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봉헌생활의 해 르포 ‘봉헌된 삶’ - 살레시오회 서울 대림동 수도원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5-05-26 수정일 2015-05-26 발행일 2015-05-31 제 2946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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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 온 마음으로…” 소외 청소년의 영적 스승들
사회 부적응 학생들 위한 센터 운영
목공예·문화 활동 등 프로그램 진행
학교 진학·건강한 사회인 성장 도와
“친형과 같은 수사님들 애정 느껴져”
살레시오회 대림동 수도원에서 매주 토요일 저녁 봉헌되는 묵주기도 후 살레시오회 수사들이 청소년들과 포옹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외딴 곳, 청빈, 엄격한 생활양식. 이런 수도자의 이미지는 우리 일상과 동떨어져 있다고 느껴진다. 하지만 수도자들은 우리 삶 한가운데서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살레시오회 대림동 수도원을 찾아 하느님과 청소년을 위해 봉헌된 삶을 살아가는 수사들을 만났다.

“안녕! 살레시오!”

“안녕! 신부님!”

5월 13일 오후 5시30분 살레시오회 대림동 수도원 성당. 살레시오청소년센터 성무감을 맡고 있는 임호순 신부가 인사하자 청소년들이 우렁차게 응답했다. 수도원 성당에 가장 활력 넘치는 시간이다. 수도원은 매주 수요일 열리는 미사를 센터 청소년들과 함께 봉헌한다.

성당에 들어서는 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스스럼없이 인사를 나눴다. 누가 수사인지 구분하기 힘들다. 중·고등학생들 체격이 성인에 견줄 정도로 성장한 것도 이유겠지만, 젊은이 안에서 그늘 없이 환하게 웃는 수사들 얼굴은 세월을 느끼기 어렵게 했다. 대부분 수도회와 달리 수도복이 없기에 수사들 모습은 친한 형이나 가족처럼 보이기도 한다. 미사 준비를 위해 제의를 입은 사제·부제들도 아이들 사이에 섞여 즐거운 듯 담소를 나눈다.

미사는 여느 본당 주일학교의 미사보다도 활기찬 모습이다. 청소년들은 크고 힘차게 대답했고, 성가 소리는 성당이 떠나갈 정도였다. 이렇게 밝은 모습이지만, 사실 이들은 사회가 ‘불량하다’고 말하는 청소년들이다.

수도원 안에 자리한 살레시오청소년센터는 서울에서 유일한 남자 아동보호치료시설이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이들의 많은 수가 법원에서 ‘청소년범죄 보호처분 6호’를 받고 왔다. 소년원에 들어가는 7호 처분 직전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질렀기에 법원이 선도를 목적으로 보낸 것이다. 또 복지시설에서 불량행위를 했거나 할 우려가 있는 소년들도 이곳에 보내진다.

사회에서 ‘불량’이라는 낙인이 찍힌 이들이지만 수사들에게는 사회의 변두리에서 소외받은 청소년들이다. 이들 대부분이 가난한 경제적 여건 속에서, 그리고 부모와 가족의 돌봄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환경에서 살아왔다.

센터장 백준식 수사는 “이곳 아이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어른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자라온 이 시대의 가난한 사람”이라면서 “이 집에서는 선생님들 외에도 늘 같은 집에서 살고 어울리는 수사들이 있어 아이들이 보살핌을 느끼고 변해간다”고 말했다.

오전 5시50분. 떠들썩했던 성당은 수사들의 기도로 고요함에 잠겼다. 미사와 성무일도, 묵상이 이어졌다. 활동이 많은 수사들은 매시간 기도에만 매진할 수는 없지만, 기도시간 만큼은 빼먹지 않는다. 살레시오회 수사들에게 일과 기도의 균형을 맞추는 것은 양성 단계에서부터 중요한 일이다.

특히 이곳 수도원은 예비수련자와 유기서원자, 신학교 대학원생을 위한 양성소이기도 하다. 수도회 영성과 역사, 기도 등 다양한 교육을 받으면서 동시에 사도직 활동에도 참여한다. 요한 보스코 성인이 수도회를 창설할 당시부터 이어온 방식이다. 양성자들은 수사로서 살아가기 위해 청소년을 만나고 교육하는 것을 몸으로 익혀나간다.

수도원장 백광현 신부는 “아이들이 중심에 있지 않으면 살레시오회 수사로서 의미와 가치는 없어진다”면서 “변두리에서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을 만나고, 그 안에 어떻게 현존하고, 어떻게 쉽게 복음의 메시지를 전할지를 고민하고 배우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청소년도, 그들과 함께하는 수사들도 치유되는 곳이기에 수사들이 그리워하는 집이기도 하다”고도 말했다.

“여기는 조금 더 칠해야겠는데. 한 번 칠해보자.”

오전 10시 목공예실. 황복만 수사가 한 청소년을 지도했다. 작품을 만들던 그는 수줍은 듯 미소를 지으며 황 수사 지도에 따라 기름칠에 몰두했다. 이들은 다음 달 열릴 전시회를 목표로 작업에 한창이었다.

센터는 입소자들이 건강한 사회인으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목공예·도예 작업치료, 상담치료, 학습, 문화활동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학교와 연계해 학업으로 인정 받을 수도 있고, 진학도 돕는다. 이 모든 프로그램은 요한 보스코 성인이 창시한 예방교육 접근법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프로그램은 대부분 센터 소속 교사의 지도로 이뤄지지만, 청소년지도사에 목공예 교사 자격까지 있는 황 수사는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직접 교육에 참여하고 있다.

“청소년들과 함께 살면 천국이 보장되는 것 같다”고 미소 짓는 황 수사. “늘 제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가 그들에게 배우고 있다고 느낀다”면서 “제가 이 성소를 따를 수 있도록 아이들이 인도해준다”고 자신이 청소년 곁에 서있는 이유를 말했다.

수도원은 살레시안 사이에서는 ‘한국의 발독코(Valdocco)’라고 불린다. 가난한 청소년들을 위한 집과 학교, 성당, 운동장, 그리고 그 안에서 이뤄지는 활동이 요한 보스코 성인이 세운 이탈리아 발독코의 오라토리오를 닮았기 때문이다.

매주 토요일 오후 8시10분 시작되는 묵주기도는 요한 보스코 성인이 발독코에서 젊은이들과 함께하던 모습을 그리게 해준다. 이 시간은 수사도 아이들도, 신자도 비신자도 묵주기도 안에서 서로 손을 잡고 수도원을 거닌다. 기도 중 아이들이 사제의 곁에 다가가 고해성사를 하기도 한다. 성모동산에서 기도를 마치면 아이들은 숙소로 들어간다. 수사들은 한 명 한 명의 손을 잡고 포옹하는 등 저녁인사를 나눈다.

그렇게 청소년과 함께한 덕일까. 이곳에 생활하며 자진해 세례 받는 청소년들이 많다. 센터에 오는 이 중 신자는 정원 80명 중 3~4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세례를 받는 이들은 해마다 90여 명이다. 한 해 동안 120여 명이 센터를 거쳐 가는 것을 생각하면 적지 않은 수다. 오는 6월 세례식을 위해서도 24명이 교리를 받고 있다.

지난해 9월 센터에 와서 현재 견진성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도요한(18)군은 “수사님들과 생활하면서 인정받고,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면서 “수사님들이 친형, 친아버지 같아 이곳이 진짜 집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살레시오회 대림동 수도원 소속 수사와 청소년들이 아침기도를 바치고 있다.
황복만 수사(오른쪽)가 살레시오청소년센터 아이들에게 목공예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