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쉽게 풀어쓰는 영신수련] (17) 예수님의 유혹과 외줄타기

유시찬 신부(예수회)
입력일 2015-04-21 수정일 2015-04-21 발행일 2015-04-26 제 2941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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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아시다시피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신 후 광야에 나가시어 사십 일 동안 단식하시며 악마로부터 유혹을 받으십니다. 이 유혹 사건은 세례 사건과 한 짝을 이루면서 예수님에게 있어선 가장 중요한 영적 체험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겪으신 이 유혹 이야기는 광야를 무대로 펼쳐지고 악마가 등장합니다. 아직 문명이라고 할 수 있는 그 무엇도 없는 텅 빈 광야에서 이 유혹 사건이 펼쳐진다는 것은 바로 우리 의식의 최심층부, 현대 심리학이 이야기하는 무의식 차원에서 올라오는 사건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만큼 이는 간단히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대단히 강력한 힘을 지니고 때에 따라선 우리를 파멸시켜 버릴 수도 있는 깊은 차원의 문제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보고 알아들어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유혹을 바라보시고 대하시는 태도입니다. 예수님의 태도 내지 자세는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외줄타기입니다. 외줄타기는 허공에 덩그렇게 매달려 있는 외줄 위를 몸 균형을 유지하며 걸어가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균형 감각을 상실하면 오른쪽으로든 왼쪽으로든 떨어지고 맙니다. 출렁거리며 흔들리고 있는 이 외줄은 오른쪽 공간과 왼쪽 공간을 모두 아우르고 있습니다. 오른쪽으로 쏠리는 힘과 왼쪽으로 쏠리는 힘을 모두 받아들이면서 그 양 힘을 넘어서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외줄을 타는 아름다움과 역동적인 힘이 뿜어져 나옵니다.

이러한 자세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서로 반대되는 어느 한 쪽을 일방적으로 취하고 다른 쪽은 내쳐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오른쪽은 왼쪽을 위해 존재하고 왼쪽은 오른쪽을 위해 존재하고 있으므로, 양쪽을 모두 취하는 가운데 온전한 아름다움과 생명을 취하는 것입니다. 선과 악의 대립 관계가 전형적인 예가 될 수 있겠습니다. 악을 완전히 배제해 없애 버리는 가운데 선을 행한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의 폭력이 되고 악이 될지도 모릅니다.

바로 이 점이 그동안 우리가 봐 왔던, 분리야말로 허구고 실재가 아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모든 것들이 서로 하나되어 있음을 보지 못하는 가운데 서로를 떼어 놓고 끊임없는 긴장과 갈등 그리고 투쟁을 일으키게 만들고 급기야 죽음을 가져오는 그런 분리 내지 양자택일이 아니라 양쪽 모두를 포용하면서 넘어가는 경지에 도달함으로써 양자 모두를 살려내는 자세가 예수님이 취하신 하나됨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굶주리신 가운데 겪으신 유혹에 대해 보여 주신 자세도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것이라고. 이는 빵만도 아니고 말씀만도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빵만을 주장하는 것은 오늘날 온갖 문제와 어려움을 일으키고 있는 세상 놀음 속에 젖어 살아가겠다는 것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말씀만을 주장하며 극도의 고행 속에서 인간 삶을 떠나 극단적인 영성을 취하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빵은 말씀을 위해 봉사하고 존재하며 말씀은 빵에 참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여야 합니다. 영과 육이 하나로 통합되는 것입니다.

절벽에서 떨어져 하느님을 시험해 보라는 유혹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 내지 하느님 사랑에 대한 믿음과 불신. 그 가운데(中)를 잡는 데에 하느님이 계시고 하느님의 사랑이 완성됩니다. 불신과 믿음은 서로 싸워 한 쪽을 없애 버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위해 봉사하고 서로에게 의존하며 서로를 완성시키고 있습니다.

세상의 온갖 영광을 보여 주며 악마에게 경배하라는 유혹도 그렇습니다. 하느님과 우리 자신 중 누가 궁극적 존재이며 경배 대상입니까? 역시 하느님과 우리 자신을 대립 관계의 분리 구조 즉 에고 시스템 안에서 바라봐선 안됩니다. 하느님과 우리는 한 존재입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분리와 배척을 넘어 하나를 이루는 여기에 참된 진리가 놓여 있습니다.

유시찬 신부(예수회)

1997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수원 말씀의 집 원장, 서강대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순천 예수회영성센터 피정지도 사제로 활동 중이다.

유시찬 신부(예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