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TH

[조재연 신부의 청사진] (59) WYD(세계청소년대회) 여정에서 배운다 ⑥

조재연 신부
입력일 2015-05-26 수정일 2015-05-26 발행일 2015-05-31 제 2946호 19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1997년 파리 WYD, 젊음과 전통의 만남
500만 명이라는 기록적인 숫자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가톨릭교회의 일치와 젊은이들의 활기를 폭발적인 힘과 기쁨으로 드러냈던 1995년 필리핀 마닐라 WYD.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인이 결정한 그 다음 WYD 순례지는 바로 프랑스 파리였다. 클로비스 1세의 개종 때부터 프랑스 혁명 시기까지 가톨릭을 국교이자 정신적 지주로 삼았으며, 종종 ‘교회의 맏딸’(the eldest daughter of the Church)로 불릴 만큼 대표적인 가톨릭 국가였던 프랑스. 하지만 20세기, 이탈리아를 비롯한 다른 유럽 교회들과 마찬가지로 프랑스 교회 또한 젊은 세대의 이탈이 가속화되었고, 노인들만 남은 채 유물과 같은 교회가 되어가고 있었다.

새천년기의 복음화를 위해서는 교회가 힘 있게 쇄신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 젊은이들의 신앙에 대한 열정과 그들의 주체적인 교회 참여가 필수적임을 믿었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인. 이처럼 젊은이들을 복음화 사명의 주역으로 초대하여 교회 전체를 활성화하고자 했던 그의 의도는 WYD 순례가 거듭되면서 점차 더 명확해지고 있었다. 가톨릭교회의 시작점인 유럽에서 WYD를 시작한 이래, 현대 사회의 상징과도 같은 미국 덴버에서의 복음 선포를 거쳐, 가톨릭교회 역사상으로는 신생 대륙과도 같은 아시아의 젊은 에너지를 확인한 마닐라WYD. 그렇게 현대 사회 젊은이들의 힘을 싣고 다시 유럽 교회로 돌아온다는 것은 곧, 가톨릭교회의 본거지를 다시 새롭게 북돋우고자 하는 ‘젊음’과 ‘전통’의 만남을 의미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인의 의도와 마찬가지로, 프랑스 교회 지도자들도 전 세계의 수많은 젊은이가 찾아오는 WYD를 교회 공동체 쇄신의 기회로 삼고자 했다. 프랑스 교회가 오랜 시간 발전시키고 보존해 온 가톨릭 전통 문화는 아름다웠지만, 이것이 더 이상 젊은이들에게 전수되지 않는다면 점차 사라질 것이 분명했다. 새로움과 활기를 잃어가고 있던 프랑스 교회는 WYD에 참여하는 아시아, 아프리카와 같은 신생 가톨릭 국가의 젊은이들을 통해 스스로를 재복음화하는 전략을 수립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WYD 활용 전략 하에서 프랑스 교회가 일단 첫 번째로 기울인 노력은, 청소년·청년 공동화(空洞化) 현상의 장기화로 인해 젊은이들과 어떻게 어울려야 할지 모르던 각 본당의 성인 세대들을 훈련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전국에 걸친 WYD 교구대회 기간 및 홈스테이 과정 안에서, 이들 어른 세대가 직접 젊은이들을 환대하며 따뜻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하였다. 이로써 오래된 전통 교회가 젊은이들을 배척하고 있지 않으며 그들과의 만남에 열려 있다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었다.

젊은이들과의 열린 만남에 이은 프랑스 교회의 두 번째 노력은, 가톨릭교회의 전통 문화가 단지 오래된 유물이 아니라, 의미 깊고 매력적인 유산임을 WYD에 참여한 젊은이들이 맛볼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대회 주제인 “스승님,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 와서 보아라”(요한 1,38-39 참조)에 맞추어, WYD에 참가한 젊은이들은 루르드를 비롯한 프랑스 전 지역의 아름다운 성지와 수도원들을 방문하여 그 신앙의 역사를 만날 수 있었다. 또한 참가자들은 그 성지들을 향해 가는 유서 깊은 순례길이나, 파리 노틀담 대성당에서 샬트르 노틀담 대성당까지를 잇는 전통의 순례길을 걸으며 묵주기도, 십자가의 길과 같은 가톨릭 신심행위에 참여하였다. 흥미 위주의 화려한 현대 문명에 익숙하던 젊은이들에게 단순 소박한 묵상 기도, 침묵과 인내의 순례길은 놀라운 새로움이었고, 이는 가톨릭교회의 오랜 전통이 담고 있는 진실한 매력을 일깨워주었다.

물론 파리 WYD를 통해 곧바로 프랑스 교회가 젊은이들로 넘치게 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이 대회는 죽어가는 듯 보이던 프랑스 교회의 늙은 나무 등걸에 새순을 틔워준 희망의 시작이 되었다. 단지 파리 교구뿐만이 아니라 프랑스 전역에 젊은이들의 활기가 전해졌고, 각 본당 공동체는 그 이전과 달리 젊은이들을 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파리 WYD에 참여한 젊은이들을 통해, 가톨릭 문화의 아름다움과 전통적인 기도·전례의 매력이 전 세계에 전해졌다. 이로써 WYD는 점차 더 많은 젊은이들에게 가톨릭교회의 정수를 체험할 수 있는 장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다음 호에 계속)

조재연 신부는 햇살청소년사목센터 소장으로 있으며,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청소년사목위원회 전문위원, 한국주교회의 청소년사목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조재연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