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기고] 문희종(요한 세례자) 수원교구 보좌주교 임명 감사기도 / 이정운 몬시뇰

이정운 몬시뇰(수원교구 원로사목자)
입력일 2015-07-28 수정일 2015-07-28 발행일 2015-08-02 제 2955호 22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이사 6,8)
이정운 몬시뇰
하느님께서는 2015년 7월 23일 현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를 통해 수원교구 본오동성요한세례자본당 주임 문희종 세례자 요한 신부님을 새 보좌주교님으로 간택하시어 한국 수도권에 위치한 수원교구 선교 사목에 큰 결실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는 이 소식을 접하는 순간 한국천주교회 200주년에 한국을 방문하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께서 200주년을 기념하여 설립한 신학교 입학생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신학생들을 끌어안고 기뻐하시던 모습과 새로 건립되는 정하상 바오로 대신학교의 본관 머릿돌을 축복하여 학교로 가지고 오던 일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저는 늘 이 200주년 정하상 신학교의 맏배 입학생들의 생활 모범을 따라 이 신학교의 역사적 운명이 판가름 된다고 하며 좋은 전통을 부탁했고 제2의 그리스도, 제2의 정하상 성인이 되 달라고 매달렸습니다. 지금도 후배들은 이 전통을 꼭 이루겠다고 힘차게 매진해 왔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서울관구 사제수급의 절박한 사정 때문에 수원교구는 한국천주교회 200주년에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대신학교 설립을 자청(自請)했고, 1982년 5월 주교회의의 결정을 기꺼이 수락했습니다. 수원가톨릭대학 정하상 대신학교 출신, 두 번째 주교님이 탄생하게 된 이 자리는, 1831년 9월 9일 조선대목구 설정과 “가능한 한 빨리 조선에 선교사를 파견해야 한다고 말하며 만일 갈 사람이 없으면 ‘저를 보내십시오.’”하고 자청한 브뤼기에르 주교님을 기억하게 합니다. 문 주교님도 “저를 보내십시오.”(이사 6,8) 자청하며 교황님의 임명을 뜨겁게 수락해 주십시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브뤼기에르 소(蘇) 주교님은 이 사실을 이듬해(1832) 7월 25일 이후에 가서야 알게 되어 서둘러 선교지 조선으로 입국하기 위해 1832년 10월 21일에 말레이시아 페낭으로부터 출발하여 중국 대륙을 횡단하여 조선 국경지역 근처에까지 도달하는데 무려 근 4년간 장거리 여행의 과로와 질병으로 인해 조선 땅을 밟지 못하고, 1835년 10월 20일 중국 마찌아쯔(馬架子)에서 조선 포교지를 그리며 잠드셨는데 그 잠이 영면(永眠)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200주년 기념의 기본정신은 선교사제 영입과 방인사제 양성을 위해 중국을 수없이 왕래한 정하상 바오로 성인의 구도정신과 선교정신 그리고 증거정신이었습니다. 이 정신은 급기야 조선대목구 설정과 초대 교구장 임명이라는 한국교회사의 가장 놀랍고 보배인 독립적 조선교회의 탄생과 초대 교구장 임명의 산파역을 했습니다. 그래서 조선교구 설정문과 초대 주교 임명장은 한국천주교회는 물론 국가의 국보적 보물이 되었고, 김대건 신부님과 최양업 신부님을 탄생시킨 기본정신입니다.

문희종 주교님 탄생에 즈음하여 정하상 성인과 조선대목구 설정과 브뤼기에르 주교님을 말씀드린 까닭은 한국천주교회 창립과 조선대목구 설정이 기묘하듯이, 200주년 신학교 설립도 기묘하고 이 기묘한 신학교에서 정하상 성인을 닮은 주교님과 신부님들이 배출되어 수도권의 사제수급을 이루는 것도 하느님의 기묘한 섭리적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문희종 주교님! 신학생 시절, 모범적으로 잘 살아오셨습니다. 사제가 된 후에도 하자 없이 더 잘 살아 오셨습니다. 주교님이 되셨으니, 이제는 아주 잘 살아가시리라 믿습니다. 200주년 정하상 신학교 출신 주교님은 정하상 성인과 브뤼기에르 주교님을 닮은 대륙횡단의 장거리 마라토너이시고 죽기까지 교회와 신자들을 사랑하는 주님의 제자이자 복음의 증거자입니다.

끝으로 부탁 말씀입니다. “낮춤과 섬김은 죽기까지 인류를 사랑하신 주님의 길이었으며, 법적으로 옳지 않으면 영적으로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주교님을 존경합니다. 주교님을 사랑합니다. 축하합니다. 늘 기도하겠습니다.

이정운 몬시뇰(수원교구 원로사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