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아, 나의 하느님! / 박주희

박주희(체칠리아·뉴포커스 기자)
입력일 2015-04-15 수정일 2015-04-15 발행일 2015-04-19 제 2940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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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에 온 지 3년도 안 된 탈북자다. 남한에서 나의 일상은 반복되는 실수와 황당함의 연속이지만, 그때마다 내가 좌절하지 않고 일어설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이 순간이 북한이 아닌 남한’이라는 꿈과 같은 현실에서 오는 안도감 때문이다.

하루 첫 일과는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마음속 소원을 아뢰는 소중한 속삭임으로부터 시작된다. 침대 위에 시름없이 자는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면 나도 모르게 벽에 걸린 십자고상으로 눈이 간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곳에서 나와 아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주셔서….”

부모와 자식이 한 공간에 사는 것은 당연하지만, 남한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모든 일상을 누리려면 북한 사람들은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래서 탈북자들은 남들 보기에 별다른 것 없는 평범한 일상도 ‘희망과 행복을 이루었다’는 특별한 의미를 둔다.

북한에 살던 당시 나는 단 한 번도 ‘하느님’에게 감사해본 적이 없다. 지금은 지나가는 사소한 기쁨에도 늘 하느님께 감사한다. 그 이유는 아들과 함께 탈북했던 3년 전 상황에서 찾을 수 있다. 북한은 김일성 일가에 대한 절대적인 숭배와 칭송만 존재하는 곳이다. 정권은 주민들을 대상으로 “조선의 하느님은 김일성이다. 우리 민족은 김일성 민족이고, 우리 민족의 시조는 김일성”이라고 선전하면서, 자본주의 나라에서 믿는 ‘하느님’은 종교가 만들어낸 허위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주민들에게 조선의 ‘하느님’이신 김일성을 하늘땅이 다하도록 충성해야 한다고 세뇌시킨다. 이런 환경 속에서는 ‘하느님’이 곧 김일성이라고 믿는다. 그런 나에게도 김일성이 아닌 내 마음속 ‘하느님’을 애타게 불렀던 믿을 수 없는 현실이 일어났다.

3년 전 브로커의 손에 이끌려 강을 넘던 아들이 잠복한 국경경비대(북 중 국경을 지키기 위해 배치된 군인)에게 발각되어 중대로 끌려갔다. 아들이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는 온몸에 피가 다 마르고, 사흘 동안 물 한 모금도 먹지 못했다.

열 살도 안된 아들이 가시철조망으로 뒤덮은 차디찬 경비대 감방에 있다고 생각하니, 내가 숨 쉬고 있다는 것조차도 원망스러웠다. 나는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푸른 하늘을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분명히 하늘은 맑고 푸르건만 슬픔과 절망에 빠진 내 눈에는 까만 어둠 속처럼 침침했다.

그 순간 나의 입에서는 뜻밖에도 “하느님, 제 아들을 살려 주세요”라는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지금 생각해봐도 왜 그 순간에 ‘하느님’을 간절하게 불렀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분명한 건 눈물로 얼룩진 내 마음에 따뜻한 구원의 손길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정말 하늘에 계신 하느님이 나의 애타는 부탁을 들어주셨는지, 그로부터 18일 후 아들은 감방에서 나와 엄마의 품에 안겼다. 그때부터 점차 내 머릿속에는 한 번도 뵙지 못한 하느님이 머나먼 하늘이 아닌, 나의 가까운 곳에 계신다는 보이지 않는 믿음이 쌓이기 시작했다.

박주희(체칠리아·뉴포커스 기자)