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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신의 리더, 스페인 영성가들을 찾아서] (4) 로욜라의 이냐시오 (하)

스페인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15-07-22 수정일 2015-07-22 발행일 2015-07-26 제 2954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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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서의 11개월 고행, 깨달음… 기록으로 남기다 
상류사회 지위 버리고 ‘순례자의 길’ 선택
예루살렘 향하던 중 만레사 동굴에 머물러
영성생활의 등대로 꼽히는 ‘영신수련’ 초안 완성
마을에서 올려다본 이냐시오 성인의 동굴 성당 전경. 옛 동굴 위에 성당과 예수회 국제 영성센터 등을 지어올렸다.
마음만 먹으면 다시 상류사회의 달콤한 생활에 빠져들 수 있었다. 전도유망한 지위를 얻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냐시오는 외로운 ‘순례자’의 길을 택했다.

오랜 회복기를 보낸 이냐시오는 예루살렘까지 순례를 하고, 남은 일생을 그곳에서 보낼 계획을 세웠다. 1522년 봄,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그가 처음 도착한 순례지는 ‘산타 마리아 데 몬세라트 수도원’(Santa Maria de Montserrat)이었다.

베네딕토회 수도원은 당시에도 영적 중심지였다. 특히 수도원 대성당에 모신 ‘검은 성모상’으로 대중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다. 이냐시오 성인의 회심은 이 성모상 앞에서 더욱 굳은 상징으로 드러났다. 자신의 화려한 옷을 벗고 ‘그리스도의 갑옷’을 입은 것이다.

이냐시오 성인은 몬세라트 수도원 ‘검은 성모상’ 앞에 칼을 풀어놓고 대신 순례자의 지팡이를 짚었다.

‘그리스도의 기사’로 변모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60여㎞ 거리에 위치한 몬세라트 수도원 대성당 입구 왼쪽에는 로욜라의 이냐시오 성인 조각상이 자리하고 있다. 검을 풀면서 지팡이를 짚는 모습이다.

기록에 의하면 이냐시오는 ‘값 비싸고 아름답고 세련미 넘치는 군복 모양 옷을 걸치고 수도원에 도착했다.’

하지만 예루살렘으로 가기 전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기로 결심했다. 먼저 이냐시오는 자신의 긴 칼과 단검을 검은 성모상 앞에 풀어놨다. 자신의 옷은 가난한 이에게 벗어줬다. 대신 그가 구입한 것은 감자 푸대를 만드는데 사용하는 거친 직물이었다. 이 거칠고 낡은 푸대로 만든 순례자의 옷은 그에겐 튼튼한 그리스도의 갑옷이었다. 손에는 지팡이를 들었다. 그때가 1522년 3월 24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전날 밤이었다.

밤새 성모 제단 앞에서 기도하던 이냐시오가 걸음을 옮긴 곳은 바르셀로나가 아닌, 몬세라트에서 15㎞ 남짓 떨어진 만레사(Manresa)라는 마을이었다.

스페인 로욜라에 자리한 이냐시오 성인 생가 벽에 걸려있는 순례자의 지팡이.

세속을 떠나 동굴 생활

이냐시오는 만레사 카르도네르 강변의 한 동굴에 정착한다. 동굴은 세속을 떠나 하느님을 찾는 생활을 하는 상징적이자 실제적인 장소이다.

만레사 ‘성 이냐시오 동굴’(La Cava de sant Ignasi)은 이냐시오 성인이 머물렀던 동굴을 경당으로 꾸민 성지와 성당, 예수회 국제 영성센터 등으로 구성돼 있다. 해마다 평균 4만 4000여 명 순례객들이 이곳을 찾는다.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 입구를 지나 성화와 스테인드글라스 등으로 꾸며진 경당 앞 홀(Avantcova)을 거쳐 가면 경당으로 들어갈 수 있다.

작은 제대와 의자 8개, 장궤틀 3개가 들어가자 꽉 차는 규모의 작은 동굴경당이었다. 이 경당에는 옛 동굴의 모습을 최대한 보존한 흔적이 남아있다. 현재는 벽을 세웠지만, 원래 동굴 왼쪽 벽은 뚫린 공간이었다. 이냐시오는 이곳에서 기도하고 묵상하고 글을 쓰다 종종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강과 마을을 내려다봤다고 한다. 경당 정면 벽에 조각된 부조도 이냐시오가 글을 쓰다 마을을 바라보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이곳에서 이냐시오는 약 11개월 동안 극도의 고행과 단식을 실천했다. 물론 단식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곳에 머물며 단식을 하면서 그는 내면을 더욱 깊이 바라보기 시작했다.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졌다.

동굴경당에서는 매일 오전 7시30분에 미사가 봉헌된다. 7월 31일 이냐시오 성인 축일 미사도 특별히 이곳에서 기념미사가 봉헌될 예정이다.

동굴경당은 「영신수련」의 초안이 완성된 의미깊은 장소다. 이냐시오 성인이 기도하고 묵상하며 은수생활을 했던 곳으로 현재 경당으로 꾸며져 있다.

동굴 벽을 따라 나와 성당으로 이어지는 홀에 서면 유독 눈에 띄는 유물이 있다. 높이 약 10cm, 가로 직경 약 12cm 크기로 올리브 나무를 깎아 만든 자그마한 탁발통이다. 이냐시오는 이 통을 들고 직접 탁발한 음식만 조금씩 먹으며 생활했다.

이냐시오 성인이 실제 사용했던 탁발통. 스페인 만레사 동굴경당 앞 홀에 전시돼 있다.

세상을 변화시킨 책, 영신수련

만레사에서 지낸 처음 몇 달. 이냐시오는 영적 위로를 체험, 내적 평화와 깊고 충만한 기도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곧이어 내적 투쟁이 시작됐다. 내적 공허, 낙담, 고독, 지루함, 영혼의 무감각, 절망, 우울 등으로 자신의 존재를 거부하고 자살 충동까지 느낄 정도였다. 이 시기를 견뎌내자 이냐시오는 다시 평온과 큰 위로를 되찾는다. 명예와 허영에 사로잡혀 살던 한 기사가 온전히 하느님의 사람이 된 것이다.

이냐시오는 극심한 고행 속에서 깨달은 영적 통찰을 매일 써내려갔다. 이 기록들은 훗날 「영신수련」이라는, 영성생활에 실제 적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안내서로 엮어진다.

‘영신수련’은 우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함께 관상하도록 이끈다. 단순히 복음 묵상이 아니라 예수를 체험하도록 이끄는 영적 운동으로 설명할 수 있다. 특히 이 과정은 각자가 삶의 의미를 알고, 하느님께서 나에게 바라는 바에 비춰 삶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냐시오는 자신이 쓴 책에서 “양심을 성찰하고 묵상하고 관상하며, 말과 마음으로 기도하고, 영적 수행을 하는 모든 방법을 영신수련이라는 이름으로 이해한다. 모든 무질서한 애착 그 자체를 제거하기 위해 영혼을 준비하고 정돈하는 모든 방법, 그리고 애착이 제거된 다음 영혼 구원을 위해 자신의 생활을 정돈해서 하느님의 뜻을 찾고 구하는 것을 영신수련”이라고 말한다.

영적 식별은 악의 영향을 떨쳐 버리고 그리스도의 빛에 따라, 올바른 생활양식과 하느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찾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과정이라는 설명이다. 즉 영적 식별은 하느님의 뜻을 찾는 노력이기에 근본 배경으로 기도가 강조된다.

발간 이후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 「영신수련」은 예수회뿐 아니라 일반 평신도들의 영성생활에도 큰 등대가 되어왔다. 일반적으로 세상을 변화시킨 책을 꼽을 때도 「영신수련」은 빠지지 않는다.

회심을 통해 교회 쇄신의 빛이 된 로욜라의 이냐시오 성인. 그는 시대의 어둠을 탓하지 않고 스스로 세상 밖으로 나가 곳곳에 불을 밝혔다. 그의 거대한 소명과 영성은 ‘활동하는 관상가’라 불리는 예수회 회원들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 더욱 폭넓게 확산, 실천되고 있다.

스페인 주정아 기자 (stell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