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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트라마라톤 그랜드슬램 2회 달성, 시각장애인 김미순 씨 부부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15-07-21 수정일 2015-07-21 발행일 2015-07-26 제 2954호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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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돼 준 남편 덕에 한계 극복했죠”
한국 여성 최초 사례
장애 이겨내고자 마라톤 입문
최근 무박7일 622km대회 완주
“건강뿐 아니라 부부사랑 좋아져”
시각장애인 마라토너 김미순(오른쪽)씨와 남편 김효근씨가 7월 5~11일 해남~고성 622km 울트라마라톤 완주 후 기뻐하고 있다. 남편 김씨는 마라톤 내내 부인 김씨의 손을 잡고 뛰었다. 대한울트라마라톤연맹 제공
시각장애인 마라토너 김미순(아녜스·55·인천 논현동본당)씨가 7월 5~11일 ‘무박7일’ 동안 전남 해남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622km에 이르는 ‘국토 종단 울트라마라톤’을 완주했다. 이로써 김씨는 한국 여성 최초로 ‘울트라마라톤 그랜드슬램’을 2회째 달성하게 됐다.

아내의 손을 이끌고 코스를 안내하며 출전한 남편 김효근(필립보·55)씨도 이번 대회를 완주해 생애 첫 울트라마라톤 그랜드슬램의 쾌거를 기록했다. 김미순씨 부부는 한국 울트라마라톤계에서 찾아보기 드문 부부 그랜드슬램 달성의 진기록도 세우며 주변의 부러움과 박수를 한 몸에 받았다.

울트라마라톤 그랜드슬램은 강화~강릉 국토횡단 308km, 부산 태종대~임진각 국토종단 537km, 해남~고성 국토종단 622km 등 3개 대회를 모두 완주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이번에 치러진 해남~고성 구간은 최장 코스로 참가자 절반 이상이 포기하는 험난한 대회로도 유명하다.

김미순씨는 “무박7일간 하루에 한 시간 이상은 잔다는 생각으로 대회에 출전했지만 막상 뛰기 시작하니 완주에 대한 의욕이 앞서 하루에 30분 이상을 못 잤다”며 “50km마다 세워진 체크 포인트를 지날 때면 저절로 성호경을 긋고 감사기도를 드렸다”고 말했다. 경기 출발점부터 종착점까지 아내의 손을 한 번도 놓지 않은 김효근씨 역시 “이틀은 억수로 쏟아지는 비를 맞고 낮에는 더위에, 밤에는 모기에 고통 받으면서 길바닥에서 10분, 20분씩 쪽잠을 청했다”고 전했다. 울트라마라톤 대회는 50km 구간마다 제한 시간 내에 도착해야만 완주를 인정받는다.

ME를 이수한 김씨 부부는 “논현동본당 ME 선후배 부부들이 100km 단위로 미리 나와 우리를 기다렸다가 먹을 것과 쉴 자리를 마련해 주고 짧은 거리라도 함께 달리며 응원해 준 것이 완주의 원동력”이라고 소개했다. 종착점인 강원도 고성에는 논현동본당 주임 김종성 신부와 ME 수료자를 비롯해 신자 40여 명, 김씨 부부의 지인과 친척 등 모두 70여 명이 완주의 기쁨과 감격을 함께 나눠 장관을 연출했다.

10여 년 전 질병으로 시력을 잃은 김미순씨는 “정상인이 장애인이 됐을 때 받는 상실감은 보통사람은 알 수 없을 정도로 크다”면서 “2004년에 울트라마라톤을 시작한 것도 나의 한계를 극복해 생활에서 찾아오는 갖은 어려움을 떨쳐내기 위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아내의 운동을 돕기 위해 1년 늦게 울트라마라톤을 시작한 김효근씨는 “함께 달리다 보면 건강은 물론이고 부부애도 좋아지고 대회를 완주했을 때 얻는 성취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들 부부는 대회 출전 여부와 관계없이 매주 목요일 13km 이상을 달리고 다른 평일에는 인천 청학동 청량산에서 훈련에 임하고 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