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의 창

[방주의 창] 평화생태, 생태영성의 통합 / 조욱종 신부

조욱종 신부(부산교구 로사리오의 집 관장)
입력일 2015-05-04 수정일 2015-05-04 발행일 2015-05-10 제 2943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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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은총에는 두 가지 색이 있는데, 적색과 녹색이라고 한다. 적색은 죄와 구원 중심의 영성이며, 녹색은 창조영성을 말한다. 이제껏 교회는 적색으로만 성경을 읽어왔지만 이제는 녹색으로 읽어야 할 시대가 왔다. 녹색의 눈으로 읽는 ‘녹색 렉시오 디비나’는 토마스 베리의 제3의 매개를 촉진하는 독서법이다. 그리스도교가 생태위기를 조장한 배후세력으로 지목받음으로써 이제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이 지구상의 모든 일들을 재질서화 하는 데에 있다는 관점에서 이러한 ‘녹색 렉시오 디비나’가 등장하였다. 이처럼 지구정의, 지구행성의 평화를 위한 책임이 그리스도교에도 있으므로 한국천주교회가 이에 참여함은 당연한 일이다. 한국천주교회의 평화생태(최근의 교황회칙을 통한 용어의 통합)를 위한 활동의 선구자들과 그 활동의 진행과정을 통해 창조영성을 생각해보고자 한다.

한국천주교회에 12세기의 힐데가르트(자연치유법의 개발)와 창조중심의 영성가로 알려진 마이스터 엑카르트를 소개하면서 생태문제에 대한 환기를 시작한 사람은 대구대교구의 정홍규 신부이다. 그와 동시에 한국교회에서 토마스 베리를 처음으로 전공하고 강의하고 있는 서울대교구의 이재돈 신부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이 두 사람은 한국천주교회에서 생태영성을 처음으로 시도하고 운동으로까지 발전시킨 개척자들이다.

정홍규 신부는 거의 혼자 힘으로 1980년대 말부터 푸른평화운동을 시작하여 평화생태에 관한 이론작업과 실천운동을 벌였다. 그리고 생협을 조직하고 운영하면서 소비자운동을 상설화하였다. 거의 같은 시기에 이재돈 신부는 서울대교구의 한마음한몸운동본부를 바탕으로 교구 조직을 통해 접근하였다. 그가 기획하고 조직한 ‘하늘땅물벗’은 환경보전부로 발전하고 더 나아가서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로 발전하게 된다.

사실 이 시기를 전후하여 환경문제에 관한 관심 촉구와 실천운동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우리밀살리기운동/우리농촌살리기운동 등을 시작한 가톨릭농민회의 김승오 신부, 수원교구에서 본당을 중심으로 활동한 황창연 신부, 영광핵발전소 문제를 시작으로 핵발전소와 싸움을 벌이던 광주대교구의 이영선 신부 등이 그들이다.

각기 흩어져서 개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던 일들을 교회 전체 차원으로 묶어내고자 하는 조직화 추진은 이재돈 신부에 의해 주도되어 1993년에 ‘환경사제모임’이 이루어졌다. 서울, 인천, 춘천, 원주, 대전, 대구, 안동, 부산, 광주 등의 신부들이 모였다. 환경사제모임은 자연스럽게 외연을 넓혀 2002년에 드디어 교회 내 환경운동단체 네트워크인 ‘천주교환경연대’를 발족시켰다. 그에 앞서 2001년에는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안에 ‘환경소위원회’를 설립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장일순이라는 창조영성의 대가를 만나지 않을 수 없다. 평화생태학은 자연의 생태학과 사회적 생태학의 통합을 말한다. 장일순 선생과 지학순 주교의 만남은 생태학의 통합이라고 할 수 있으니, 장일순 선생의 생명사상(자연의 생태학)과 지학순 주교의 주민자치운동(사회적 생태학)의 결합이기 때문이다. 원주에 터를 잡고 살던 장일순 선생은 원주교구장으로 부임한 지학순 주교를 만나자 척박한 땅이었던 원주교구 지역을 녹색평화의 땅으로 변모시켜 나갔다. 장일순 선생에 의한 협동조합정신은 한살림생협으로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며, 비록 신협운동의 발상지는 부산교구이지만 신협을 산골 농촌마을과 광산마을에까지 46개나 만들어 협동조합의 본래 정신을 지켜내고 있는 것은 장일순 선생에 의한 원주교구인 것이다.

창조영성, 평화생태! 이들이야말로 21세기가 요구하는 우선적인 영성의 선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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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욱종 신부(부산교구 로사리오의 집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