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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희송 서울 보좌주교 탄생] “토마스 사도처럼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고백하며 따를 것”

오혜민 기자
입력일 2015-07-22 수정일 2015-07-22 발행일 2015-07-26 제 2954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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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준비를 했는데도 많이 떨립니다. 소중한 자리에 불러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일주일 전 오스발도 파딜랴 교황대사님께 소식을 전해 듣고 가슴앓이를 많이 했습니다. ‘내가 어떻게 주교직을 수행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습니다.”

‘마음이 넓은 사람도, 사랑과 재능이 많은 사람도 아닌 자신의 부족함’을 걱정했다는 말로 주교 임명 소감을 밝힌 손희송 주교는 시종일관 솔직했다. 자신의 부족함을 계속해서 묵상하며 찾은 지혜로 그는 소감을 이어갔다.

“제 부족함은 하느님께서 더 잘 아실 텐데 이렇게 불러주시는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모두의 기도에 제 자신을 맡기는 일밖에는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손 주교는 사목표어로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요한 20, 28)을 정했다. 예수님을 의심하던 토마스 사도를 예수님이 더 큰 사랑으로 감싸 안자 토마스가 대답한 신앙고백이다. 토마스 사도처럼 예수님께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 있는 현대인들이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을 외칠 수 있도록 도우미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1986년 사제로 수품된 후 30년 가까이 사제로 살아온 시간 동안 손 주교는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1994~2015년)로서 가장 오래 일했다. 교수로서 신학생들을 양성했던 시간은 그가 꼽는 행복한 기억이기도 하다.

“30대 중반에 교수가 돼 학생들 앞에서 망신당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지요. 그러면서 신학생들에게 기본만큼은 확실히 가르쳐주려고 했어요. 그때 아버지의 마음이 생긴 것 같습니다. 나중에는 아버지와 아들만큼 나이 차이도 났으니까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함께했던 본당에 대한 기억도 생생하다.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대학교 신학박사과정을 수료하고 귀국한 1992년, 서울 용산본당 주임으로 2년 남짓 신자들과 함께했던 시절이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 것이 하느님의 축복이자 제 행복이 아닌가 싶습니다. 앞으로는 서울대교구 보좌주교로서 교구장님의 사목지침을 잘 받들고 기쁘게 사목생활하실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 약력

1957년 1월 28일 경기도 연천 출생

1972년 ~ 1975년 성신고등학교(소신학교)

1975년 ~ 1979년 가톨릭대학교(대신학교)

1979년 ~ 1981년 군복무

1982년 ~ 1986년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대학교(교의신학석사)

1986년 7월 4일 사제 수품

1986년 ~ 1992년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대학교 신학 박사 과정 수료

1992년 ~ 1994년 용산성당 주임신부

1993년 ~ 1996년 가톨릭대학교(교의신학박사)

1994년 ~ 2015년 2월 가톨릭대학교(대신학교) 교수

2004년 ~ 현재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위원

2005년 ~ 현재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위원, 서울 대표

2012년 ~ 현재 주교회의 평신도사도직위원회 총무

2012년 ~ 현재 서울대교구 사목국장

2015년 7월 14일 서울대교구 보좌주교 임명

오혜민 기자 (oh0311@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