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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특별기획] 가정사목과 복음화 11. 이혼 후 재혼 가정에 대한 사목적 배려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15-08-25 수정일 2015-08-25 발행일 2015-08-30 제 2959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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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무효소송 간소화 제안 등
성사생활 돕는 사목 대안 모색
작년 주교 시노드에서 이혼과 재혼, 별거 등 상처입은 가정에 대해 성찰
교황도 “이혼 후 재혼한 이들 파문한 것처럼 대해선 안돼” 자비와 연민으로 바라봐
“이혼 후 재혼한 신자들은 파문된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결코 그들을 파문한 것처럼 대우해서는 안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8월 5일 수요 일반 알현에서 이혼 가정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면서 당부했던 말이다. 교황은 이어 “교회는 이혼 후 재혼한 이들을 용기 있게 맞아들이고 그들이 가족과 함께 교회생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교회법적으로 중대한 윤리적 잘못으로 단죄되어온 이혼 후 재혼 신자들에 대한 이같은 따뜻한 수용의 자세는 이미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에 담겨 있었다. 교황은 이날 알현에서도 권고 47항을 인용해 “교회는 언제나 문이 활짝 열려 있는 아버지의 집”이며 “누구나 어떻게든 교회생활에 참여할 수 있고, 성사들의 문도 어떠한 이유로든 닫혀 있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혼 후 재혼 신자들에 대한 사목적 돌봄에서 초점은 무엇보다도 이들이 겪고 있는 현실적이고 신앙적인 고통에 대한 공감과 배려, 그리고 하느님의 자비에 입각한 사목적 방향으로 보인다.

 

상처 입은 가정, 성사생활도 불가

지난해 10월 로마에서 열린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3차 임시총회의 최종보고서는 이른바 ‘상처 입은 가정들을 치유하기’라는 소제목 아래 무려 12개 항에 걸쳐 별거, 이혼과 재혼, 편부모 가정 등에 대한 성찰과 사목적 고민들을 담았다.

보고서는 ‘상처 입은 가정들’에 대한 ‘과감한 사목적 선택의 필요성’을 주지시키면서, ‘가정의 복음에 대한 충실성’을 여전히 확인하지만, 가정들이 지닌 ‘약함의 실제 현실’이 “자유로 선택된 것이라기보다는 고통스럽게 ‘당한’ 것”이라고 안타까워한다.(45항)

그래서 이혼하고 재혼한 이들의 상황에 대해서도 그들이 “차별을 받았다고 느끼게 하는 언어와 태도를 피하고 그들이 공동체의 삶에 참여하도록 도우면서 주의 깊은 식별과 그들을 깊이 존중하는 동반을 해야 한다”(51항)고 강조했다.

그럼으로써 교부들은 이혼하고 재혼한 이들이 “고해성사와 성체성사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에 관하여 숙고했다”고 전했다. 물론 혼인의 불가해소성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이 성체성사와 깊이 연결돼 있기 때문에 여전히 적지 않은 교부들은 현재의 규율을 유지할 필요성을 지적했다. 하지만 분명히 보편교회의 논의는 ‘과감한 사목적 선택’에 열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주교대의원회의에서의 이러한 논의의 방향은 지역교회로부터의 의견들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한국교회 역시 2014년 10월 주교대의원회의에 앞서 2013년말에 교황청에 제출했던 답변서에서 같은 뜻을 표시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이 답변서에서 이혼 후 재혼으로 혼인장애의 처지에 있는 신자들이 성사생활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경우, “신앙생활에 무관심하거나 죄의식 속에서 생활하다가 점차 교회를 멀리하는” 상황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일부는 도움을 요청하지만 많은 경우 자신의 처지가 드러나기를 꺼려하기 때문에 교회와 신앙에서 멀어진 상태로 혼자서 괴로워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나아가 많은 이들이 고통 속에서 혼인에 실패한 신자들에게 따뜻한 사랑이 아니라 성사생활 불가라는, 가톨릭 신앙생활의 가장 필수적인 은혜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고 교회를 떠나기도 한다고 답변서는 말했다.

 

한국교회의 사목적 노력

그러면 실제적으로 한국교회 안에서 이혼 후 재혼한 신자들의 현황은 어떠한가? 이에 대해서 현재로서는 전혀 아무런 통계자료를 찾을 수 없다.

지난 5월 주교회의 가정사목위원회와 교회법위원회가 공동으로 마련한 ‘이혼 후 재혼한 이들의 성사생활에 대한 사목적 배려’ 세미나에서도 이혼 후 재혼 신자들의 현황 파악이 안되고 있다는 점은 큰 문제로 지적됐다. 다만 통계청의 자료를 통해 현황을 유추해볼 뿐이다. 특히 한국사회에서 이혼은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으며, 따라서 재혼하는 사람들의 수도 증가 추세이다.

이처럼 늘어나고 있는 이혼 후 재혼 신자들에 대한 사목적 배려는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주교대의원회의에서의 논의는 자연스럽게 혼인무효소송 절차의 간소화로 이어진다. 즉, 혼인 장애를 지닌 이들이 다시 성사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혼인무효소송을 통해 이전 혼인이 무효하다는 판정을 받거나 혼인을 해소한다는 판결을 받아야 한다. 이로써 이전의 혼인이 효력이 없는 것으로 되면 재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주교대의원회의 제3차 임시총회 최종보고서는 많은 교부들이 “혼인무효를 인정하는 소송을 더 접근하기 쉽고 손쉽게, 가능하다면 무료로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음을 지적했다. 이 의견들 중에는 “이중의 선고가 필요하지 않게 하는 것, 교구장 주교의 책임 아래 행정적인 방법을 결정하는 가능성, 무효성이 주지된 경우의 약식 절차” 등이 있다.(48항)

주교대의원회의에 대한 한국교회의 답변서 역시 아주 명확하게 이에 대한 긍정적인 의견을 주고 있다. 즉 “교회법적 절차를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한국교회의 전반적인 의견”이다.

현재 교회법에 따르면 혼인 무효 판결은 두 번의 합치된 판결로 확정되도록 규정하고 있다.(교회법 제1684조 1항) 소송 절차가 1년이 소요되는 오랜 기간 동안, 2번의 판결이 동일해야 확정판결로 인정하는 등 까다롭게 진행됨에 따라 혼인 장애를 해결하는데 어려움으로 여겨진다는 것이 답변서의 평가이다. 따라서 답변서는 소송 절차를 간소화하고 기간을 단축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주교대의원회의 최종보고서는 소송 비용까지 언급, 가능하다면 무료로 할 것을 제안했다.

 

교황청 공보실은 지난 6월 23일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4차 정기총회 의안집을 발표했다. 지난해 제3차 임시총회의 논의 결과를 바탕으로 내용상으로 더욱 심화, 확충된 의안집에서도 이혼 후 재혼 신자들에 대한 사목적 배려는 중요한 관심사이다.

의안집은 이혼 후 재혼자들의 성사생활 참여에 대해서, 다양한 이견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을 전제로 하면서도, 교회법적 판단에 의거 일률적으로 성사생활 참여를 배제해서는 안된다는 뜻을 피력했다.

지난해 주교대의원회의 임시총회가 사목현장의 현실을 성찰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면 다가오는 정기총회에서는 이같은 사목 현실을 바탕으로 결정적인 사목적 대안들을 모색하는데 주력한다. 따라서, 이혼 후 재혼자들에 대한 사목적 배려에 있어서도, 혼인무효소송 절차의 간소화 등 세부적이고 실제적인 대안들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