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복음생각] 신앙과 삶의 일치 / 허규 신부

허규 신부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입력일 2015-05-26 수정일 2015-05-26 발행일 2015-05-31 제 2946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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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 대축일(마태오 28,16-20)
“아버지, 이때를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요한복음 12장 27절의 말씀입니다. 내용으로 보면 겟세마니에서 기도하시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비슷한 내용입니다. 물론 오늘 복음의 말씀은 아닙니다. 하지만 삼위일체에 대한 복음생각을 써야하는 심정도 이와 비슷합니다. 이런 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삼위일체. 하느님 아버지와 그 아들이신 예수님과 성령은 하나라는 이 표현은 우리 믿음의 핵심적인 내용이고 실생활에서 성호경을 그을 때 어렵지 않게 바치는 기도의 내용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을 설명하기란, 그것도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에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신비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이것에 가장 잘 어울리는 예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남긴 이야기입니다. 어떤 아이가 백사장의 모래를 파고 열심히 바닷물을 그 웅덩이로 옮깁니다. 어찌 바닷물을 그 웅덩이에 모두 담을 수 있겠습니까? 이 이야기에서 바다는 신비를, 그리고 그 웅덩이는 우리들의 이성을 말합니다. 물론 우리의 이성으로 모든 신비를 남김없이,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오늘 제1독서인 신명기에서 표현되는 것은 하느님 아버지의 업적입니다. 그 업적의 시작은 창조에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리고 탈출의 역사를 이야기합니다. 창조와 탈출, 구약성경 안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 하느님은 “다른 하느님이 없음을 분명히 알고 너희 마음에 새겨” 두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도 바오로는 로마서에서 하느님의 영, 곧 성령과 신앙인의 관계를 이야기합니다. 우리들은 성령에 힘입어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는 단지 호칭에서만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관계는 성령을 통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를, 그것이 담고 있는 의미를 가장 잘 표현해 주는 것이 우리가 사용하는 호칭입니다.

복음에서 우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그들을 제자로 삼아 세례를 베풀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세례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세례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사제가 “나는 누구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줍니다”라고 말하는 예식입니다.

오늘 말씀의 전례에서 우리는 구원이라는 커다란 업적 안에 하느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령이 하나임을 듣습니다. 마치 구원을 이끌어가는 세 축과도 같습니다. 삼위일체라는 말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어려움은 위격(位格)이란 표현입니다. 우리에게 낯설고 철학적인 바탕을 가지고 있는 표현이기에 쉽게 납득하기가 어렵습니다. 어쩌면 삼위(三位)는 한 분이신 하느님의 다른 역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누군가 한 사람이지만 그는 아들로, 남편으로, 아버지로, 그 역할에 있어서는 다른 것처럼 말입니다. 어떤 비유가 가장 적합할지 고민해 보아도 항상 아쉬움은 조금씩 남습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신앙인들이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자녀가 된 우리는 하느님의 약속을 누릴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언제나 주님의 현존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모든 것 역시 하나입니다.

삼위일체 대축일을 지내면서 다름과 일치를 생각하게 됩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이루는 공동체 안에서의 일치를, 말과 행동의 일치를 그리고 신앙과 삶의 일치를 생각합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에 대한 믿음은 믿어야할 교리를 넘어 우리에게 보여주신 모범이기도 합니다. 신앙을 통해 일치를 경험한다면 그것 역시 이 신비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허규 신부는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1999년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이태리 로마 성서대학(Pontificio Istituto Biblico) 성서학 석사학위를, 독일 뮌헨 대학(Ludwig-Maximilians-University Munich) 성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성서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허규 신부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