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일상에서 쉼표를] 서울 가회동성당 인근 명소

이지연 기자
입력일 2015-06-30 수정일 2015-06-30 발행일 2015-07-05 제 2951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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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마을 걸으며 평온을 얻다
무더운 여름, 휴가철이 다가온다. 뜨거운 낭만의 계절이지만, 설레며 떠난 피서길은 교통 체증과 인파에 피곤한 노동이 되기 쉽다. 그럴 때 한 번쯤은 가까운 곳에서 만나는 일상의 풍경들 속에서 더위를 잊는 것도 좋을 듯하다.

신앙인이라면 예쁘고 고즈넉한 성당을 찾아보자. 주변에 먹거리와 볼거리가 있으면 더 좋으리라. 성당 가는 길.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면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놀고 있는 아이들, 노점상 할머니, 성당 담벼락의 벽돌들, 저마다 사연을 담고 있다.

허락해주신 매순간이 꽃자리라는 노사제의 고백처럼, 주님을 뵈러 가는 길, 그분과 함께 나오는 길에서 일상 속 은총과 행복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서울 중심가 명동과 종로에서 걸어서 30분이면 가회동에 닿는다. 고불고불한 골목과 고풍스러운 한옥들은 도심 생활에서 짧은 쉼표가 되어준다.

서울 중심가인 명동과 종로에서 30분만 걸어가면 가회동이다. 이 시간은 우리를 같은 공간이면서도 전혀 다른 세계로 인도하는 ‘마법의 시간’이다.

울창한 빌딩숲과 시간에 쫓겨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은 점차 사라지고 고불고불한 골목과 고풍스러운 한옥들이 어느새 눈앞에 나타난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예스러운 정취가 물씬 풍기는 가회동은 빠르게 흘러가는 도심의 생활에서 짧은 ‘쉼표’가 되어 주기에 충분하다.

풍문여자고등학교 뒤쪽으로 난 작은 골목길을 통해 가회동으로 향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골목은 조용하고 평범한 길이었다. 북촌 한옥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이 늘어나고, 이 지역 일대가 명소로 거듭나면서 사람들의 발길은 작은 골목까지 이어졌다.

결국, 골목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곳곳에 유럽풍 커피숍이 들어섰고, 작은 편집숍들이 생겨났다. 상업주의에 물들어 퇴색된 서울의 명소들이 많기에, 지역 주민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다행인 것은 고개를 돌리면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한옥’이 가회동의 뿌리를 말해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회동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역시 북촌 8경. 북촌에서 한옥이 가장 잘 보전됐다는 5경이 이곳에 있다. 북촌 한옥마을에는 주민들이 실제로 주거하고 있어, 건물만 보전하는 민속촌과는 달리 살아있는 한옥을 만날 수 있다.

가회동성당 마당의 성 모자상.
성 김대건 신부 동상.

가회동주민센터에서 북쪽으로 200m 올라가면 5경의 진입로가 나온다. 아스팔트길로 잘 갖춰져 있다고 가볍게 보면 큰 코 다친다. 경사가 만만치 않은 구역이 있기 때문이다. 굽이굽이 길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등 뒤로 보이는 고층건물들이 한옥 골목과 조화를 이룬다. 조금 전까지 치열하게 경쟁하며 생활했던 일상이 그저 아름답게만 보였다. 이것이 일상의 휴식이 주는 은총인 것 같다.

가회동은 가톨릭과도 인연이 깊다. 한국교회 최초의 선교사인 주문모 신부가 조선 땅 최초의 미사(1795년)를 집전한 곳이 이 지역이고, 주 신부의 사목활동을 도운 복자 최인길 마티아, 강완숙 골롬바의 집도 인근이다. 가회동성당(주임 이승태 신부)은 이러한 역사적 터전에 자리 잡고 있다.

지난해 봉헌식을 가진 성당은 북촌 한옥마을과 어울리게 단아하고 소박하게 지어졌다. 그래서 처음 방문하는 이들은 성당을 코앞에 두고 지나치기 십상이다. 마당으로 들어서니 한옥과 마주보고 있는 양옥이 눈에 띈다. ‘단아한 한복을 차려입은 선비와 벽안의 외국인 신부님이 어깨동무하는 형상’이란다. 양옥 건물 2층의 대성당에 들어가 성체조배를 하고 다시 마당으로 내려왔다. 정자 바로 옆에 앉아 있는 아기 예수와 성모상께 인사까지 하니 마음이 평온해졌다.

사랑방이라고 불리는 한옥에서는 봉사자들이 핸드드립 커피와 꽃차를 방문객들에게 제공하고 있었다. 이미 삼삼오오 사랑방에 앉아 담소를 나눈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기자도 한옥으로 들어가 커피를 마시면서 이곳에서 20~30년 넘게 살았다는 봉사자들과 ‘가회동 예찬’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 동네는 도심 속에 있는 시골이에요. 누구나 와서 쉬었다가 갈 수 있는 할머니 집과 같은 곳이요.”

어느 덧, 뉘엿뉘엿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을 봉사자들이 버선발로 나와 배웅했다. 동네 이름처럼 즐겁고 아름다운 모임이 있는 가회(嘉會)동 여정을 끝내고 나니 일상의 피로 대신 비로소 멈춰야 보이는 일상 속의 숨은 보물들이 마음속에 가득했다.

가회동성당 사랑방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방문객들.

이지연 기자 (mary@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