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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환경 회칙 해설 - 찬미를 받으소서] 기고 / 욕망이 빚은 재앙, 기후변화

최원형 소장(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
입력일 2015-07-22 수정일 2015-07-22 발행일 2015-07-26 제 2954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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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기후변화 문제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
선진국의 무분별한 개발에 가난한 나라가 가장 먼저 피해
기후변화 근본원인 ‘인간 욕망’
종교만이 ‘욕망’ 제어할 수 있어
가장 가난한 이 고통에 주목하는 교황 회칙, 행동강령으로 삼아야
많이 가물어 텃밭에 고추와 가지가 한 대씩 말라죽었다.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고추와 달걀만한 가지를 매단 채로 가뭄을 견디지 못하고 바싹 말라버린 것이다.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은 물을 줬는데도 말라죽다니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최대 인공호인 소양호와 충주호 역시 30, 40년만의 가뭄으로 흙바닥을 드러내고 누워있다니 땅 속 물 사정이 어떨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여전히 비 소식은 온다고 말만 무성한 채 또다시 뜨거운 한낮이 시작되던 주말 아침, 텃밭으로 향했다. 짐작한대로 텃밭의 채소들은 다들 늘어져 힘겨워보였고 호박은 회생이 가능할까 싶을 만큼 시들어 있었다. 한 30분쯤 밭에서 움직였나보다. 쏟아지는 땀방울이 눈에 들어가 따가웠고 어지럼증이 느껴져 정리하고 일어서는데 몸이 후들거리고 눈앞에 별들이 마구 쏟아졌다.

집에 오자마자 그대로 쓰러졌다. 몇 시간인가를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있다 겨우 진정됐다. 누워있으며 지난 5월 폭염으로 2000여 명이 숨졌다는 인도 소식이 떠올랐다. 아스팔트가 녹아내리는 섭씨 50도 폭염에도 하루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 이들의 선택지는 없다. 목숨을 담보로 거리에 나선 이들이 기후변화의 최전선에서 가장 잔인하게 피해를 보고 있다.

기후변화는 빈곤의 문제와 가장 먼저 만난다. 기후변화로 인한 고통은 선진국들이 벌려놓은 무분별한 개발에 파헤쳐진 가난한 나라에서 식량문제, 물 문제로 가장 극심하게 시작된다. 식량과 물은 생존의 필수조건이다. 기후변화는 인권, 젠더, 불평등 등 사회의 크고 작은 문제들과도 도미노처럼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것에 기후변화는 영향을 끼친다.

기후변화의 주범은 온실가스다. 왜 이 시대에 온실가스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을까를 따져 들어가다 보면 결국 ‘인간 욕망’에 가 닿는다. 마음과 물질이라고 부르는 것은 상호의존적이다. 마음의 욕망이 물질의 욕망을 부추기고 물질의 욕망은 마음의 욕망을 또한 부채질한다.

악순환의 고리인 욕망, 이 욕망을 제어할 지구상 유일한 영역은 바로 ‘종교’ 아닌가. 그런 점에서 세계인구의 80%가 종교를 갖고 있다는 통계는 오히려 절망스럽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갖고 있는데도 세상살이는 나날이 고달파지고 자연 생태계는 나날이 파헤쳐지며 허물어져 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종교란 대체 무엇인가? 종교가 세상에 나온 배경을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인간 고통의 해방 아니던가. 고통에서 자유를 찾는 길을 알려주는 나침반이 종교이고 모든 생명이 화평할 수 있는 방법을 얘기하는 것이 종교가 아니던가 말이다. 세상 모든 종교가 그렇듯 불교도 생명의 평화를 얘기한다. 고타마 붓다의 제자가 되기를 서원하는 첫 과정에 다섯 가지 계율을 지키겠다고 다짐하는데 그 오계의 첫 번째가 바로 불살생이다.

내가 직접 누군가의 생명을 해하는 것만이 살생은 아니다. 오늘 우리 문명을 잘 들여다보면 우리는 매 순간 간접 살생을 범하고 있는 셈이다. 인간이 조장한 기후변화로 인간뿐만 아니라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명들에게 위협을 가하고 생명을 앗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타클로반을 휩쓴 수퍼 태풍 하이옌, 물 부족으로 시작된 다르푸르, 시리아 내전 등 일일이 열거가 불가한 수많은 고통에는 기후변화의 지문이 새겨져 있다. 종교가 기후변화 문제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지난 6월 18일 ‘찬미를 받으소서’ 제하의 회칙을 발표하신 프란치스코 교종의 메시지는 그런 의미에서 종교적 당위이며 종교 울타리를 넘어 함께 지향해야 할 행동강령이다. 특히 이번 교종의 회칙은 가장 가난한 자들의 고통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유의미하다. 가장 낮은 곳, 극심한 고통 한 가운데에서 함께해야 할 종교, 그 종교가 보이지 않는 이 시대 프란치스코 교종은 보살이시다.

최원형 소장(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