은 양에도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요한 6,12~)

수도생활 규칙서는 사랑이 기본입니다. 자신의 상황에 1000원이면 충분함에도, 다른 이가 받은 만큼 같은 양을 요구하는 일은 사도행전의 근간을 이루는 규칙서의 정서와는 멀다고 하겠습니다. 저마다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른 환경과 조건을 가지고 있음인데, 굳이 같은 조건을 요구하는 일은 필요 이상의 것을 가지게 되는, 분명 청빈을 거스르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축성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청빈의 가치를 소홀히 하는 의식은 신분과 환경에 대한 순명과 하느님 나라에 대한 정결의 가치를 함께 소홀히 하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교회 2천 년 동안 많은 수도공동체가 생겨나고 문을 닫고 하였습니다. 설립의 목적과 동기도 시대에 필요한 사도직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고, 사라진 공동체의 원인도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채, 창설 초기의 영성만을 굽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창설자의 원의를 파악하는 일은 간단합니다. 그 시대에 필요한 것이 창설자의 영성이었다면, 지금의 이 시대에 창설자의 영성은 어떻게 발휘되고, 영혼구원에 필요한 동기는 무엇인가를 생각하면, 오늘날 창설자의 고유 영성을 실천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고 봅니다. 수 백 년 전의 환경에서 필요했던 선의 동기를, 다변화된 오늘날 사회 환경에서 다양하게 살아가는 영혼들을 위한 동기가 무엇인지를 봉헌생활을 하는 당사자들이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노 규칙서는 짧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규칙의 바탕을 성서에 철저히 두고 있습니다. 구약 8번, 신약 27번을 언급하는 수도생활 규칙서의 중심은 사랑입니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보편적인 사랑은 한 쪽의 생명을 위해 다른 한 쪽의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지상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자녀이고 하느님 나라로 갈 부르심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내적 갈등과 외적 충돌로부터 다시 화해하며 함께 사랑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일은 수도규칙서를 실천하는 축성된 사람들뿐만 아니라 인호가 새겨진 그리스도인들 모두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배수판 신부(도미니코 수도회)

배수판 신부(도미니코 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