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박물관 문화 순례]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역사박물관 (하)

유민영 수녀(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역사박물관 학예사),사진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입력일 2015-05-26 수정일 2015-05-26 발행일 2015-05-31 제 2946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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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행진(6·25 전쟁 중 포로들의 강제 행진)’까지 지녔던 수도원 열쇠 꾸러미
첫 관구장 베아트릭스 수녀 유품 각별
순교 순간까지 포기 안한 봉헌의 삶
학살 생존 수녀 체험기, 당시 상황 ‘생생’
1888년 조선 진출 이후 일본관구에 소속돼 있던 한국의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는 1948년 정식으로 한국관구로 승격됐다. 한국관구의 첫 관구장 베아트릭스 수녀(B&eacuteatrix de Marie Odouard, 1874~1950)는 자애롭고 슬기로운 모습으로 많은 수녀들의 존경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기 위해 늘 고군분투하면서 수녀들의 모범이 됐는데 신발 안에 콩 세알을 넣고 다니며 십자가의 길을 걸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일치하기를 원했다.

1950년 7월 17일에 으제니 수녀와 함께 피랍돼 11월 3일 ‘죽음의 행진’(6·25 전쟁 중인 1950년 10월 31일~11월 17일 사이에 700여 명의 미국인 포로들과 외교관들 그리고 성직자, 수도자를 포함한 민간인 포로들이 만포와 고산을 지나 중강진까지 이르는 길, 한국에서 가장 험악한 지역인 압록강변의 산길을 가로질러 추위와 눈보라 속을 걸었던 280㎞의 강제 행진) 중에 순교하기까지 주님에 대한 열정과 수도회에 대한 애정을 아끼지 않았던 그의 삶의 단편을 1944년 성 바오로 회심 축일에 발표한 글 ‘열심자들이 천상모후께 한 달 동안 바치는 덕행’을 통해 엿볼 수 있다. 본문에서 그는 하루 온종일 각 행실마다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고 사랑하는 뜻으로 열심히 행하는 신심의 덕에서 시작해 애덕과 기쁨, 진심의 덕행을 매일 실천하도록 권고했다. 매일 행해야 할 덕행 한 가지와 그에 대한 설명이 본문을 이루고 전체 글에 덧붙여진 서한도 남겨져 있다.

서한에서 베아트릭스 수녀는 성녀가 되기 위한 방법은 수도회 규칙을 잘 지키는 것이며 규칙은 집의 담벼락처럼 수녀들을 보호하는 장벽이라고 표현했다. 또한 “한국의 수녀들에게 그들의 규칙을 잘 지키라고,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규칙을 잘 지키라고 말해 주세요”라고 유언했다. 이는 ‘규칙’의 특별한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예수를 진정 사랑한다면 삶의 실천이 따라야 하므로 매일 수도회의 규칙을 잘 지키며 덕행을 실천하는 것이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성덕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이었다.

후배 수녀들의 증언을 통해 ‘열심자들이 천상모후께 한 달 동안 바치는 덕행’에 담긴 내용은 실제로 그가 온전히 살아낸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항상 미소를 짓고 따뜻한 사랑으로 환자와 고아, 동생 수녀들을 돌보고 늘 기도하면서 모든 덕행의 모범을 보였다. 어느 날 관구장으로서 수련원에 방문했을 때 수련장이 앉던 의자를 양보하자 손사래 치며 발판을 끌어다 앉는 겸손함을 드러냈다. 매일 그렇게 일상의 자리에서 성덕을 닦아 예수님을 닮아갔던 그는 마침내 전쟁 중 순교로 자기 봉헌의 절정의 순간을 맞았다. 그가 죽음의 행진 때까지 지녔던 유품으로 열쇠 꾸러미가 있다. 수녀원 곳곳의 열쇠 7개에는 관구장으로서 전 회원을 보살피며 살림을 도맡았던 손때가 묻어 있고 또 최선의 복음삼덕을 살았던 수도 정신이 배어있다.

6·25 전쟁 당시 순교한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원들은 프랑스인 베아트릭스 수녀 외에 한국인으로 김정자 안젤라 수녀(1888~1950)와 김정숙 마리안나 수녀(1903~1950)가 있다. 해방 이후 공산군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김 안젤라, 김 마리안나, 강양자 마리 레지스 수녀는 황해도 매화동본당에 남아 있었다. 종교인에 대한 탄압이 심했던 공산 치하에서 그들은 인민들에게 끌려 나와 잔인한 죽음을 맞이하는데, 강 마리 레지스 수녀(1913~1989)만이 기적적으로 생존해 공산 치하 5년간의 체험 수기를 남겨 두 수녀의 순교 사실을 증언해주었다.

공산화 과정에서 수도자로 남는다는 것이 어떤 고통과 죽음의 순간을 가져왔는지 아주 자세하고 생생한 문체로 기록하고 있고, 북한 교우촌의 한 곳인 매화(玫花, ‘로사리오’의 한자식 표기)동 지역의 생활상과 신앙 공동체의 삶의 모습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중요한 가치가 있다.

이 수기를 통해 당시 신자들이 신부, 수녀들과 협심해 인민군이 납품하라고 제시한 물량을 채우기 위해 새벽 3시에 주일미사를 봉헌하고 일한 사실, 본당 주임 이여구 마티아(1897~1950?) 신부가 납치돼 갈 때의 상황과 목자를 잃고 두려움에 떨며 성체 모독을 막기 위해 감실의 성체를 수녀들이 나누어 영했던 사실 등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결국은 수도복을 벗고 사복으로 갈아입어야 했던 수녀들의 참담함과 매일 수녀를 죽이겠다는 소식에도 하느님만을 믿고 의지하며 생사의 갈림길에서 지내야 했던 심정 그러나 그리스도께 봉헌된 이로서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수녀들을 죽이려 찾아온 이들 앞에서도 결코 물러나지 않았던 그들의 신앙과 형제적 사랑의 위대함을 느끼게 된다.

현재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는 근·현대 신앙의 증인으로 6·25 전쟁 때 순교한 ‘하느님의 종’ 베아트릭스 수녀, 김정자 안젤라 수녀, 김정숙 마리안나 수녀의 시복을 추진하고 있다.

※문의 02-3706-3255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역사박물관

한국에서 선교사로 일하다 1950년 11월 3일 ‘죽음의 행진’ 도중 순교한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한국관구의 첫 관구장 베아트릭스 수녀.
황해도 매화동본당의 첫 영성체 사진. 왼쪽부터 강양자 마리 레지스 수녀, 김정자 안젤라 수녀, 김정숙 마리안나 수녀.
베아트릭스 수녀의 유품인 수녀원 열쇠 7개 꾸러미.
황해도 수녀 학살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인 강 마리 레지스 수녀가 쓴 5년간의 공산 치하 체험 수기.

유민영 수녀(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역사박물관 학예사),사진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