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의 창

[방주의 창] 이 시대 아름다운 ‘대세남’ / 양승국 신부

양승국 신부(살레시오회 한국관구장)
입력일 2015-05-26 수정일 2015-05-26 발행일 2015-05-31 제 2946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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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대세남’인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일거수일투족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습니다. 한 패션 전문가는 교황님의 패션을 연구한 결과 키워드로 ‘미니멀리즘’(Minimalism)을 꼽았습니다. 패션과 관련해서 소박하고 단순하게 최소한의 것을 추구하신다는 것입니다. 방한시 차셨던 시계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스위스제 서민 브랜드인 50달러짜리 ‘스와치’였고 구두는 부에노스아이레스 한 작은 구둣방에서 만든 구두였습니다. 교황을 상징하는 반지나 목걸이 역시 은으로 제작한 소박한 것이었습니다. 수도회 출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몸에 밴 청빈생활이 물질만능주의에 물든 이 시대를 정화시키고 있으니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이 시대 특히 우리나라처럼 압축적 경제성장을 이룬 분위기 속에서 청빈의 덕을 어떻게 실천해나갈 것인가? 극단적 물질만능주의와 편리주의가 만연된 환경 안에서 청빈이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깊은 숙고가 필요합니다. 수도자들 역시 경제지상주의 세상 안에서 어떻게 청빈을 구체화해나갈 것인지 더 고민해야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하셨지만 가난을 비참하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난은 스스로 선택한 자발적 가난이었습니다. 예수님에게 가난이 찾아온 것이 아니라 예수님 스스로 가난을 찾아가셨습니다. 가난은 예수님께 자랑거리요 찬미의 대상이었습니다. 가난하다 보니 자유로웠습니다. 사실 진정한 의미의 가난은 그것을 비참함으로 느끼게 하는 것, 그것이 진짜 가난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는 큰 과제 하나가 있습니다. 가난이 결코 나쁜 것이 아님을 알리는 것입니다. 돈 없이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가난을 비참함으로 느끼는 사회풍조에 당당히 맞서는 일입니다.

‘돈이면 다’라는 극단적 물질만능주의와 그에 따른 부의 편중으로 인해 나라 전체가 함몰 직전입니다. 벼랑 끝으로 내몰린 노년층의 미래가 불안합니다. 돈 없는 신자들은 교회 안에서도 찬밥 신세입니다. 교황님께서도 가난한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가고 있는 현실 앞에 분노하십니다. 빈부격차 해소를 위한 교회의 노력이 절실합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 아름다운 다리 하나를 놓아야겠습니다. 수도자들의 청빈한 삶도 중요하지만 청빈하게 산 결실을 가난한 이웃들과 관대하게 나눠야겠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지금 제2의 프란치스코 영성 운동을 시작하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방한하셔서 보여주셨던 ‘파격’의 행보가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청빈하고 겸손한 삶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보여주셨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대하는 일거수일투족이 너무나 친근하고 자연스러웠습니다. 교황님의 등장으로 인해 우리 교회는 소중한 영적 쇄신의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그 누구도 이 아름다운 대세를 거슬러서는 안되겠습니다. 그 누구도 시대의 흐름에 역행해서는 안되겠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으로부터 출발한 쇄신의 바람을 타고 날아오르기 위해 교회는 자신을 비우고 가볍게 할 순간입니다. 작고 청빈한 교회, 겸손하고 가난한 목자, 고통받는 이웃들에게 먼저 다가서는 교회의 모습을 회복할 순간입니다.

교황님의 목소리가 귓전에 울립니다. “성직자 중심의 관료제도와 출세 제일주의자들을 교회에서 몰아내야 합니다.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과 노인들, 청년들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가슴에 손을 대고 깊이 반성해봐야겠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정녕 우리 교회의 중심이고 선물입니까? 가난한 사람들이 그 어떤 소외감이나 차별대우도 느끼지 않고 우리 공동체에 편입되고 있습니까?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양승국 신부(살레시오회 한국관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