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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희송 서울 보좌주교 탄생] 삶과 신앙

오혜민 기자
입력일 2015-07-22 수정일 2015-07-22 발행일 2015-07-26 제 2954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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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에선 냉철한 신학자, 신자들에겐 친근한 신부님
서울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된 손희송 주교는 저서가 많다. 교의신학자로서 성사와 관련된 다양한 책을 남긴 것은 물론 따뜻한 손으로 독자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저서들도 남겼다. 손 주교가 남긴 저서 가운데 그의 삶과 신앙을 말해줄 수 있는 따뜻한 저서들을 주제로 그의 지난날을 풀어본다.

「행복한 신앙인」(2014)

1957년 1월 28일 경기도 연천 출생, 소신학교와 대신학교에서 사제의 꿈을 꿨던 예비 사제는 1986년 당시 서울대교구장이었던 김수환 추기경 주례로 사제 서품을 받았다.

서품 후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대학교에서 신학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돌아온 그가 첫 소임을 받은 곳은 서울 용산본당.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당 주임 신부로 사목했던 2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그는 ‘행복한 신앙인’이었다. 손 주교는 주교 임명 발표가 나던 7월 14일 인터뷰에서도 “저를 반겨주시는 신자들 때문에 정말 따뜻했던 기억이 난다”며 “정말로 고마웠다”고 전했다.

1992년 10월 위령의 날 미사 때, 김수환 추기경과 김옥균 주교가 용산본당을 방문했던 기억도 전했다. 유학을 마치고 첫 본당 주임으로 돌아와 모든 것이 막막하기만 했을 때, 신자들이 많은 도움을 주었던 것이다.

1994년 용산본당 총회장이었던 류덕희(모세·경동제약 회장)씨는 “늘 열심히 신자들과 가까이 지내고자 노력하신 분”이라고 손 주교를 회고했다. 1993년 손 주교가 본당 사제로 지냈던 시기에 활동했던 사목위원들과 함께 만든 모임 ‘한울타리’는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 ‘하나의 형제’라는 뜻을 지닌 이 모임은 처음에는 냉담신자들과 외짝교우들과 함께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연천공소 회장이었던 손 주교의 아버지가 선종한 후 홀로 아들을 키워온 어머니 양기순(마리아) 여사는 손 주교 자신은 물론 양떼들도 행복한 신앙인이 될 수 있도록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1991~1993년 용산본당 총회장 배우리(프란치스코·한국땅이름학회 회장)씨는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처음 성당으로 오실 때 손 주교님과 어머니가 차 안에서 나눈 대화내용”이라며 “신부는 절대 본당을 비워서는 안 되고 신자들의 모든 아픔을 잘 챙겨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1958년 첫 돌 기념 사진.
소신학교 시절.

대신학교에서 동기들과 함께한 손 주교(맨 오른쪽). 서울 홍보국 제공
1987년 봄, 오스트리아 유학 때 한국 유학생들과 함께한 손 주교(오른쪽에서 세 번째). 이경수 신부 제공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2011)

본당 주임으로 사목했던 2년을 제외하고 사제로서의 인생 가운데 그가 가장 오랜 기간 몸담았던 곳은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이었다. 1994~2015년 교수로서 자신처럼 사제의 꿈을 꾸고 있는 후학들을 양성했다. 교수로서 교편을 잡으면서도 손 주교는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위원과 총무 등을 역임하며 신학자로서의 소임을 다했다.

제자였던 권순형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기획실)는 “늘 명쾌한 강의를 해주시고 유쾌한 모습으로 웃음을 주셨다”면서 “사목국 기획실에서 지내면서 뵌 모습 또한 주변 사람들을 잘 지켜보시고 어루만져주셨다”고 전했다.

손 주교는 청년사목에 대한 관심도 놓지 않고 청년들과 함께 했다. 1995년 겨울부터 2013년 겨울까지 총 32회의 가톨릭청년성서모임 연수를 지도한 것이다. 청년 김수진(안나·서울 방배동본당)씨는 성서모임에서와 사석에서의 손 주교의 모습이 다르다고 회고한다.

“성서모임에서는 객관적이고 분석적인 시선으로 성경 안에서의 하느님의 숨은 뜻과 의도를 전달해주신다면, 사석에서의 신부님은 한결 편안하고 친근한 모습을 보여주셨어요. 이웃집 아저씨와 같은 모습으로 특유의 유머감각과 함께 거리낌 없이 다가와주셨습니다.”

「주님이 쓰시겠답니다」(2002)

주교 임명 발표 전까지 손 주교는 서울대교구 사목국장 소임을 맡아 일하고 있었다. 그만큼 교구의 정세와 변화는 물론 사목방향을 민감하게 살피고 있었다는 뜻이다.

손 주교가 15일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을 예방했을 때 염 추기경은 “교황님이 주교님을 한 분 더 주셨다는 것은 서울의 규모가 커져서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맡겨진 사명이 커졌다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또 ‘쇄신’이라는 단어를 여러 번 언급하며 손 주교가 이 도시 안에서 소외된 이들에게 사목적 손길을 세세히 미칠 수 있도록 당부했다.

염 추기경은 “누룩처럼, 겨자씨처럼 도시를 변화시킬 수 있는 사목이 돼야 할 것”이라며 “이러한 사목이 확장돼나갈 수 있도록 지혜를 발휘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손 주교는 오래 전 어머니께 대답하듯 “예”하고 답했다.

오혜민 기자 (oh0311@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