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마당

[독자마당] 할머니의 유품 ‘낡은 성모상’

입력일 2015-05-26 수정일 2015-05-26 발행일 2015-05-31 제 2946호 22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했습니다. 학비가 많이 들어가기로 유명(?)한 사진과를 가겠다는 아들의 말에 부모님의 걱정은 태산 같았습니다. 돈 보다는 성소 모임도 착실히 나가고, 사제의 꿈을 꾸던 아들이 비전도 없어 보이는 사진과에 진학한다기에 더 아쉬움이 크셨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제의 꿈은 열심한 신자였던 외할머니를 통해서 갖게 되었습니다. 늘 기도하셨고, 주일이면 아침 일찍 성당에 가시던 분이었습니다.

10여 년 전 외할머니는 돌아가셨습니다.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상이셨던 외할머니는 엄하면서도 부드러운 심성을 가졌던 분이었습니다.

외할머니의 빈자리가 생각보다 컸습니다. 허전한 마음에 자주 외갓집을 들르면서 외할머니의 유품을 볼 수 있었습니다. 변변한 옷 한 벌 없으셨지만, 할머니의 손때 묻은 묵주와 낡은 성모상이 눈에 띄었습니다. 성모상은 집에도 많이 있었지만, 꼭 방에다 두고 외할머니를 위해서 기도하고 싶다는 마음에 집으로 가지고 왔습니다.

성모상을 가지고 온 몇 달은 꾸준히 기도도 하고 외할머니를 떠올렸던 기억이 나지만, 그 후로는 그저 하나의 소품처럼 대했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당시 미래에 대한 걱정과 학업을 마쳐야 한다는 부담감에 졸업을 위한 마땅한 촬영 소재를 찾아 머리를 굴리고 있었을 때, 사진을 통해서 신앙을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종교색이 짙은 작업들은 작품의 가치가 떨어지기에, 많은 이들이 종교적인 소재로 작품 활동을 하는 것을 꺼립니다. 하지만 제 사진을 통해 손톱만큼이라도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고, 관심을 가질 수 있다면 이보다도 더 큰 것이 없다는 생각에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막상 신앙을 표현하겠다고 생각했지만, 어떻게 표현할지가 막막했습니다. 그때 눈에 띈 것이 외할머니가 남겨주신 ‘낡은 성모상’이었습니다. 새벽녘 산 정상에 올라 떠오르는 해와 함께 성모상을 찍기도 하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번화가를 찾기도 했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우리와 함께하시며 전구를 들어주시는 성모님을 사진으로 담고 싶다는 생각에 ‘동정 성모 마리아’(Virgin Mary) 작업을 1년 넘게 했습니다. 그리고 사진 작업을 하는 내내 성모상을 바라보면서 늘 함께 해주시기를 청했습니다.

성모님께서 저의 간절한 마음과 기도를 전해주신 덕분일까요? 주변에서 좋은 반응도 듣고, 국제대회에도 출품할 수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안정된 직장도 찾게 됐고, 계속해서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은총을 주시고 계신 듯합니다.

최근 바쁘다는 핑계로 기도생활도 미루고, 일상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저 자신을 보면서 다시금 성모님께 다짐하고 싶습니다.

“성모님, 저와 늘 함께 해주십시오. 아멘.”

박 베드로(oper102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